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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보다 빛난 ‘선수 안세영’…유혹을 이긴 AG 2연패 [박순규의 창]
항저우 이후 광고·방송보다 훈련 택한 세계 1위
57전 56승1패, 자기절제가 만든 ‘믿고 보는 여제’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29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2-0으로 제압하고 대회 사상 첫 2연패의 위업을 이룩한 뒤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이치노미야(아이치현)=AP.뉴시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29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2-0으로 제압하고 대회 사상 첫 2연패의 위업을 이룩한 뒤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이치노미야(아이치현)=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힘들어 죽을 뻔했다."

웃으며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안세영(24·삼성생명)은 29일 일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3위 야마구치 아카네를 2-0(21-17 21-9)으로 꺾었다.

그 순간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배드민턴이 정식종목이 된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여자 단식에서 처음 나온 아시안게임 2연패다. 항저우에 이어 아이치·나고야까지, 4년의 시간을 금빛으로 연결했다. 그러나 안세영의 이번 금메달이 특별한 이유를 단순히 ‘최초’라는 두 글자에서만 찾는다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더 놀라운 숫자가 있다. 올해 57경기에서 56승1패. 승률 98%가 넘는다. 지난 3월 전영오픈 결승에서 왕즈이를 상대로 당한 패배 이후 다시 긴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는 정상에 복귀했고, 이어 중국마스터스에서도 한 게임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다. 2023년 세계선수권 우승,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 2025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지나 2026년 다시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정상을 밟았다. 한 번의 섬광이 아니라 시대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방송 출연이나 광고 촬영 대신 훈련장을 택한 '선수' 안세영은 오직 코트 위에서 경기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며 포효하고 있다./이치노미야=AP.뉴시스
방송 출연이나 광고 촬영 대신 훈련장을 택한 '선수' 안세영은 오직 코트 위에서 경기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며 포효하고 있다./이치노미야=AP.뉴시스

야마구치에게도 최근 9연승이다. 한때 세계 여자배드민턴을 함께 호령하던 숙적을 이제는 자신만의 리듬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날도 그랬다. 1게임에서 16-16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길게 랠리를 끌고 가 상대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빈 공간이 생기는 순간 정확하게 찔렀다. 2게임은 21-9. 기술 이전에 경기 전체를 설계하고 지배하는 힘이 달랐다.

그런데 지금의 안세영을 만든 것은 어쩌면 화려한 스매시보다 하지 않은 것들인지 모른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릎 부상을 견디며 2관왕에 오른 뒤 안세영에게는 방송과 인터뷰, 광고 제안이 쏟아졌다. 스물한 살의 젊은 선수에게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안세영은 달랐다.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운동선수"라고 규정하며 외부 활동보다 치료와 휴식, 그리고 다음 목표를 택했다. "앞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으니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겠다"고 했다. 상업적 활동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무엇이 먼저인지를 분명히 선택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제갈량이 아들에게 남긴 '계자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마음이 담박해야 뜻을 밝힐 수 있고, 고요해야 멀리 갈 수 있다는 의미다.세상은 정상에 오른 선수에게 끊임없이 다른 길을 보여준다. 광고도 있고 방송도 있으며 명성과 돈도 있다. 그것들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정상에 오른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받는 것은 당연하다.

안세영은 가장 박수받을 때 다시 코트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를 때 오히려 셔틀콕 소리만 들리는 훈련장을 선택했다./이치노미야=AP.뉴시스
안세영은 가장 박수받을 때 다시 코트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를 때 오히려 셔틀콕 소리만 들리는 훈련장을 선택했다./이치노미야=AP.뉴시스

문제는 무엇을 먼저 놓느냐다. 안세영은 가장 박수받을 때 다시 코트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를 때 오히려 셔틀콕 소리만 들리는 훈련장을 선택했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다. 반복적이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지루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막스 베버는 인간이 자신의 직업을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하나의 ‘소명(Beruf)’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주목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천직처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자세다.

안세영에게 배드민턴이 그렇다. 그에게 코트는 유명해지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장소처럼 보인다. 승리했다고 훈련을 멈추지 않고, 세계 1위가 됐다고 완성을 선언하지 않는다. 2025년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 패했을 때조차 "저 자신을 믿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며 "더 완벽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 뒤 세계선수권 정상을 되찾았다.

장인(匠人)은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쇠퇴한다. 칼을 만드는 장인은 평생 칼을 갈고, 도공은 평생 흙과 불을 배운다. 안세영에게 셔틀콕도 그런 대상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 팬들은 안세영 경기를 ‘믿고 본다’.

이 표현 속에는 단순히 이길 것이라는 기대만 들어 있지 않다. 어떤 위기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준비한 만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어도 기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신뢰가 함께 들어 있다.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스물한 살의 청년은 3년 뒤 아시안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 화려한 유혹보다 코트를 먼저 바라봤고, 박수받는 시간보다 땀 흘리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갔다./이치노미야=AP.뉴시스

스타는 박수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전설은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빨리 결과를 원한다. 짧은 영상 몇 초로 사람을 평가하고, 한 번의 성공으로 영웅을 만들었다가 한 번의 실패로 끌어내린다. 과정 대신 성과, 축적 대신 속도, 내공보다 노출이 앞서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안세영은 다소 오래된 방식으로 성공하고 있다.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연습한다. 이기고도 돌아가 훈련하고, 세계 1위가 된 뒤에도 부족한 것을 찾는다. 그것은 우리 부모 세대가 ‘장인정신’이라고 불렀고, 옛사람들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불렀던 삶의 방식과 닮았다. 매일 조금씩 산을 옮기다 보면 결국 길이 열린다는 믿음이다.

아시안게임 사상 첫 여자 단식 2연패는 그래서 결과라기보다 과정에 대한 보상에 가깝다. 안세영의 진짜 경쟁자는 이제 야마구치도, 왕즈이도, 천위페이도 아닐지 모른다. 어제의 자신이다. 세계 1위에 오른 뒤에도 오늘의 자신을 넘어야 한다는 불안하고 고독한 싸움이다.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스물한 살의 청년은 3년 뒤 아시안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 화려한 유혹보다 코트를 먼저 바라봤고, 박수받는 시간보다 땀 흘리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갔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안세영의 금메달만 보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오래 한길을 걸을 수 있는가를 본다. 금메달은 목에 걸리지만, 신뢰는 시간 속에 쌓인다.

‘믿고 보는 안세영.’ 그 짧은 다섯 글자가 어쩌면 아시안게임 2연패보다 더 얻기 어려운 그의 진짜 훈장인지도 모른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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