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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없이도 빛난 33분' 이강인, 시메오네가 믿는 '이유' [박순규의 창]
10일 알라베스와 라리가 8라운드 교체 33분 활약, ATM 2-1 勝 기여
32회 터치·기회창출 3회…'9월 MVP'의 진화
14일 맨유전 기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이 10일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 2026~27 라리가 8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교체멤버로 출전, 33분 동안 활약하며 2-1 승리에 기여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강인이 10일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 2026~27 라리가 8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교체멤버로 출전, 33분 동안 활약하며 2-1 승리에 기여했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에서 선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오래 뛰었느냐가 아니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보여줬느냐가 중요하다. 때로는 화려한 드리블 한 번보다 정확한 패스 하나가 더 값지고, 무모한 질주보다 절제된 움직임이 팀을 승리로 이끈다. 축구가 경험과 함께 성숙해지는 이유다.

이강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그랬다. 10일 스페인 비토리아 에스타디오 데 멘디소로차에서 열린 2026~2027시즌 스페인 라리가 8라운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의 원정 경기. 이강인은 후반 12분 교체 투입돼 약 33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골도 도움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발끝에는 이전과 달라진 축구가 담겨 있었다.

아틀레티코는 알레한드로 그리말도의 선제골(33분)과 크리스티안 로메로의 결승골(87분)을 앞세워 알라베스를 2-1로 제압했다. 수적 우위에도 상대의 저항에 고전한 진땀승이었다. 하지만 승점 3점은 값졌다. 아틀레티코는 4연승을 달리며 6승 1무 1패, 승점 19로 실시간 리그 2위에 올라섰다.

이강인의 33분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승리에 힘을 보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경기의 흐름과 자신의 몸 상태를 읽으며 어떻게 축구를 해야 하는지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 33분의 절제, 이강인의 축구가 달라졌다

이강인에게 이번 알라베스전은 결코 평범한 경기가 아니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9~10월 A매치 일정을 소화한 뒤 스페인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아틀레티코에서 국가대표로 차출된 선수는 무려 17명. 그 가운데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선수도 이강인이었다.

알라베스와 원정경기에서 2-1로 승리, 4연승을 달리며 라리가 실시간 2위로 올라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알라베스와 원정경기에서 2-1로 승리, 4연승을 달리며 라리가 실시간 2위로 올라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더욱이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는 발목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전반만 뛰고 교체됐다. 시차와 장거리 이동, 누적된 피로에 부상 우려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이강인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1-1로 팽팽하게 맞선 후반 12분, 그를 피치로 불러들였다. 승부의 균형을 깨기 위해 믿을 만한 선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강인의 움직임은 흥미로웠다. 이전처럼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 수비를 정면으로 돌파하거나 넓은 지역을 쉼 없이 누비지 않았다. 주로 오른쪽 터치라인 부근에 자리를 잡고 상대 수비의 간격을 살폈다.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 패스의 방향과 타이밍으로 공격의 활로를 찾았다.

축구통계매체 풋몹에 따르면 이강인은 33분 동안 32차례 볼을 터치하고 26차례 패스를 시도해 22개를 성공시켰다. 패스 성공률은 약 85%. 기회창출 3회, 상대 페널티지역 안 터치 3회, 정확한 크로스 2회(3회 시도)를 기록했다. 평점은 7.2점이었다.

화려한 수치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과 몸 상태를 고려하면 의미 있는 기록이다. 특히 33분 동안 만들어낸 세 차례의 기회창출은 그의 공격적 영향력이 여전했음을 보여준다.

이강인은 빠르게 뛰는 대신 공을 빠르게 움직였다. 원터치 패스도 눈에 띄었다. 수비수를 직접 제치는 대신 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찾았다. 자신의 몸을 소모하는 대신 상대 수비의 움직임을 이용했다. 축구에서는 이를 경기 운영 능력이라고 부른다. 젊은 선수의 재능이 경험을 만나면서 얻는 소중한 자산이다.

아틀레티코 팬들이 직접 선정한 9월의 선수상을 수상한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팬들이 직접 선정한 9월의 선수상을 수상한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9월의 선수'가 말해주는 것, 이제는 인정받는 주역

알라베스전에 앞서 이강인에게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아틀레티코 팬들이 직접 선정한 9월의 선수상을 받은 것이다.

지난 7월 파리 생제르맹(PSG)을 떠나 아틀레티코에 입단한 지 불과 석 달 만이다. 8월 말라가와의 라리가 데뷔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9월 오사수나전에서는 시즌 2호골을 기록하며 4-0 대승에 앞장섰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라이벌전에서도 89분 동안 활약하며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강인은 이날 알라베스전까지 라리가 전 경기(9경기)에 출전하며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강인의 8월 말라가전 득점은 라리가 공식 '8월의 골'에도 선정됐다. 그리고 9월에는 아틀레티코 팬들의 선택까지 받았다. 주목할 것은 그의 수상 소감이다. "트로피를 받는 것도 기쁘지만 우리가 함께 해온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덕분에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아틀레티코의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꼽았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과 팬들이 서로 가깝다는 것이다. 축구는 혼자 빛나기 위해 열한 명이 뛰는 종목이 아니다. 열한 명이 하나로 움직일 때 비로소 개인의 재능도 빛난다. 이강인의 발언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동료와 함께 성공하는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PSG 시절 이강인은 세계적인 스타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다. 출전 시간과 역할이 유동적이었고, 때로는 자신의 장기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아틀레티코에서는 다르다. 팬들의 인정을 받으며 팀 공격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화려한 개인기보다 시메오네 감독이 중시하는 조직적 움직임과 헌신의 가치를 자신의 축구에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령탑 디에고 시메오네(왼쪽) 감독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새로운 7번' 이강인./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령탑 디에고 시메오네(왼쪽) 감독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새로운 7번' 이강인./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 시메오네의 신뢰, 맨유전에서 확인할 다음 단계

시메오네 감독의 축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뛰어난 기술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수비 가담과 전술적 규율, 치열한 경쟁을 견딜 정신력이 요구된다.

이강인은 그 까다로운 환경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알라베스전에서 선발로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승부가 걸린 순간 시메오네 감독이 그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수적 우위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아틀레티코의 경기력은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 42분 알렉스 바에나의 절묘한 오른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받은 로메로의 헤더 결승골이 나오기 전까지 승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강인 역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경기 전체를 지배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제한된 체력 속에서 공격의 연결고리가 됐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특히 발목 이상에 대한 우려를 안고도 실전에서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줬다는 점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아틀레티코는 오는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리그 페이즈 2차전을 치른다. 라리가에서의 상승세를 유럽 무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가늠할 중요한 승부다.

이강인에게도 특별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알라베스전에서 체력을 아끼며 실전 감각을 유지한 것이 맨유전 활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시메오네 감독이 선발 출전 기회를 부여할지도 관심이다.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 수비를 읽는 능력만큼 자신의 몸 상태와 팀이 요구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강인은 이제 무조건 많이 뛰고, 많이 드리블하고, 강하게 슈팅해야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경기를 읽고, 필요한 순간 공을 보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스물다섯. 축구선수로서 기술과 경험이 가장 아름답게 결합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알라베스전의 33분은 이강인의 화려한 독무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팬들이 선정한 9월 MVP의 가치가 결코 골과 도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좋은 선수는 공을 잘 다루지만, 더 좋은 선수는 경기의 시간을 다룬다. 이강인이 아틀레티코에서 보여주고 있는 변화가 반가운 이유다. 어쩌면 그의 진짜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령탑 디에고 시메오네(왼쪽) 감독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새로운 7번' 이강인./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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