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유언 따라 태극마크 선택…부상·재활 딛고 끝내 지킨 약속

[더팩트 | 박순규 기자] 100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한 사람의 생애를 훌쩍 넘어 몇 세대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세월이다. 그러나 역사는 때때로 그 긴 시간을 한 장면 안에 겹쳐 놓는다.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급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허미미(24·경북체육회)가 섰다.
태극기가 올라갔다.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허미미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매일 연습하며 외웠다는 애국가를 정작 소리 내 부르지 못했다.
"태극기를 보니 울컥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참느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그 짧은 말 속에 허미미가 살아온 시간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의 금메달은 단순한 아시안게임 우승이 아니다.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결승에서 몽골의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유효승으로 꺾은 한 판의 승부다. 그러나 그 금메달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훨씬 깊어진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5대손이다.
허석 지사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나섰던 때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흘렀다. 그리고 100여 년 뒤 그의 후손이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대한민국 국가대표 도복을 입고 일본 땅에서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렸다.
이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러나 허미미의 이야기를 단순히 ‘독립운동가 후손이 일본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민족적 서사로만 바라본다면 오히려 이 선수의 진짜 가치를 놓칠 수 있다.
허미미의 금메달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혈통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 일본 유도계에서 성장했고 일본 이름 ‘이케다 미미’로 살아왔다.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꾼 것은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남긴 한마디였다.
"한국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
허미미는 결국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국적은 서류 한 장으로 바꿀 수 있지만,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 새로운 언어와 문화, 훈련 체계에 적응해야 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그에게 태극마크는 단순히 유니폼에 붙은 작은 국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증표였고, 할머니와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 차례 시험대에 올랐다. 허미미는 여자 57㎏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지만 본인이 원했던 금메달은 아니었다. 그는 그때 "다음에는 꼭 태극기를 가장 높이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영광이 아니라 시련이었다.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긴 재활을 견뎌야 했다. 오랜 실전 공백 속에 예전 기량을 되찾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허미미 스스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정상에 한번 오른 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때로 상대가 아니다. ‘예전의 나’와 비교되는 시선이다.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라는 이름은 자랑이면서 동시에 부담이었다. 다시 국제대회에 나가면 사람들은 당연히 메달을 기대한다. 몸은 완전하지 않은데 기대는 더 높아져 있었다.
그 시간을 이겨내고 허미미는 다시 매트에 섰다.
이번 대회 16강과 8강을 한판으로 넘었고 4강에서도 상대를 제압했다. 결승에서는 경기 시작 불과 11초 만에 유효를 따냈다. 이후 4분 동안 상대의 거센 반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화려한 한판승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허미미가 지나온 시간과 닮아 있었다.
삶에는 한 번의 통쾌한 한판승보다 끝까지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백절불굴(百折不屈)’.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허미미는 부상과 재활, 부담과 불안을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시상대 맨 위에 올라섰다.
그 순간 애국가가 울렸다.
허미미에게 애국가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한국어가 아직 완벽하지 않은 그는 가사의 뜻을 하나씩 공부해가며 외웠다고 했다. 파리에서 금메달을 따면 직접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은메달에 그치면서 기회는 미뤄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고야에서 그 순간이 왔다.
그런데 그는 부르지 못했다.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순간 할머니가 떠올랐고, 수술대와 재활실이 떠올랐으며,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자신이 선택했던 길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큰 목소리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태극기는 당연히 주어지는 상징일 수 있다. 그러나 허미미에게 태극기는 스스로 선택하고 쟁취한 삶의 방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그의 가슴에 달린 작은 태극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허미미는 금메달을 들고 할머니 영전을 찾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2024 파리 올림픽이 끝난 뒤 허미미는 자신의 메달을 들고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추모기적비를 찾았다. 조상이 지키려 했던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어 얻은 메달을 바쳤다.
이번에는 색깔이 금빛으로 바뀌었다. 허석 지사에서 할머니를 거쳐 허미미까지. 한 가족의 기억은 그렇게 100년의 시간을 건너 이어졌다.
스포츠가 사람을 울리는 이유는 기록과 메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포기했으며, 무엇을 견뎌 여기까지 왔는지가 보일 때 우리는 스포츠를 넘어 한 인간의 삶을 보게 된다.
허미미가 일본에서 따낸 금메달이 유독 특별한 이유도 그래서다. 100년 전 한 독립운동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다. 그리고 그 후손은 100년 뒤 자신의 의지로 그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았다.
시상식에서 허미미는 애국가를 끝내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날 나고야에서 가장 크게 울린 애국가는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태극기를 바라보며 끝내 참지 못했던 그 눈물 한 방울.
그것이야말로 100년을 건너온 금메달의 무게였고, 허미미가 대한민국에 들려준 가장 뜨거운 애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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