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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악수하고 끝낼 건가...한국 축구, 이번엔 도려내야 한다 [박순규의 창]
반복되는 갈등설에 주축 선수 은퇴설까지
봉합으로 버텨온 한국축구대표팀의 위기
특권과 침묵, 책임회피부터 수술하라


손흥민이 A매치 통산 59골을 기록, 차범근의 48년 묵은 기록을 넘어서 지난 6일 황인범 황희찬 김민재의 '은퇴설'이 불거져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에서 패배한 뒤 안타까워하는 황인범./뉴시스
손흥민이 A매치 통산 59골을 기록, 차범근의 48년 묵은 기록을 넘어서 지난 6일 황인범 황희찬 김민재의 '은퇴설'이 불거져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북중미 월드컵 남아공전에서 패배한 뒤 안타까워하는 황인범./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한쪽에서는 한국 축구의 역사가 새로 쓰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표팀의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눈물이 흘렀다.

손흥민이 A매치 151경기 만에 59호 골을 터뜨리며 차범근의 약 48년 묵은 기록을 넘어선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전. 한국 축구사의 찬란한 밤이 돼야 할 그날, 김민재와 황인범, 황희찬 등 이른바 ‘96라인’의 대표팀 은퇴설이 불거졌다. 기록을 축하하는 박수 뒤로, 승리만으로는 덮을 수 없는 상처가 드러났다.

공식 은퇴 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일부 동료에게 은퇴 의사를 전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는 없다. 대표팀의 허리를 맡아야 할 서른 살 선수들이 왜 태극마크를 내려놓는 문제까지 고민하게 됐는가. 지금 한국 축구가 붙잡아야 할 질문이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다."

황인범의 말은 9년 차 국가대표의 가벼운 푸념으로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보이는데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는 호소에는, 오래 쌓인 피로와 무력감이 묻어 있다. 김민재도 개인보다 팀이 하나로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만으로 갈등의 당사자와 책임을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대표팀의 중심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결속의 문제를 꺼냈다는 사실 자체가 경고다.

한국축구의 '캡틴' 손흥민이 6일 우즈베키스탄과 친선경기에서 개인 통산 59호골을 기록한 뒤 특유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KFA
한국축구의 '캡틴' 손흥민이 6일 우즈베키스탄과 친선경기에서 개인 통산 59호골을 기록한 뒤 특유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KFA

문제의 본질은 갈등이 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뛰는 선수들이 짧은 기간 모이는 대표팀에서 의견 충돌은 생길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갈등을 듣고 조정하며, 필요할 때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중미 월드컵 실패 이후 협회 수장과 감독이 물러났다. 그러나 사람의 교체가 곧 조직의 변화는 아니다. 불만을 전달하는 통로와 의사결정 방식, 선후배 관계의 규칙이 그대로라면 새 감독도 오래된 문제를 떠안게 된다. 간판을 바꿨다고 기울어진 기둥이 바로 서지는 않는다.

임시 지휘봉을 잡은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에게도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맡겨진 여섯 경기 가운데 이미 네 경기를 치렀다. 제한된 권한과 시간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팀을 맡은 이상 전술과 선수들의 관계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협회 역시 ‘임시 감독’이라는 이유로 어려운 결정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 선배들의 역할도 돌아볼 때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함께한 세대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 영향력이 후배들의 고립을 풀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8일 우루과이전에서 실점한 후 안타까워하는 김민재(오른쪽)와 이재성./KFA
지난달 28일 우루과이전에서 실점한 후 안타까워하는 김민재(오른쪽)와 이재성./KFA

방송과 유튜브 활동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현장을 떠난 축구인도 날카로운 분석과 건전한 비판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내부 이야기를 흥밋거리로 만들고, 승패에 따라 비난의 표적을 바꾸며, 갈등을 더 키운다면 그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지는 자리는 외면하면서 책임을 묻는 목소리만 높이는 태도로는 후배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선배의 권위는 과거의 경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후배가 흔들릴 때 바람막이가 되고, 잘못했을 때는 공정하게 바로잡으며, 자신도 책임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때 살아난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이다.

'논어'의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대표팀에 필요한 것도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공동의 원칙이다. 선배의 경험은 존중하되 후배의 문제 제기를 나이로 누르지 않고, 후배의 개성은 인정하되 팀의 규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질서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스타 선수에게도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감독이 선수단 관리의 주도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명성보다 팀의 원칙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프랑스는 그 반대편에 선 사례다. 니콜라 아넬카의 퇴출에 반발한 선수들이 집단으로 훈련을 거부했고,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뛰어난 선수들을 모으는 것과 하나의 팀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규율과 신뢰가 무너지면 재능도 제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 대표팀 임시 감독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한국 축구에도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아끼는 사람이라도 공동의 원칙을 위해 책임을 묻는다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수술 역시 특정 세대를 몰아내는 일이 아니다. 이름값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 불만을 말하면 문제 인물로 취급하는 관행, 갈등이 터지면 악수와 사진으로 끝내는 대응부터 도려내야 한다.

손흥민의 헌신과 업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공로에 대한 존경과 현재의 주장 역할에 대한 평가는 함께 이뤄져야 한다. 주장 완장은 평생의 공로상이 아니라 지금 팀을 연결하는 직무다. 리더십의 세대교체를 검토하고, 주장단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갈등설만으로 손흥민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김민재와 황인범, 황희찬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고통을 말할 권리와 문제를 함께 풀 책임은 공존한다. ‘92라인’과 ‘96라인’이라는 출생연도가 대표팀 안의 편을 가르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이강인을 둘러싼 근거 없는 추측도 끊어야 한다. 과거 사건의 공개되지 않은 경위를 단정하거나, 다른 선수의 발언을 곧바로 이강인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는 일은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누구든 확인된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대표팀은 여론이 먼저 지목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를 넘기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내부 갈등이 폭발한 한국축구대표팀. 그동안 곪았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확한 처방과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KFA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내부 갈등이 폭발한 한국축구대표팀. 그동안 곪았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확한 처방과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KFA

협회는 선수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반복된 문제와 대응 실패를 확인해야 한다.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소통 책임자를 정하고, 훈련·생활·언론 대응의 공통 규칙을 세워야 한다. 주장단과 선발 기준도 재점검해야 한다. 위반 행위가 확인되면 세대와 명성을 가리지 않고 조치하고, 감독에게는 이를 실행할 권한과 책임을 함께 줘야 한다.

아시안컵은 내년 1월 7일 시작된다. 준비할 시간은 석 달 남짓이다. 또 한 번 봉합한 채 우승을 주문하기에는 지난 실패의 대가가 너무 크다.

손흥민의 59골은 한 선수가 걸어온 길을 증명한다. 황인범의 눈물은 대표팀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묻는다. 한국 축구는 두 장면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더 추락하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선수들의 호소를 듣고, 불편한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아끼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어른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앞두고 내부 갈등이 폭발한 한국축구대표팀. 그동안 곪았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확한 처방과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KFA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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