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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레 저그' 놓친 김시우, 메이저 우승은 더 가까워졌다[박호윤의 IN&OUT]
디 오픈 공동 6위, 자신의 역대 메이저 최고 성적
시즌 톱10, 프레지던츠컵 포인트 각 1위
우승은 없지만 꾸준함의 상징


김시우가 디 오픈 최종 라운드 6번홀 페어웨이에서 두번째 샷을 하고 있는 모습. 김시우는 이번 대회에서 공동 6위를 마크해 자신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AP.뉴시스
김시우가 디 오픈 최종 라운드 6번홀 페어웨이에서 두번째 샷을 하고 있는 모습. 김시우는 이번 대회에서 공동 6위를 마크해 자신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골프는 참 잔인한 스포츠다. 18홀 가운데 단 몇 번의 샷이 어떤 선수에게는 평생의 영광을 안겨주고, 다른 선수에게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아쉬움을 남긴다.

김시우(31 CJ)가 그랬다.

#메이저는 놓쳤지만, 미래를 얻었다

지난 20일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에서 끝난 제154회 디 오픈 최종 라운드. 전반 9홀을 마쳤을 때만 해도 김시우는 단독 선두였다. 클라레 저그(Claret Jug, 디 오픈 우승컵)를 품에 안는 듯했다. 한국 선수 최초의 디 오픈 우승, 그리고 2009년 양용은 이후 17년 만의 한국 남자골프 메이저 우승이라는 역사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로열 버크데일은 챔피언 조 선수의 마지막 퍼트가 떨어지는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우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바람과 중압감 속에 보기 4개가 이어졌고, 결국 김시우는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눈앞까지 다가왔던 클라레 저그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우승은 마지막 홀 극적인 버디로 합계 10언더파 270타를 기록한 뉴질랜드의 라이언 폭스가 차지했다.)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라이언 폭스(오른쪽)가 클라레 저그를 들고 캐디 딘 스미스와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AP.뉴시스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라이언 폭스(오른쪽)가 클라레 저그를 들고 캐디 딘 스미스와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AP.뉴시스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쉽다. 하지만 이번 디 오픈을 단순히 '우승을 놓친 대회'로만 기억한다면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번 대회는 김시우가 이제 더 이상 메이저 우승에 도전하는 선수가 아니라 메이저 우승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무대였기 때문이다.

최종 라운드 초반 김시우의 샷은 누구보다 안정적이었다. 퍼트가 홀을 외면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4번홀까지 파 행진이 이어졌지만 조급함은 없었다. 흐름을 바꾼 것은 5번홀과 6번홀이었다. 파4 가운데 가장 짧아 '파만 하면 아쉬운 홀'인 5번홀에서 첫 버디를 잡아냈고, 곧바로 코스에서 가장 긴 파4인 6번홀에서도 다시 한 타를 줄였다. 쉬운 홀에서는 반드시 기회를 살렸고, 가장 어려운 홀에서도 경쟁자보다 앞섰다.

그 연속 버디는 김시우를 단독 선두까지 끌어올렸다. 흐름도 김시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앞서 플레이를 마친 캐머런 영은 17번홀까지 버디 7개를 잡으며 공동 선두를 달렸지만 마지막 18번홀에서 벙커와 러프를 전전한 끝에 이날 유일한 보기를 범하며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시우가 9번홀을 플레이할 무렵, 가장 강력한 경쟁자 가운데 한 명이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승부의 추가 조금씩 김시우 쪽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김시우가 9번홀에서 버디 퍼트가 빗나가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AP.뉴시스
김시우가 9번홀에서 버디 퍼트가 빗나가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AP.뉴시스

#역대 개인 메이저 최고 성적 공동 6위

하지만 골프는 그런 순간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후반 들어 거세진 바람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보기 4개가 이어졌다. 결국 우승 경쟁에서는 밀려났지만, 이번 대회 공동 6위는 지난해 PGA챔피언십(공동 8위)을 넘어선 김시우 개인의 역대 메이저 최고 성적이다. 이것은 실패의 기록이 아닌, 자신이 투어 최정상급에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증명서에 다름 아니다.

-김시우 메이저 대회별 최고 성적

마스터스 공동 12위(2021년)

PGA챔피언십 공동 8위(2025년)

US오픈 공동 13위(2017년)

디 오픈 공동 6위(2026년)

더욱이 이번 디 오픈은 올 시즌 김시우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골프를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대회였다. 김시우는 이번 디 오픈 공동 6위까지 포함해 올 시즌 10번째 톱10을 기록했다. 더 놀라운 것은 비율이다. 김시우는 PGA 투어 통산 컷을 통과한 221개 대회에서 45차례 톱10에 올랐다. 통산 톱10 진입률은 약 20%를 약간 넘는 수치다.

#우승없는 선수 중 페덱스포인트 1위, 상금 2위

그런데 올해는 컷을 통과한 19개 대회 가운데 10번이나 톱10에 들었다. 무려 52.6%. 평균적으로 다섯 번 본선에 오르면 한 번 정도 우승 경쟁을 펼치던 선수가 올해는 두 번 출전하면 한 번 이상 리더보드 첫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시우는 현재 페덱스컵 포인트 7위에 올라 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우승이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라는 점이다. US오픈 준우승과 마스터스 7위 그리고 이번 디 오픈 공동 3위를 기록한 샘 번즈 보다도 앞서 있다. 상금랭킹 역시 11위다. 우승이 없는 선수 가운데서는 샘 번즈 다음으로 높다.

김시우가 10번홀에서 티샷을 한 뒤 볼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AP.뉴시스
김시우가 10번홀에서 티샷을 한 뒤 볼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AP.뉴시스

골프는 우승 한 번으로 순위가 크게 바뀌는 종목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도 우승 없이 이 정도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주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쌓아왔다는 의미다. 세계 랭킹 18위에,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팀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선수를 제외하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꾸준한 에이스로 공인받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숫자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김시우는 올해 PGA 투어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예전의 김시우는 폭발력이 먼저 떠오르는 선수였다. 2016년 PGA 투어 첫 승, 201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 등, 잘되는 날의 김시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당당히 맞선 반면 경기력의 기복은 늘 아쉬움으로 지적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어느 대회에 출전해도 우승 경쟁권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시즌 10번째 톱10과 52.6%의 톱10 진입률, 우승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페덱스컵 순위와 최상위권 상금랭킹, 그리고 프레지던츠컵 포인트 1위 등등…

이 숫자들은 김시우가 이미 메이저 우승을 다툴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이번 디 오픈은 끝이 아니라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큰 걸음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비록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클라레 저그를 품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섰지만, 그 문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한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김시우가 10번홀에서 티샷을 한 뒤 볼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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