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일 기자] 최초라는 수식어만큼 잊혀지지 않는 말도 없다. 시행착오도 있지만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딛었기에 중간과 끝이 있게 된다. 그만큼 최초는 특별하다.
우리 축구계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단골처럼 따라붙는 이가 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축구 심판, 세계 최초 프로축구 여성 전임심판, 여자월드컵 최초 아시아 주심, FIFA 공인 국제대회 최초 여자 주심, 월드컵 최초 여성 해설위원, 아시아 여성 최초 FIFA 심판강사까지….
임은주(42). 바로 그가 주인공이다. 올해 3월 을지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화려하고 기백 넘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의 여판관’으로 불리던 그가 축구계에서 더 나아가 생활스포츠를 주축으로 미래의 전문 스포츠 행정가 양성에 발 벗고 나섰다.
19일 오후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 싱그러운 봄바람과 함께 축제로 신명난 교정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에 대해 들어 봤다.

"2006년 독일월드컵 해설을 마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위원으로 활동했어요. 당시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국가대표 후배들을 지도했죠. FIFA를 비롯한 국제적인 단체는 인력이 모자란 상태였어요.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을 했지만 나름대로 어학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 보니까 어느새 하나둘 씩 국제무대로 진출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전문적으로 후배들을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그라운드의 여판관'…스포츠 행정가 양성의 ★꿈
임 교수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여자 축구대표팀 1세대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이후 1994년부터 심판으로 변신해 1998년 FIFA 공인 국제심판이 되는 영광을 맛봤다. 2007년에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FIFA 심판강사로 임명됐고 순천향대학교에서 '아시아 여자축구 지역별 환경 분석과 활성화 방안'이라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교수의 꿈을 키워 왔다.
"한국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죠. 그런데 전문적인 행정가의 수는 부족해요. 체육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고 무조건 이 분야의 행정을 맡는 것은 아니잖아요? 커리큘럼은 그 자체일 뿐이죠. 실무 경험을 더 중시해야 된다고 봤어요."

임 교수는 축구계에서 드문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인재로 평가받는다. 임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녀, 일반인과 운동선수를 불문하고 스포츠 행정가를 키워 전문적인 집단으로 양성하려는 뜻을 세웠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뜻은 을지대학교 박준영 총장과 만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을지대학교는 의과계열이 워낙 유명하잖아요? 총장님께서 타 학과 구조 조정을 하시면서 스포츠 행정을 비롯해 예체능을 특화하시려는 목적이 있으셨죠. 그리고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저의 뜻을 잘 이해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당신의 대학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라'는 말씀을 해주셨죠. 저 역시도 젊은 마인드를 갖고 계신 총장님의 비전에 감탄했고요."
임 교수는 그렇게 우연한 기회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게 됐다. 그러나 부임 당시 여가디자인학과를 비롯해 특강에 참여한 학생 대다수는 '과연 스포츠 행정 분야를 제대로 일궈 낼 수 있을까,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될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임 교수의 비전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서서히 희망으로 바뀌었다.
"국제무대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의 영상 인터뷰를 모두 담았어요. 강의 때 직접 보여 줬죠. 인터뷰에서는 본인들이 어떻게 배웠는지와 과정에 대해서 직접 언급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인연을 맺은 다양한 국적의 인사들을 직접 소개시켜줬죠. 현장에도 데려가 경험을 쌓게 했어요. 각 스포츠 기관에 자원봉사 파견도 추진했고요. 지금은 학생들이 '무조건 하겠다,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할 정도로 변했어요.(웃음)"

