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오네 신뢰 지속...바이에른·바르셀로나전이 진가 발휘할 무대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에서 가장 잔인한 거리는 골대와 골망 사이다. 최대 12cm가 환호와 탄식을 가르고, 영웅과 아쉬운 선수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25)이 지금 그 운명의 경계에 서 있다. 팀은 파죽의 7연승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선두에 올라섰지만, 정작 이강인은 6경기째 골과 도움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다. 골이 터지지 않는다고 축구까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지난달 31일 레반테와의 2026~2027시즌 라리가 11라운드 원정경기에서 67분을 뛰며 팀의 2-0 승리에 힘을 보탰다. 전방 압박과 패스 연결, 공간 창출에서 자신의 몫을 해냈다. 하지만 후반 10분 회심의 왼발 슈팅이 상대 수비수에게 맞고 굴절된 뒤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시즌 3호골을 눈앞에서 놓친 순간이었다.
골대 불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에스파뇰전에서는 이강인의 감각적인 백힐 패스를 받은 마르코스 요렌테의 슈팅이 골키퍼 손끝을 거쳐 크로스바를 때렸다. 당시에는 도움이, 이번에는 득점이 골대에 가로막혔다. 2주 사이 두 번이나 골대가 이강인의 공격포인트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6경기째 이어진 공격포인트 침묵이 더욱 야속하게 느껴진다. 올 시즌 라리가 11경기에서 2골 1도움. 이강인의 재능과 기대치를 고려하면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는 성적이다. 특히 최전방 투톱과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는 공격수에게 골과 도움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것은 때로 축구의 본질을 놓치게 한다. 골과 도움은 공격의 최종 결과일 뿐,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숫자는 6이 아니라 13과 11이다.
이강인은 올 시즌 아틀레티코가 치른 공식전 14경기 가운데 13경기에 출전했고, 그중 11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결장한 경기는 가벼운 허벅지 부상으로 쉬었던 슈투트가르트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경기뿐이다. 출전율은 92.9%, 선발 출전 비율은 전체 공식전 기준 78.6%다.
이는 단순히 기회를 부여받는 수준을 넘어 팀의 실질적인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경쟁하는 아틀레티코에서 이 정도의 출전 비중은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감독은 디에고 시메오네다. 시메오네는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보다 전술적 규율과 헌신, 조직력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공격수라 하더라도 수비에 가담하지 않거나 전술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 감독이 이강인을 계속 선발로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이강인이 팀 전술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레반테전에서도 이강인은 패스 34개 중 31개를 성공시켜 91%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롱패스는 3개 모두 정확했다. 앞선 에스파뇰전에서도 패스 성공률 93%에 세 차례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다. 공을 소유하고 연결하는 능력만큼은 안정적이다.
물론 개선할 부분도 분명하다. 레반테전에서 드리블 성공률은 17%, 지상 볼 경합 성공률도 17%에 그쳤다. 축구 통계업체 소파스코어가 부여한 평점 6.4점은 선발 선수 중 가장 낮았다. 상대 수비를 직접 제압하는 능력과 마지막 순간의 결정력에서는 더욱 날카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의 평가는 숫자만큼 차갑지 않다. 스페인 스포츠 전문지 '문도 데포르티보'는 이강인의 연계 플레이에 주목하며 알렉스 바에나, 파블로 바리오스와의 패스 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AS' 역시 이강인이 더 자주 공을 만지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는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이강인은 지금 자신의 축구를 버려야 할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축구에 마지막 한 조각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한 조각이 바로 결정력이다.
이강인에게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골을 넣지 못한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조급증이다. 골을 의식한 나머지 무리한 슈팅을 남발하거나 동료와의 연계보다 개인 돌파에 집착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잃을 수 있다.
축구는 혼자서 완성하는 예술이 아니다. 11명이 서로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공간과 시간을 나눌 때 비로소 골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진다. 특히 시메오네의 축구에서 공격수는 골잡이인 동시에 전방의 첫 번째 수비수이자 공격의 연결고리다.
이강인은 이미 그 역할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강점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다. 패스의 정확성에 상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을 더하고, 슈팅의 과감함에 상황 판단의 냉정함을 보태야 한다.
옛말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고 했다. 물이 차오르면 배는 저절로 뜬다는 뜻이다. 충분한 실력과 준비가 쌓이면 기회가 왔을 때 자연스럽게 결과로 이어진다는 교훈이다. 물론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시간을 준비의 과정으로 채워야 한다.

이강인에게도 지금은 그런 시간이다.
눈앞의 골대 불운을 한탄하기보다 다음 슈팅의 정확도를 높이고, 공격포인트 침묵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팀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현명하다. 골을 넣기 위해 축구 전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에 마지막 순간의 집중력과 침착함을 더하면 된다.
때마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무대도 다가오고 있다. 아틀레티코는 오는 4일 김민재가 활약하는 바이에른 뮌헨과 UCL 리그 페이즈 4차전을 치른다. 이어 9일에는 바르셀로나와 라리가 선두 경쟁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맞대결에 나선다.
두 경기는 이강인에게 단순한 정규시즌 일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는 유럽 정상급 수비 조직력과 맞서 자신의 창의성을 증명해야 한다. 김민재와의 한국 선수 맞대결 가능성도 관심거리다. 바르셀로나전에서는 강한 압박 속에서도 공을 지켜내고 결정적인 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큰 경기에서 필요한 것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믿고 가장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냉정함이다.
선수에게는 누구나 '별의 순간'이 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재능과 노력이 결정적인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조급하게 쫓는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선수만이 찾아온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강인은 이미 시메오네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낯선 팀의 전술과 동료들에게도 빠르게 녹아들었다. 팀은 7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골만 터지지 않았을 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토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지금의 여섯 경기를 실패의 시간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위한 축적의 시간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다만 신뢰가 영원한 출전 보증수표는 아니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쟁은 계속되고,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결과의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골대는 두 번이나 이강인을 외면했다. 그러나 시메오네 감독은 아직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크다. 골대 불운은 선수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감독의 신뢰를 지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노력과 경기력에 달려 있다.
축구는 한 경기의 골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득점하지 못한 여섯 경기가 다음 한 경기의 결정적인 골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이강인이 기다려야 할 것은 단순히 운이 좋은 날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가장 빛나게 펼칠 수 있는 '별의 순간'이다.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라는 강호를 앞두고 있는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서두르는 발끝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조급해하지 마라, 이강인. 별은 준비된 순간에 가장 밝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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