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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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⑤] 방배동 살인사건 편

1997년 서울 방배동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자취 방에서 밤새도록 과제와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 한쪽 벽에서 '쿵, 쿵, 쿵'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도 방음 상태가 좋지 못한 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 소리는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들려왔다. 예민한 상태였던 나는 화가 나서 벽을 세게 두드렸다. 소리가 잠잠해지는 듯 싶었다. 간신히 과제와 공부를 끝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깼다. 집 앞에 경찰과 형사들이 모여 있었고 옆방에서 부부싸움 도중 남편이 아내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남편의 자수로 경찰이 현장에 온 것이었다. 나는 어제 들었던 소리와 그 시각에 대해 경찰에게 자세히 털어놨다.

내 이야기를 듣던 형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시각이 11시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저희가 남편이 자수한 것을 접수한 뒤거든요. 부검 결과 죽은 아내의 사망 추정 시각도 10시 이전으로 나오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시간이 흐른 뒤, 군대에서 야간 근무 중 고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참은 내게 "그 소리 말이다. 차라리 귀신이 낸 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냐? 혹시라도 부검이 잘못된 거고, 그 아줌마가 그때까지 살아 있어서 살려달라고 벽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두드렸던 거라면… 그 아줌마가, 널 얼마나 원망하면서 죽어갔겠냐…"

▶[납량특집] 나는 너를 알고있다.

▶[납량특집①] 아파트 편

▶[납량특집②] 미술실 편

▶[납량특집③] 야간 자율학습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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