◆ "꿈은 보여 줘야 더 커져" 현장성 중시한 교육 철학
작게 시작한 사업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직접 스포츠 행정을 다루는 전문대학 창설도 꿈꿨다. 스포츠 마인드가 있어도 외국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외국어가 능통해도 스포츠 소양이 부족한 국내 현실을 돌아봤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고 을지대학교와 손잡았다.
"저희 학생들은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요. 여기에 저는 1,2학년 때 자원 봉사를 비롯해 현장 경험을 요구해요. 그리고 3학년 때 인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단체를 소개시켜 주고요. 4학년이 지나서는 어느 정도 준비된 실무자가 되도록 하고 있어요."
임 교수는 각 스포츠 단체 뿐 아니라 지역 프로축구팀인 성남 일화와도 파트너십을 통해 자원봉사단을 꾸려 현장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 같은 프로 구단 시스템에 적응되고 교내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거침으로써 축구를 넘어 타 스포츠에도 적용하고자 한다.
"꿈은 보여 줘야 더 커지게 되죠. 과거 AF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일부러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외국 관계자를 만나거나 세미나를 할 때도 '죄송하지만 제자를 옆에 앉혀도 되겠느냐'고 물어 보고 직접 눈으로 보게 했어요. 외국 관계자들도 제자들이 눈에 익게 되면서 찾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임 교수는 이곳이 자신의 뜻을 가장 많이 펼칠 수 있는 터전이라 여긴다. 자신의 포부를 함께 나눌 수 있고 도울 수 있다는 데서 뿌듯한 마음을 새삼 느낀다.

◆ "'그때그때 달라요'가 프로"…안정환 퇴장 파문? 기억 남아
자연스럽게 심판 시절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는 “프로는 절대 잘하는, 절대 못하는 심판도 없어요. 프로는 프로죠. 그때그때 달라요가 프로라고 생각해요”라며 그라운드에 섰던 그날을 회상했다. 지금도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그라운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넣어 놓고 그때의 일들은 잊지 않고 있다.
"1군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2군에서 일부러 까다로운 경기에 투입할 것을 자청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약이 오르거나, 욕을 퍼붓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죠. 만들어지지 않으면 경험을 못 하잖아요? 3년 간 남자 선배들과 100경기 이상을 치렀어요."
올림픽과 월드컵을 경험한 그는 K리그 전임심판으로 활약할 당시 처음에는 프로 선수들이 연예인 보듯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이 정한 기준과 타협하지 않은 삶을 살아 왔듯이 '프로는 담력 싸움'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기준 삼아 단호한 판정을 했다. 이런 판정이 계속되자 선수들은 호감을 보였다.

"저는 교과서적인 판정 기준을 갖고 경기에 나섰죠. 그렇게 하면서 선수들과 친분도 쌓고 좋은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었어요."
임 교수하면 떠오르는 경기는 단연 당시 최고의 스타인 안정환을 퇴장시킨 1999년 대한화재컵 준결승전이다. 부산과 울산의 라이벌 매치여서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의 프로 3번째 경기였어요.(웃음) 더구나 양팀이 라이벌인데다 결승 길목에서 만났잖아요. 당시 심판 위원장께서 머리 아픈 경기인지라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죠. 그런데 저에게 몸이 어떠냐고 물어보셨어요.(웃음) 그래서 좋다고 했고요."
"두 가지 확답을 받았죠. FIFA 룰로 할 것과 팀이나 선수를 보지 않고 규칙에 맞게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에요. 당시 퇴장이 2개 나오고 경고도 꽤 많이 나왔어요. 국가대표 선수들도 많았던 양팀의 경기인지라 책임감을 더욱 느꼈죠. 당시 (안)정환이는 상대 선수를 가격했기에 퇴장은 맞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실수한 점은 원인 제공을 한 상대 선수에게 경고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에요.(웃음) 부상으로 잠시 그라운드에서 나간 것을 놓쳤죠. 굉장한 이슈가 됐고요.(웃음)"

담대한 도전을 택했다. 인생에서 최초라는 것이 여러 가지 혜택도 많았지만 개척자의 정신 없이는 불가능했다. 오기를 왼손에, 집념을 오른손에 거머쥐고 끊임없는 도전에 나선 임 교수 삶의 과정은 다양한 경험을 가져다 줬다.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는 미래의 인재들과 그의 만남은 쉽지 않은 인연처럼 다가왔다.
"을지대학교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미래의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능한 스포츠 행정가 양성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더팩트 독자 여러분들도 건강하시고 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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