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회 연속 결승전 2-1 승리 부상 우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이기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을까. 세계 배드민턴 여자단식 1위 안세영(24·삼성생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50경기 연속 승리, 시즌 66승 1패, 승률 98.5%.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듯한 숫자들이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어쩌면 정상에 올랐을 때인지 모른다. 모두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지만 정작 정상에 선 선수의 몸은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세영이 25일(한국시간)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인도의 푸살라 신두를 2-1(16-21 21-11 21-12)로 꺾고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프랑스오픈 3연패이자 통산 4번째 우승, 올 시즌 10번째 개인전 정상이다. 지난 3월 전영오픈 결승 패배 이후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50연승을 완성했다.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위기를 승리로 바꾸는 능력이다.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신두에게 첫 게임을 16-21로 내주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3게임에서도 5-8로 뒤졌지만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며 전세를 뒤집었다. 신두와의 상대 전적은 11전 전승. 이제 안세영의 강함은 기술과 체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선수, 그것이 세계 최강 안세영의 진짜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번 우승을 바라보는 마음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지난 18일 덴마크오픈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둔 안세영은 일주일 뒤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도 3게임까지 치러야 했다. 두 대회 연속 결승에서 게임을 내줬다는 사실 자체가 경기력 저하를 뜻하지는 않는다. 상대의 집중적인 견제와 전술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온 안세영에게 강행군의 부담이 누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오른쪽 무릎과 종아리에 테이핑을 하고 등장한 모습은 더욱 마음에 걸린다. 테이핑만으로 부상 정도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아시안게임과 덴마크오픈, 프랑스오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일정을 고려하면 지금은 또 한 번의 우승보다 몸 상태를 정확하게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승 직후 안세영의 한마디는 50연승 기록 못지않게 주목할 만하다.
"휴식을 취하면서 회복 루틴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코리아오픈에 출전할지, 더 쉴지 결정할 것이다."
세계 최강자의 입에서 나온 '휴식'이라는 단어가 유독 무겁게 들린다. 그것은 의욕 부족도, 국내 팬들에 대한 외면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몸과 미래에 책임을 지겠다는 성숙한 판단의 출발점일 수 있다.오는 11월 3일부터 8일까지 전남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열리는 코리아오픈은 국내 배드민턴 팬들에게 특별한 무대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고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만큼 아름다운 순간도 드물다. 대회 흥행과 한국 배드민턴의 위상을 생각하면 안세영의 출전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미 세계 최강임을 충분히 증명한 선수에게 코리아오픈 우승 하나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 반대로 무리한 출전으로 부상이 악화된다면 치러야 할 대가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 답은 분명하다. 지금 안세영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우승컵이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건강한 몸이다.
동양의 고전 '도덕경'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구절이 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스포츠에서도 통하는 지혜다. 강한 선수는 끝까지 달리는 선수만이 아니다. 때로는 멈춰야 할 순간을 아는 선수다.

안세영은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 직후 부상 관리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한국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당사자다. 선수의 몸보다 성적과 출전을 앞세우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던 그가 이제 자신의 회복 상태에 따라 출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 배드민턴도 그 문제의식에 답할 때가 됐다.
더구나 올해의 마지막 큰 무대가 남아 있다. 오는 12월 9일부터 13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BWF 월드투어 파이널이다. 한 해 동안 최고의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겨루는 이른바 '왕중왕전'이다. 안세영이 지금 지켜야 할 목표는 코리아오픈의 당장 한 차례 승리보다 시즌의 대미를 건강하게 장식하는 일이다.
지난해 11개 대회 우승으로 일본의 모모타 겐토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안세영은 올해도 벌써 10개의 정상에 올랐다. 남은 대회에서 승수를 더 쌓으면 또 다른 기록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은 선수가 건강해야 의미가 있다. 50연승이 51연승으로 늘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세영이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세계 정상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수에서 안세영의 화려한 스매시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겠지만, 무리한 출전으로 선수 생명이 위협받는 일까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역시 선수의 회복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의학적 판단과 선수의 의사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50연승을 달성한 안세영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 이제는 그 위대함을 오래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승리의 가치는 횟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한 번의 현명한 휴식이 열 번의 승리보다 값질 수 있다. 코리아오픈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세영의 영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멈출 줄 아는 용기가 100연승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안세영이 더 오래,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은 승리를 재촉하는 박수보다 충분히 쉬어도 좋다는 격려가 필요한 때다. 우리가 진정 보고 싶은 것은 여수에서의 한 번뿐인 우승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배드민턴을 호령할 건강한 안세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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