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 두 선수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15일 오전(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6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는 한국 쇼트트랙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두 인물, 황대헌과 린샤오쥔(임효준)에게 각기 다른 성적표를 건넸다. 한때 한솥밥을 먹던 동료에서, 이제는 서로 다른 국기를 달고 다른 궤적을 그리는 이들의 모습은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하고도 드라마틱한 아이러니였다.
황대헌에게 이번 은메달은 단순한 2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 이른바 '팀킬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대표팀 선배 박지원과 잦은 충돌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의 레이스는 언제나 불안한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이번 밀라노의 1500m 결선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황대헌을 은메달로 이끈 결정적 동력은 동료 신동민의 거친, 그러나 정당한 승부욕이었다. 신동민이 세계랭킹 1위 윌리엄 단지누(캐나다)와 강하게 충돌하며 공간을 만들어낸 순간, 황대헌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과거 동료의 길을 막아섰다는 비판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후배가 열어젖힌 길을 통해 시상대에 올랐다. 신동민의 충돌은 페널티 없는 정당한 몸싸움이었고, 황대헌은 그 혼란을 틈타 2위로 도약했다. 비난받던 '팀킬'의 당사자가, 결정적인 순간 '팀의 도움(물론 의도된 전략은 아니었을지라도)'과 행운을 등에 업고 부활한 것이다. 실력과 운, 그리고 동료의 존재가 빚어낸 기막힌 반전이다.

반면, 중국의 붉은 유니폼을 입은 린샤오쥔의 퇴장은 쓸쓸하다 못해 허무했다. 그는 2018 평창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쇼트트랙 황제'였다. 불미스러운 사건과 국적 변경, 그리고 올림픽 출전 무산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선 꿈의 무대였기에 그의 각오는 남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준준결선 탈락. 그를 넘어뜨린 건 경쟁자도, 불운한 충돌도 아니었다. 스스로 중심을 잃고 미끄러진 '자멸'이었다. 레이스 초반 선두를 달리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고, 코너를 돌다 홀로 넘어져 펜스에 부딪히는 모습은 그의 현재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귀화하며 재기를 노렸고, 아시안게임에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올림픽 무대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황대헌이 동료의 충돌로 생긴 틈을 파고들 때, 린샤오쥔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쇼트트랙은 변수의 스포츠다. 하지만 이번 1500m 경기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동료와의 충돌로 비난받던 선수는 동료 덕분에 메달을 목에 걸었고, 조국을 등지고 떠난 선수는 아무런 방해 없이 홀로 미끄러져 링크를 떠났다. 황대헌에게 따른 천운과 린샤오쥔이 마주한 불운. 이 엇갈린 희비는 빙판 위 승부가 실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때로는 운명적인 서사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밀라노의 얼음은 누군가에게는 기적의 길을 내어주었고,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현실만을 남겼다. 두 선수의 엇갈린 운명은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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