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10초 차이로 살아남았다” 학생 증언

[더팩트|오승혁 기자] 네팔 대홍수 현장에서 한 중학교 교장의 빠른 판단이 학생 900여 명의 목숨을 살렸다. 홍수 경고 전화를 받은 뒤 수업을 중단하고 종을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흙탕물과 토사에 뒤덮였다. 대피가 10분만 늦었어도 학생들과 교직원 상당수가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31일 BBC에 따르면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부반 트리슐리 중학교의 라젠드라 다와디 교장은 지난 26일 오전 학교를 덮치기 직전 학생들을 고지대로 대피시켰다. 이번 홍수로 네팔에서는 최소 750명 이상이 숨지고 3000명 넘게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학교에는 전체 학생 1600여 명 가운데 오전 수업을 받던 900여 명이 있었다. 다와디 교장은 오전 9시10분쯤 불과 몇 분 사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홍수 위험을 알리는 전화 4통을 받았다. 상류 지역에서 큰물이 내려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처음부터 위험을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는 강바닥보다 높은 곳에 있는 3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평소라면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한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큰 홍수가 온다. 딸을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판단이 바뀌었다.

다와디 교장은 "부모가 강한 이유 없이 서둘러 오지는 않는다"며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데 1초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곧바로 수업을 중단시켰다. 학교 종을 울리고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고지대로 이동시키라고 지시했다. 홍수가 오지 않더라도 하루 수업을 놓치는 것에 그칠 뿐이라는 판단이었다.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교실을 빠져나와 언덕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물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다와디 교장은 강에서 약 100m 떨어진 기숙사 건물이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장면을 봤다. 그는 학교로 향하던 등교 버스들에도 전화를 걸어 즉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연락이 닿지 않던 마지막 버스가 학교 앞 다리로 접근하자, 물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운전기사를 향해 소리쳐 차를 돌리게 했다.
버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직후 다리는 강물 속으로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려 다시 고지대를 향해 이동했다. 일부 학생은 충격으로 쓰러졌고, 교직원들은 아이들을 오토바이에 태워 비탈길 위로 올려보내기도 했다.

학생 유니샤 아마티야(16)는 "친구들과 함께 불과 10초 차이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처음에는 많은 학생이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고, 수학 수업을 듣던 친구들을 기다리려는 학생들도 있었다. 유니샤와 친구들은 학교 뒤편의 좁은 사다리길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갔다.
유니샤는 "눈앞에서 시장이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며 "신발에 미끄럼 방지가 없었다면 넘어졌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사람들이 더 안전한 곳으로 올라가려 서로 밀치며 움직였고, 다른 길로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은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피한 학생과 교사들은 한동안 인근 마을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도로가 끊기고 교통이 마비되면서 일부는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틀 밤을 고립된 상태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와디 교장과 학생들은 이후 헬기로 집이 있는 마을로 돌아갔다.
학부모들은 그 사이 자녀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애를 태웠다. 유니샤의 어머니는 딸과 남편에게 반복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홍수 소식을 듣고 곧장 학교로 향했다.
그는 "트리슐리 시장이 모두 휩쓸린 것을 보고 딸이 더는 살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딸을 찾지 않고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딸과 통화가 연결된 것은 약 한 시간 뒤였다. 유니샤가 언덕 위에 도착한 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고 눈물을 터뜨렸고, 함께 있던 친척들도 울며 서로를 끌어안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니샤는 "아버지가 울고 있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와디 교장과 교직원들이 남은 학생들을 언덕 위로 올려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살은 학교를 덮쳤다. 트리부반 트리슐리 중학교 건물은 흙과 잔해에 묻혔다. 다와디 교장은 "결정이 10분만 늦었어도 학생들과 나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학교 관계자 2명은 목숨을 잃었다. 신임 역사 교사는 오전 수업 뒤 숙소로 돌아갔다가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관리원은 학생 대피를 도운 뒤 다시 학교 쪽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 일은 한 교장의 침착한 판단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산악지대 학교와 마을이 재난 경보 체계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냈다. 다와디 교장은 더 나은 경보 시스템과 사이렌, 대피 알림이 있었다면 주민들이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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