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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임효준·이해인, 한국 빙상의 '카타리나 블룸’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억울함 속에 질주했던 김보름의 은퇴
린샤오쥔으로 돌아온 임효준
성추행 누명 벗은 이해인의 올림픽 출전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김보름은 지난 2018년 불거진 '왕따 논란'을 딛고 꿋꿋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12월 은퇴를 선언했다. 문체부 감사 결과 김보름은 오히려 피해자로 드러났다./더팩트 DB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김보름은 지난 2018년 불거진 '왕따 논란'을 딛고 꿋꿋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12월 은퇴를 선언했다. 문체부 감사 결과 김보름은 오히려 피해자로 드러났다./더팩트 DB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언론의 폭력, 다수의 마녀사냥을 다룬 문학작품을 고르라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4년)가 빠지지 않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1917~1985, 독일)의 작품으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이로 인한 사회적 편견이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요즘 우리가 얘기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등장하고, 주인공 카타리나는 그를 살해하죠. 영화로도 제작된 이 유명한 작품은 인기작가 유시민이 자신이 가장 아낀다는 책 ‘청춘의 독서’에서 자세히 소개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책의 부제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는 5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독일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5년)의 트레일러 장면. 선정적인 언론보도와 다수의 폭력을 고발한 하인리히 뵐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최근 한국 빙상계에 이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구글
독일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5년)의 트레일러 장면. 선정적인 언론보도와 다수의 폭력을 고발한 하인리히 뵐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최근 한국 빙상계에 이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구글

◆ 김보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시간

# 김보름(1993년생)은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 큼직한 발자국을 남긴 선수입니다. 그는 지난 12월 3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은퇴를 알렸습니다. 그러자 부끄러운 우리네 과거가 소환되며 반향이 일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미안했습니다’(헤럴드경제), ‘은퇴식을 해줘야 한다’(엑스포츠뉴스) 등 묵직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김보름은 2018년 그 유명한 ‘왕따주행’ 논란으로 60만 청원의 대상이 될 정도로 ‘국민 욕받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죠.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감사 결과 왕따주행은 없었죠. 충격적이게도 김보름은 오히려 피해자였습니다. 2022년 법원은 김보름이 동료선수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해 부분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김보름은 지금까지 꿋꿋이 선수생활을 이어왔습니다. 그는 은퇴를 알리며 "스케이트는 제 삶의 전부였다. 꿈을 따라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고 술회했습니다.

2018년 7월 TV 뉴스에 나와 심경을 고백하고 있는 김보름, 당시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왕따사건'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채널A '뉴스A 라이브' 캡처
2018년 7월 TV 뉴스에 나와 심경을 고백하고 있는 김보름, 당시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왕따사건'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채널A '뉴스A 라이브' 캡처

임효준, 귀화를 ‘당한’ 금메달리스트

# 임효준(1996년생)의 이야기는 더 처절합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남자 쇼트트랙 1500m)을 딴 임효준은 2019년 6월 17일 이후 삶이 격랑에 휩싸입니다. 진천선수촌에서 장난삼아 동료의 바지를 잡아당겼는데, 그의 엉덩이 일부가 노출됐습니다. 대한체육회에 성희롱 혐의로 신고가 이뤄졌고, 그해 8월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임효준의 자격정지 1년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두 시즌 선수생활 금지였습니다. 심지어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재판은 1심(2020년 5월)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항소심(2020년 11월)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021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니 혐의를 벗는데 약 2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임효준은 선수생활 지속을 위해 2020년 6월 중국으로 귀화했습니다. 규정 때문에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후 월드컵, 세계선수권 등에서 다수의 금메달을 따내며 부활했습니다. 린샤오쥔은 오는 2월 오성홍기를 달고 밀라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합니다.

왼쪽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 오른 임효준. 오른쪽은 2025년 2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린샤오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그는 최근 2026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중국 CCTV의 영상에 등장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한체육회 뉴시스
왼쪽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시상대에 오른 임효준. 오른쪽은 2025년 2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린샤오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그는 최근 2026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중국 CCTV의 영상에 등장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한체육회 뉴시스

◆이해인, 성추행 '주홍글씨' 지우기

# 지난 1월 4일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이해인(2005년생)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극적으로 밀라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얻었습니다. 그의 첫 올림픽 출전에도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202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비롯해, 4대륙선수권 우승, 월드 팀 트로피 은메달 등을 달성하며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주자가 된 그는 2024년 5월 이탈리아 전지훈련 중 실수를 범했습니다.

숙소 내에서 동료들과 2~3차례 음주를 한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이해인 본인이 크게 반성하고, 수차례 사과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남자 후배를 성추행한 혐의였습니다. 역시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질타를 받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3년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이해인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성추행은 없었다는 판단이었죠. 그리고 본안소송 과정에서 4개월 징계로 합의해 선수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이해인은 힘든 시기에 "스케이트를 타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피겨 스케이팅(여자 싱글)의 이해인이 지난 6일 서울 태릉선수촌실내빙상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피겨 스케이팅(여자 싱글)의 이해인이 지난 6일 서울 태릉선수촌실내빙상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빙상의 잃어버린 명예들

#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 빙상계는 여러 명의 ‘카타리나 블룸’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을 관장하는데, 세 종목에서 모두 한 명씩 나왔습니다. 하지도 않은 '왕따주행'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고, 사소한 장난이 동성 성희롱으로 낙인돼 선수자격을 상실했습니다. 또 10대의 연애가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둔갑했습니다. 언론의 황색보도가 이어졌고, 당사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에 휘말렸습니다.

다행히도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보름은 25살, 임효준은 23살, 이해인은 19살이었습니다. 이 어린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소설 속 카타리나보다 낫습니다. 아니, 많이 배우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잘난 어른들보다 낫습니다. 김보름에게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감사인사를, 그리고 린샤오쥔과 이해인에게는 응원을 보냅니다.

은퇴를 알리는 김보름 인스타그램. 김보름은 곧 여자야구를 다룬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름 인스타그램
은퇴를 알리는 김보름 인스타그램. 김보름은 곧 여자야구를 다룬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름 인스타그램

은퇴를 알리는 김보름 인스타그램. 김보름은 곧 여자야구를 다룬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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