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조용한 등산로서 스피커로 크게 들리는 트로트

[더팩트|서울 관악산=오승혁 기자] "아이고, 스피커 사고 돈이 없어서 이어폰은 못 샀네. 자네가 좀 사줘."
9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오승혁의 현장’은 가을철을 맞아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관악산을 찾았다. 라디오에서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셉템버(September)’가 유독 자주 흘러나오는 시기다. 그리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선곡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음악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가을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지만 산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누군가가 선택한 노래가 휴대용 스피커를 통해 탐방로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개인의 선곡은 주변 사람 모두가 들어야 하는 ‘강제 배경음악’이 된다.
이날 관악산에서는 휴대용 스피커를 가방이나 옷에 매달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걷는 등산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이 가까워지기 전부터 노랫소리가 먼저 들렸고, 음악의 주인이 멀어진 뒤에도 한동안 소리는 산길에 남았다.
스피커로 음악이나 뉴스를 크게 듣는 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소음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사과나 음량을 줄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아이고, 스피커 사고 돈이 없어서 이어폰은 못 샀네. 자네가 좀 사줘."
이어폰을 사용하면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혼자 즐길 수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은 농담으로 되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음악까지 들어야 한다는 문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어 산에서 여러 소리를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새소리도 그렇고 산에 오면 이런저런 소리 듣는 거지. 그런 거 싫으면 집에만 있어."
그러나 새소리와 휴대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같다고 보기 어렵다. 새소리는 산을 이루는 자연환경의 일부지만, 스피커 음악은 한 사람이 곡과 음량을 선택해 주변에 들려주는 인위적인 소리다.
관악산의 한 정자에 앉아 큰 소리로 '안동역에서' 등의 노래를 듣던 한 중장년 남성은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노래 좀 듣고 건강하게 취미 생활하는 것이 그렇게 싫습니까"라며 역으로 반문했다.

스피커로 음악이나 뉴스 등을 듣는 등산객들을 자주 마주치냐는 질문에 한 중년 여성은 "괜히 시비 붙고 위험해질까봐 참는 거지"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중년 남성도 "애초에 모두가 다니는 등산로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트는 사람은 '독불장군'이다"라며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한 사람들이라 소통이 안 된다"고 혀를 찼다.
도심의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산을 찾는 이들도 꽤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물이 흐르는 소리, 자신의 발이 흙과 돌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휴식이다.
큰 음악은 단순히 기분을 방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등산로에서는 뒤에서 접근하는 사람의 발소리나 자전거·구조 인력의 안내, 낙석과 같은 주변의 이상 징후를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스피커 소리가 커질수록 등산객 사이의 의사소통과 안전을 위한 소리를 놓칠 가능성도 커진다.
야생동물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산은 인간이 운동과 휴식을 위해 사용하는 장소인 동시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자연을 즐기러 온 사람이 정작 큰 인공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덮는 모습은 모순적으로 비친다.
물론 이날 만난 스피커 이용자들이 관악산의 모든 등산객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시민은 조용히 걷거나 이어폰을 사용했고, 일행과 대화를 나눌 때도 주변을 의식했다.
가을 산에는 이미 충분한 소리가 있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 돌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숨을 고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불어오는 바람 소리도 선명해졌다.
그 소리 위에 반드시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가 더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셉템버’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듣는 사람이 채널을 바꾸거나 전원을 끌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산길에서 앞뒤로 이어지는 스피커 음악에는 끄기 버튼도, 채널 선택권도 없다.
산에서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이어폰을 사용하거나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정도로 소리를 낮추면 된다. 거창한 규제 이전에 필요한 것은 같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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