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 축구 이어 일본서 빛난 한국 스포츠
38세 신지애, 아직도 진행형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10월 4일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 골프클럽. 굵은 빗줄기 속에서 치러진 연장 세 번째 홀. 신지애의 버디 퍼트가 컵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우승 인터뷰에서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우승하고 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프로 통산 68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서른여덟 살 베테랑의 첫 눈물이었다.
눈물의 이유는 분명했다. 이 우승으로 신지애는 JLPGA투어 통산 30승을 채우며 마침내 영구 시드를 손에 넣었다. 앞으로 시드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본 무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이다. JLPGA 역대 일곱 번째이자 후도 유리 이후 22년 만이며, 외국인 선수로는 대만의 투아이위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 선수로는 물론 처음이다.
기록은 하나 더 있다. 신지애는 살롱파스컵과 투어챔피언십 리코컵, JLPGA선수권에 이어 이번 일본여자오픈까지 정상에 오르며 JLPGA 투어 사상 처음으로 4대 메이저를 모두 제패했다. 반세기가 넘는 JLPGA 역사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첫 주인공이 한국 선수라는 점도 특별하다. 일본 메이저에서만 통산 6승. 여기에 JLPGA 통산 상금도 15억 엔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내용 역시 기록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상대는 구와키 시호였다. 지난 8월 LPGA투어 AIG 여자오픈을 제패한 현역 메이저 챔피언이자 올 시즌 일본 투어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일본 여자골프의 새로운 간판이다. 2타 뒤진 채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신지애는 3번 홀 보기로 한때 3타 차까지 밀렸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3번 홀에서 약 15m 거리의 긴 버디 퍼트를 떨어뜨렸고, 14번 홀에서도 버디를 잡아 단숨에 추격했다. 그는 경기 뒤 전반을 3타 차 이내로 버티면 후반에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힘,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놓치지 않는 힘, 그것이 오랫동안 신지애를 ‘지존’으로 불리게 만든 원천이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신지애를 따라다닌 단어 가운데 하나는 ‘나이’였다. 20대 초반 선수들이 투어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시대에 1988년생 선수가 정상권을 지키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 그만큼 언제까지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묻는 시선도 뒤따랐다. 지난해 5월 살롱파스컵 이후 1년 5개월 동안 이어진 우승 공백은 그런 시선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신지애 역시 이제 나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우승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이었다. 38세의 신지애는 과거의 명성으로 버티는 선수가 아니다. 올해 메이저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경쟁하고, 한때 3타 차로 뒤진 승부를 뒤집어 우승할 만큼 여전히 강하다.
게다가 이제는 영구 시드까지 얻었다. 나이가 몇 살이든, 다른 누군가가 은퇴 시기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까지 일본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신지애의 커리어는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로 영역을 넓혀온 과정과도 닮아 있다. 국내 투어를 평정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LPGA 투어 상금왕과 메이저 챔피언에도 올랐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또 하나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한 무대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어 적응하고, 다시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20년 가까이 반복해온 셈이다.
일본 골프 팬들이 신지애에게 보내는 존경 역시 단순히 승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꾸준함과 성실함, 그리고 함께 경쟁하는 선수들과 투어를 대하는 태도가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낸 평가다.

공교롭게도 이번 우승은 한국 스포츠가 일본에서 잇달아 낭보를 전한 주말에 나왔다. 하루 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는 김주형이 남자골프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프레지던츠컵을 치르고 곧바로 일본으로 이동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정상에 올라 한국 남자골프에 16년 만의 개인전 금메달을 안겼다. 그날 저녁에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결승에서 일본을 1대0으로 꺾고 사상 첫 아시안게임 4연패를 완성했다.
그리고 하루 뒤 신지애가 일본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현역 일본 메이저 챔피언을 꺾었다. 이틀 사이 일본에서 한국 스포츠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이 잇달아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신지애의 우승까지 단순한 ‘한일전 승리’의 연장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성취를 좁게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지애의 30승은 일본 투어라는 무대와 그곳의 선수, 팬들과 함께 오랜 시간 경쟁하며 쌓아 올린 기록이다. 그가 일본 골프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돼 기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경을 넘어 존중받는 선수. 그리고 자신이 뛰고 있는 나라의 골프 역사 한 페이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쓴 선수. 그것이 지금 신지애의 위치다.
서른 번의 일본 투어 우승 끝에 처음 흘린 눈물은 마침표가 아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과 미국, 일본을 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찾아온 신지애다.
이제 그가 상대해야 할 것은 나이도, 특정 선수도 아니다. 앞으로 자신이 써 내려갈 시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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