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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인데 왜 불안했나'...이민성호 살린 이영준·엄지성·배준호 [박순규의 창]
4-0 대승 뒤에 가려진 전반의 답답함…2-0 전까지 베트남 역습에 ‘휘청’
이영준의 높이·결정력, 엄지성의 돌파, 배준호의 창의성이 살린 4강행


이민성호의 이영준(9번)이 25일 베트남과 2026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배준호와 세리머니하고 있다./나고야=KFA
이민성호의 이영준(9번)이 25일 베트남과 2026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배준호와 세리머니하고 있다./나고야=KFA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스코어만 보면 완승이다. 4-0. 아시안게임 4연패를 노리는 팀이 8강에서 받아들 만한 성적표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숫자만으로 안심하기는 어렵다.

25일 베트남전에서 드러난 이민성호의 경기력은 4-0이라는 스코어만큼 압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32분 김지수의 두 번째 골이 터지기 전까지는 언제 균형이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그라운드를 감쌌다.

그 답답함을 걷어낸 것이 결국 선수 개인의 힘이었다. 이영준의 높이와 결정력, 엄지성의 돌파력, 배준호의 창의성이었다. 그래서 이 세 선수는 지금 이민성호에 더없이 반가운 ‘청량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단연 이영준이다. 192㎝ 장신 스트라이커 이영준은 이번 대회 첫 선발 출전에서 두 골을 터뜨렸다. 전반 15분 이현주의 크로스를 높은 타점의 헤더로 방향만 바꿔 선제골을 만들었다. 알고도 막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평균 신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베트남 수비진을 상대로 이민성 감독이 준비한 ‘고공 플레이’가 정확히 적중했다.

더 인상적인 장면은 두 번째 골이었다. 후반 36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공을 잡은 이영준은 단순히 큰 키를 이용하지 않았다. 수비수를 직접 제치고 좁은 각도에서 날카로운 왼발 슛을 꽂았다. 제공권만 좋은 전형적인 타깃맨이라는 평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만한 장면이었다.

높이로 한 골, 발로 한 골. 이영준의 멀티골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상대 수비가 공중볼을 대비하면 발로 해결하고, 땅볼을 차단하면 192㎝의 높이가 기다리고 있다. 토너먼트에서 이런 공격수는 감독에게 선택지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이민성호의 '와일드 카드' 엄지성(가운데)이 15일 카타르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에서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기뻐하고 있다./나고야=KFA
이민성호의 '와일드 카드' 엄지성(가운데)이 15일 카타르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에서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기뻐하고 있다./나고야=KFA

하지만 이영준의 멀티골이 경기 전체의 불안감을 지워서는 안 된다. 한국은 선제골을 넣은 뒤 오히려 경기 템포가 떨어졌다. 전반 슈팅에서도 4-6으로 밀렸다. 패스 미스가 반복됐고 공격과 미드필드 사이의 연결도 매끄럽지 않았다. 전반 35분에는 베트남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온 뒤 골망까지 흔들렸다. 오프사이드 판정이 아니었다면 경기는 1-1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FIFA 랭킹 32위 한국이 98위 베트남을 상대로 보여준 경기라고 하기에는 불안한 시간이었다. 후반 초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의 압박이 강하지 않았는데도 패스 연결에서 실수가 나왔다. 공을 소유하고도 상대 수비를 움직이게 만드는 패턴 플레이는 부족했다. 측면으로 공을 보내고 크로스를 올리는 공격이 반복되면서 베트남도 대응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경기에 숨통을 틔운 선수가 엄지성과 배준호였다.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된 엄지성은 왼쪽 측면에서 적극적인 돌파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정체돼 있던 공격에 속도가 붙었다. 배준호 역시 후반 22분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는 등 수비 사이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공격의 온도를 높였다.

두 선수의 장점은 단순히 드리블을 잘한다는 데 있지 않다. 공을 잡았을 때 앞으로 향한다. 축구에서 밀집수비를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수비수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한 명을 제치는 것이다. 패스 열 번으로 만들지 못한 공간을 한 번의 드리블이 만들기도 한다. 엄지성과 배준호는 바로 그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상대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골은 연이어 터졌다. 후반 32분 김지수가 추가골을 터뜨렸고, 4분 뒤 이영준이 멀티골을 완성했다. 후반 43분에는 김명준까지 세 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면서 스코어는 순식간에 4-0으로 벌어졌다.

결과적으로는 대승이 됐다. 그러나 스타플레이어의 개인 능력으로 막힌 혈을 뚫은 승리가 곧 좋은 경기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개인 능력도 분명 실력이다. 손흥민이나 이강인처럼 결정적인 순간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선수가 있다는 것은 대표팀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영준·엄지성·배준호 역시 이민성호가 어려울 때 꺼내 들 수 있는 확실한 카드라는 사실을 베트남전에서 증명했다.

하지만 금메달까지 가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옛말에 ‘일엽장목(一葉障目)’,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려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4-0이라는 대승이 전반부터 이어졌던 문제점을 가려서는 곤란하다. 패스 속도, 공격진의 연계, 수비 전환, 상대 압박을 벗어나는 방법은 여전히 다듬어야 한다.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베트남전처럼 여러 번의 실수를 허용하고도 상대가 이를 놓쳐준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이제 아시안게임 사상 첫 남자축구 4연패까지 두 경기만을 남겨놓았다. 이영준의 높이는 분명 강력하다. 엄지성과 배준호의 돌파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금메달은 몇몇 스타의 번뜩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4강부터 필요한 것은 ‘누가 해결해 주겠지’가 아니라 선수 11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축구다.

베트남전에서 이영준·엄지성·배준호라는 반가운 청량제를 발견했다면, 이제 이민성 감독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청량제가 필요한 답답한 축구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민성호의 '와일드 카드' 엄지성(가운데)이 15일 카타르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에서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기뻐하고 있다./나고야=KFA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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