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세계적 선수도 ‘연기’ 후 복무…병역 특례 53년, 재검토할 때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금메달은 빛났지만, 그 뒤에 나온 몇 마디는 그 빛을 흐리게 했다. 한국 남자축구가 3일 일본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일본을 1-0으로 꺾고 아시안게임 4연패라는 대업을 이뤘다. 2014 인천부터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에 이어 2026 아이치·나고야까지 4회 연속 정상. 한국 축구사에 오래 남을 기록이다.
그런데 축하의 박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엉뚱한 곳에서 논란이 터졌다. 주장 이기혁은 "이제 군대 안 간다"고 외쳤고, 양민혁은 "군 면제라는 보상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19세 박승수는 전역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비판이 거세지자 세 선수는 사과했고 대한축구협회까지 국민과 현역 장병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은 일반인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유럽에서 경쟁하는 젊은 선수라면 1년여의 공백이 선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금메달을 향한 동기 가운데 병역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솔직함과 경솔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선수는 더 이상 개인만이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공적 존재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군복을 입고 복무하는 수많은 청년과 그 부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군대를 안 가게 됐다"는 사실을 금메달의 가장 큰 보상처럼 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구나 흔히 말하는 ‘군 면제’는 법률적으로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현행 병역제도에서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다. 해당 분야에서 34개월 복무하면서 총 544시간의 특기 활용 공익복무를 해야 한다. 이 제도는 1973년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에 기여한 인재에게 별도의 병역 이행 방식을 인정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바로 국위선양이 먼저이고 혜택은 나중이라는 데 있다. 국가를 대표해 뛰어난 성과를 냈으니 선수 생명의 단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가가 특별한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병역혜택을 받기 위해 태극마크를 다는 제도가 아니다.

앞뒤가 뒤집히면 본말전도(本末顚倒)다. 이번 대표팀에서는 23명 중 이미 병역을 마친 3명을 제외한 20명이 금메달로 예술·체육요원 편입 자격을 얻었다. 이 숫자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잣대가 종목별 경쟁 환경의 차이까지 충분히 반영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축구 결승 상대 일본은 일본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U-21 일본대표’라고 명시한 팀이었다. 한국보다 올림픽 준비에 초점을 맞춘 어린 연령대 선수들로 대회에 나섰다. 야구 역시 비슷한 질문을 남긴다. 일본 야구대표팀 공식 홈페이지는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사회인 대표’로 분류했다. 일본은 사회인 선수들로 팀을 꾸렸고 한국은 프로 선수들이 중심이 돼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금메달의 가치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 정상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가 누구든 모든 경기를 이겨야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다만 모든 금메달의 경쟁 구조가 같지는 않다.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하는 종목도 있고, 연령 제한이 있거나 일부 국가가 프로 최정예 선수를 내보내지 않는 종목도 있다. 그런데 현재 제도는 종목의 경쟁 강도나 선수층과 관계없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결과 하나로 동일한 병역상 혜택을 부여한다.
다른 징병제 국가는 어떨까.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국가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싱가포르는 방향이 상당히 다르다. 남성 시민권자와 일정 요건의 영주권자는 원칙적으로 18세부터 국가복무(NS) 의무를 진다. 세계적인 스포츠 유망주에게 올림픽 준비 등을 위한 입대 연기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기’다.
2024년 싱가포르 국방부는 세계 정상급 카이트포일 선수 막시밀리안 매더에게 2028 LA올림픽까지 복무 연기를 허가하면서도 연기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입대한다고 못박았다. 싱가포르 국방부가 반복해서 강조해 온 원칙도 분명하다. 스포츠선수의 개인적 경력 때문이 아니라 국가적 이익에 부합할 때 제한적으로 연기할 뿐이며, 복무의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만도 국가대표 선수에게 별도의 보충병역 제도를 운영하지만 한국과 구조가 다르다. 일정 요건을 갖춘 국가대표 선수가 보충역으로 복무하고 일정 기간 국가대표 관리와 소집 의무를 지는 방식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관리기간을 조기에 종료할 수 있지만 ‘금메달 하나=곧바로 모든 병역의무 종료’라는 단순한 공식은 아니다.
결국 스포츠선수에게 병역상 배려를 하는 나라들은 존재하지만, 한국처럼 올림픽 동메달 이상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경기 결과를 직접적인 기준으로 삼는 제도가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가수 유승준의 병역 논란은 2002년 시작돼 24년이 지난 지금도 법정에서 계속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2일 서울고법은 유승준이 제기한 세 번째 비자발급 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도 다시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한 사람의 병역 문제가 한 세대가 지나도록 사회적 논쟁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병역의 공정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무게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를 단순히 몇몇 어린 선수들의 철없는 말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 소양교육과 SNS·인터뷰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1973년에 출발한 예술·체육요원 제도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시대에 맞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면 종목과 경쟁 환경을 불문하고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 공정한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같은 ‘국위선양’의 잣대로 볼 수 있는가. 일정한 점수제나 국제 경쟁력, 세계선수권 성적 등을 함께 평가하는 방식은 불가능한가. 아니면 싱가포르처럼 ‘면제에 가까운 방식’보다 선수 경력을 고려한 입대 연기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더 공정한가.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공자는 '논어'에서 "명불정즉언불순(名不正則言不順)"이라고 했다. 이름과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도 순리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태극마크도 마찬가지다. 선수가 금메달을 위해 흘린 땀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병역상 혜택도 현행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권리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것을 얻는 일이 국가대표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병역혜택은 태극마크를 달고 이룬 성취에 뒤따르는 결과여야 한다. 태극마크를 다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메달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티켓’이 아니다. 수많은 국민이 자신의 선수라고 믿으며 함께 뛰고, 함께 가슴 졸이고, 함께 기뻐한 끝에 목에 걸어주는 가장 빛나는 훈장이다.
그 순서를 잊는 순간 금메달의 빛도, 태극마크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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