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춘천=김용일·유성현 기자] 이 남자가 사는 법은 이채롭다.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치렀다.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K리그 통산 37경기에서 7골을 터뜨렸다. 167cm 작은 키에도 발재간이 좋았다. 1987년에는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살의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슈퍼 재능'으로 일컫는 손흥민(18·함부르크 SV)을 만들어 낸 아버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손흥민 아버지의 삶은 더욱 격렬하고 뜨거웠다. 아들 뿐 아니라 14명의 유소년 선수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며 이미 유럽까지 이름이 알려진 소문난 지도자다. 춘천 FC 유소년 축구단의 손웅정(42) 감독으로.
춘천 공지천은 손 감독의 가슴 뜨거운 열정이 숨 쉬고 있는 보금자리다. 올 초 함부르크 유소년 관계자들이 찾아와 그의 훈련 방식을 확인했고 분데스리가 2부 리그 모 구단의 유소년 팀 감독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 감독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공지천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돈과 명예가 아닌 선수를 위한 이 시대의 지도자로 남고 싶었다.

20일 섭씨 34도가 오르내리는 폭염이 내리쬐는 공지천에서 손 감독을 만났다. 아들 손흥민은 물론이고 유소년 선수들과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공 돌리기, 슈팅 훈련으로 오전 훈련을 마무리하더니 점심 식사 이후에는 14명의 선수들끼리 풋살 게임을 통해 오후 일정을 소화했다. 그런데 단순한 훈련이 아니었다.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격렬했다. 최후의 일전인 양 모든 것을 바친다.
◆ 손흥민 "아버지 처음 보시는 분들은 모두 기겁해요"
손 감독은 훈련 중 거친 호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도자가 어린아이들을 지나치게 나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할 법하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11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선수들 모두 하나같이 "이제는 감독님의 어떠한 말이라도 진심이 무엇인 줄 알고 있어요"라며 방긋 웃는다. 눈치도 제법 빨라졌단다.

손 감독의 전투적인 지도 방식에 넋 놓고 있자 아들 손흥민이 한마디 건넨다. "선수들하고 운동하시는 것 보면 환상이 깨지시는 분들이 많으세요.(웃음) 춘천에 오신 부모님들이 아버지를 보면 다들 기겁해요. 거친 말을 아끼지 않으시잖아요. 팔뚝 보셨죠? 선수들 못지않게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하세요. 무서워요. 근육이 터질 것 같아서요.(웃음)"
황승용 학부모 회장은 손 감독의 지도 방식을 오랜 시간 지켜본 인물이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자식의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손 감독과 만남 속에서 자신의 생각도 달라졌단다. "첫날 훈련하는 걸 보면서 정말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흥민이가 함부르크에 진출했을 때 자식 뒷바라지 차원에서 이제는 해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끝까지 자신이 함께해 온 선수들을 위해 지금도 모든 것을 바치고 있죠"

◆ 손 감독 "밥풀이 입 근처에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죠"
손 감독은 한국 축구 최고의 유망주인 손흥민의 아버지이기에 앞서 축구 선배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아들이 되풀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되 지난 시간 일부 재능 있는 선수들이 일찌감치 퇴보하는 과정을 지켜봤기에 아들이 올바른 축구인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흥민이처럼 일찍 주목 받은 선수들 중에서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퇴보한 선수들이 있어요. 최근에 광고 및 방송 관계자 여러분들이 흥민이를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많이 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밥풀이 입 근처에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지, 머리나 가슴에 붙어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전 흥민이가 현역 생활을 하는 동안은 가족 전체가 방송에 출연할 의향이 없어요."
손 감독의 진심은 손흥민의 열정으로 이어졌다. 시즌을 마치고 귀국한 5월 15일에도 춘천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스로 축구화 끈을 고쳐 매더니 훈련에 나섰단다. 손 감독도 아시안컵 이후 부진했던 아들을 채찍질하고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자 전력을 다했다. "일부에서 흥민이를 두고 거품이라고 평한 적이 있잖아요? 저는 인정합니다. 맞습니다. 아직 흥민이는 국가대표팀에 들어갈 실력이 아닙니다. 함부르크에서도 주전이 아니고요. 후반전에 15분 정도 교체로 뛰는 정도가 현재 수준이에요."
그만큼 의지가 남달랐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손 감독과 이들의 모습에서 폭염 따윈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열정의 그릇이 더 컸다. "흥민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직 힘이 붙은 상태가 아니에요. 그런데 구단에서 스피드 측정을 하면 3위권에 들어요. 스피드와 기본기는 충분히 갖췄죠.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엘리야 등 주전들과 당당하게 겨뤄라'라고요. 메시, 호나우두 급이 아니라면 누구나 주전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반복 훈련을 통해 분명히 어느 경쟁자, 어느 상황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거든요"

◆ 손웅정 사단…공지천에서 자라나는 슈퍼 재능
손 감독은 손흥민이 지난해 겪은 시행착오를 올해는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늘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프리시즌 9경기에서 9골을 넣고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부상했잖아요? 가슴 아팠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 흥민이한테 ‘너와 내가 이 고비를 잘 견뎌 내면 나중에 추억거리로 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실망보다는 배움으로 생각하자고 이야기를 했죠. 아시안컵 이후에도 정신력이 약해지면서 힘이 빠진 것도 있는데 이번 휴식기에 성실히 준비했어요. 새 시즌에는 후반기에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물론 지난 시즌은 아쉬운 점이 많았죠. 그렇지만 구단 관계자나 에이전트들 모두가 흥민이의 나이가 독일에서 18살인데 비교적 성공적인 시즌이었다고 칭찬을 하세요. 새 시즌에는 좀 더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 줘야죠. 이번 시즌에는 10골 이상 넣어줬으면 합니다."
손흥민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러 공지천과 인근 송암 스포츠타운을 찾는 팬들이 주중에는 50여 명, 주말에는 2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부 팬은 손 감독에게 애교 섞인 원망도 한단다. 살이 빠져 가고 있다고, 선수들을 너무 매섭게 잡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손 감독의 어떠한 행동과 말에도 믿음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축구가 발견한 손흥민의 재능도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진심에서 우러나왔다는 걸 확신했다.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 상파울리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된 김병연 등 이곳 공지천에서 태어나고 있는 '슈퍼 재능'들의 역전 인생은 이제 서막을 열고 있다. 손 감독의 애정과 지도 철학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한국 축구의 꿈나무들은 ‘제2의 박지성’, ‘제2의 이청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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