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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에 필요한 건 '실권형 선장'… 모레노 임기, 아시안컵까지 연장해야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사분오열된 대표팀, 불확실한 임시감독 체제로는 통솔 한계
미룰 수 없는 감독 거취 결정...모레노에게 책임과 권한 부여해야


임시 사령탑 모레노 감독(맨 윗줄 가운데)을 비롯한 한국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지난 9월 19일 부천종합운동장을 방문해 K리그1 부천-김천상무전을 관전하며 K리그의 대표팀 승선 가능한 선수들을 살펴보고 있다./부천=K리그
임시 사령탑 모레노 감독(맨 윗줄 가운데)을 비롯한 한국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지난 9월 19일 부천종합운동장을 방문해 K리그1 부천-김천상무전을 관전하며 K리그의 대표팀 승선 가능한 선수들을 살펴보고 있다./부천=K리그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한국 축구가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리는 공석이고, 국가대표팀 사령탑의 임기마저 오는 11월까지로 한정돼 있다. 당장 팀을 이끌어야 할 감독은 있지만, 그에게 어디까지 권한과 책임을 맡길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선수단 내부의 분위기 역시 심각하다. 일부 주축 선수들의 은퇴설은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주장 손흥민과의 갈등설까지 피어오르며 팀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지난 2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 직후 황인범이 "회장님도 없고 감독님도 임시 감독님이라 어떻게 될지 미래는 모르는 상황이고, 문제점 해결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한 대목은 뼈아프다. 대표팀 내부에서도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의 연속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외부 환경마저 최악이다. 내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 예정인 아시안컵은 중동 정세의 여파로 정상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개최지 변경이나 1년 연기론이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대표팀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황인범이 지난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A매치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코리아풋볼센터에서 팀 훈련에 임하고 있다./천안=KFA
황인범이 지난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A매치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코리아풋볼센터에서 팀 훈련에 임하고 있다./천안=KFA

가장 답답한 대목은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의 입지다. 당초 9월부터 11월까지 6차례의 A매치 성과를 바탕으로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길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으나, 아시안컵이 연기되거나 불발될 경우 계약이 자동 종료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한국 축구는 사령탑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스탠스를 강요받고 있다. 임시 선장에게 키를 맡겨두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온전한 선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모레노 감독이 지휘한 9~10월 A매치 4경기의 소집 기간은 3주였지만, 선수단 전체가 함께 훈련한 시간은 6일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 경기 이후 선수들이 외박을 나가면서 전술 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했고, 선수단 전체가 조직력을 다듬을 기회도 제한됐다는 것이다. 모레노 감독이 구상한 전술을 선수들에게 익히게 할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셈이다.

모레노 감독 역시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는 취지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선수들의 요구를 축구협회가 받아들여 외박을 허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감독의 의사와 무관하게 훈련 여건이 결정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감독에게 실질적인 지휘 권한이 주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표팀을 이끌 임시 감독을 선임하고 성과를 평가하겠다면서도, 정작 전술과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기회는 보장하지 않은 셈이다. 감독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에 걸맞은 훈련 여건과 권한부터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 친선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착잡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울산=뉴시스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 친선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착잡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울산=뉴시스

축구협회에 묻고 싶다. 과연 지금 새로운 정식 감독을 선임할 준비와 행정적 동력이 갖춰져 있는가. 적어도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나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 아시안컵까지를 염두에 두고 모레노 감독과 계약했다면, 이제는 그 구상을 유지할 것인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대회 일정에 변수가 생길 경우 어떤 원칙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11월 A매치 두 경기를 모두 지켜본 뒤 감독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새로운 사령탑을 선임할 시간적 여유를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모레노 감독의 거취를 불확실한 상태로 방치한다면, 이는 대표팀 운영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레노 감독의 앞선 A매치 4경기를 완벽한 성공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술적 완성도와 경기 운영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당장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구체적인 준비와 대안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모레노 체제의 변화 방향을 이어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기회를 주는 것 역시 현실적인 선택이다. 더 이상 여론의 눈치만 살피지 말고, 모레노 감독의 임기를 조장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평가전이 지난 9월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토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더팩트DB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평가전이 지난 9월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토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더팩트DB

축구협회는 아시안컵 개최 일정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룰 것이 아니라, 모레노 감독의 임기와 향후 대표팀 운영 계획을 조속히 확정하고 공식 발표해야 한다. 임기를 연장한다면 그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의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축구를 구현하고 그 결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임기와 권한이 불확실한 임시 감독이 아니라, 명확한 책임 아래 팀을 이끌 수 있는 사령탑이다. 축구협회가 더 이상 결정을 미루지 않고 모레노 감독의 임기와 권한을 명확히 해야 내부 갈등과 혼란에 휩싸인 대표팀도 11월 A매치부터라도 분명한 방향 아래 경기를 치를 수 있다. 한국 축구의 표류를 끝내기 위한 결단이 시급하다.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평가전이 지난 9월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토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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