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경찰에 엄정한 대처 요구 ‘희극’
원인은 경찰의 어설프고, 지연된 수사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지난 6월 15일이었습니다. ‘체육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각기 다른 사안으로 하루에 두 번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첫 번째는 유 회장이 일주일 전(6월 8일) 대한탁구협회장 시절 비리의혹과 관련해 금융범죄수사대의 소환조사를 받았다는 보도였습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이 이날 오전 출입기자들과의 정례 간담회에서 밝힌 것이죠. 두 번째는 파장이 컸습니다. 유승민 회장이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공원) 선거 시위로 체육단체의 피해가 크다’며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습니다.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우리 사회의 큰 이슈였던 까닭에 ‘오후 유승민’이 ‘오전 유승민’ 뉴스를 덮어버렸죠.
# ‘네티즌 수사대’나 경쟁이 치열한 유투버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죠. 이들을 통해 '유승민의 두 뉴스'는 합쳐졌습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유승민 회장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달리 말하면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정권이 피곤해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는 주장이 퍼진 겁니다. <이미지 참조> 진실은 당사자만 알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가 이를 인정할 리 없으니 말입니다. 대신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사항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권력층 수사에 대한 경찰의 떳떳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 먼저 ‘유승민 소환조사’가 왜 일주일 늦게 알려졌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체육대통령의 소환조사는 당연히 체육계의 큰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유승민 회장은 자신이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립니다. 이에 유 회장과 경찰은 비공개 소환조사에 합의했고, 몇 차례 날짜를 조정한 끝에 8일 이뤄진 겁니다. 소환조사 후에도 이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배려한 것이죠. 그런데 유승민 회장이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 한 유력인사에게 ‘00님, 조사 잘 받고 나왔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낸 것이 외부로 흘러나왔습니다. 이 사실이 서울청 출입기자들에게 전해졌고, 일부 기자들이 정례 간담회 때 이를 콕 짚어 물으니 박정보 청장이 어쩔 수 없이 답한 것입니다.
# 사실 유승민 회장 및 탁구협회 비리에 대한 경찰수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인 어설프고, 또 심하게 지연돼왔습니다. 유 회장 등 대한탁구협회 임직원은 스포츠윤리센터 조사에서 드러난 비리 혐의로 다수의 고발을 당했습니다. 스포츠윤리센터,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민변 포함), 서민민생대체육위원회, 모 탁구감독 등이죠. 이중 체육계 속사정에 어두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유승민 회장의 주소지가 있는 용인서부경찰서에 고발장을 냈고, 다른 건들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모아졌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수사가 두 갈래였고, 주는 후자였습니다. 이 경우, 사건을 병합하는 것이 보통인데, 양쪽 경찰이 시간을 끌면서 정리가 되지 않았죠.

# 이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터졌습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국정감사에서 각종 혐의에 대해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혐의를 입증한 불법 인센티브와 국가대표 바꿔치기는 물론, 법인카드 거짓말, 사무실 호화 인테리어, 가족 외유 등 새로운 혐의까지 다수 제기됐죠. 그런데 그 직후인 10월 30일 대한체육회는 ‘용인서부경찰서가 (유승민 회장에 대해) 직무유기, 업무상 배임 방조, 업무상 횡령 방조 3가지 혐의에 대해 ’범죄 인정 안 됨‘ 등의 사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금융범죄수사대가 한창 조사하고 있는데, 같은 경찰인 용인서부경찰서는 혐의가 없다고 언론에 공표한 겁니다. 한 마디로 코미디였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이사가 용인서부경찰서의 홍보대사였기 때문‘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됐습니다. 당시 금융범죄수사대의 한 수사관은 <더팩트>에 "당연히 (저희는)아직 수사 중입니다. 내부 사정을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용인서부서의 발표는)어쨌든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용인서부경찰서의 불송치 결정(2025년 10월) 이후에도 서울청의 금융범죄수사대는 관계자 압수수색 및 수십 명의 참고인 조사 등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해를 넘겨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관련 수사는 거의 끝났고, 마지막 단계인 유승민 회장의 소환조사만 남았다는 얘기가 2026년 봄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하지만 밀라노 동계올림픽 등 유승민 회장의 일정이 바빠 소환조사는 미뤄졌고 지난 8일에야 진행된 겁니다. 경찰의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8일 유승민 회장의 소환조사는 3시간 정도로 짧게 이뤄졌고, 향후 추가 소환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 경찰이 유승민 회장 및 탁구협회 비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한다고 생각되는지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정보 서울청장은 6월 15일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유승민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쳤고, 수사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수사 절차를 곧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의 수사 지연과 용인서부경찰서와 혼선 등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유체이탈화법으로 쉽게 말한 겁니다. 원래 고소고발 사건은 접수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치는 것이 경찰의 원칙(경찰수사규칙 제48조)입니다. 대한탁구협회 건은 첫 고발이 이뤄진 2025년 4월을 기준으로 하면 1년 2개월이 넘었습니다. 사실 15일 서울청 출입기자들의 사실확인 요청이 없었다면 그날 ‘유승민 소환 조사’는 뉴스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 원래 공권력의 못된 짓은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이 떨어질 때 발생하는 법입니다. 예컨대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김건희 샤넬백 사건’도 첫 보도가 나왔을 때 주류언론은 다루지 않았고, 경찰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죠. 지금에서야 다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경찰이나 유승민 회장 모두 시간을 끌 만큼 끌었습니다. 유승민 회장도 죄가 없다면 가능한 빨리 충분한 조사를 받고 혐의를 벗는 편이 좋습니다. 송치든, 불송치(무혐의)든 이제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경찰은 수사결과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래야 쉬쉬하며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자신에 대한 보도가 나온 날) 경찰의 엄정한 대처를 요구하는 웃픈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지연된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닐 뿐더러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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