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호 첫 경기에서 보인 한국축구 ‘계승과 재건’의 가능성

[더팩트 | 박순규 기자] 후반 30분, 스무 살 김민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그리고 후반 40분, 서른네 살 손흥민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벤치로 향했다.
불과 10분 남짓이었다. 그러나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과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간 시간은 바로 그 10분이었다.
1992년생 손흥민과 2006년생 김민수. 두 선수의 나이 차는 14년이다. 손흥민이 함부르크 유소년팀에서 유럽 축구의 문을 두드리던 2010년, 김민수는 네 살 아이였다. 그런 두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같은 그라운드에 섰다.
한 사람은 한국 축구가 세계에 내놓은 가장 대표적인 선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신예다. 손흥민은 이날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 후반 13분 절묘한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A매치 통산 57번째 골. 차범근이 보유한 한국 남자대표팀 최다 58골에 이제 단 한 골 차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손흥민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축구에서 차지해 온 무게다. 함부르크에서 시작해 레버쿠젠과 토트넘, LAFC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아시아 선수가 세계 정상급 공격수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수많은 환희와 좌절을 함께했다.

북중미 월드컵의 실패 역시 그가 짊어져야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김민수가 등장했다. 김민수는 지난 8월 지로나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1000만 유로, 등번호는 상징성이 큰 10번이었다. 지난 시즌 스페인 2부 안도라에서 40경기 6골 4도움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레인저스 이적 직후 리그 데뷔전부터 선발로 나섰다.
그리고 에콰도르전에서 마침내 A매치 첫선을 보였다. 손흥민이 한국 축구의 ‘지금’이라면 김민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음’이다. 그래서 두 선수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장면은 단순한 선수 교체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실패 이후 다시 시작하려면 결국 해야 할 일도 이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힘을 버리지 않으면서 미래의 힘을 키우는 것.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이다.
모레노는 에콰도르와의 데뷔전에서 과감하게 4-4-2를 꺼냈다. 손흥민과 오현규를 투톱으로 세우고 기존 대표팀의 중심 선수들과 새로운 얼굴을 섞었다. 후반에는 김민수를 비롯해 김봉수, 조위제, 이동경, 오세훈 등 다양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결과는 3-0이었다. 오현규가 문을 열고 손흥민이 흐름을 가져왔으며 이동경이 마침표를 찍었다.
흥미로운 것은 골을 넣은 선수들의 이름만이 아니다. 베테랑과 중견, 새로운 얼굴들이 한 경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였다는 점이다. 대표팀 감독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대교체다. 그러나 세대교체는 노장을 내보내고 젊은 선수를 넣는 단순한 산술이 아니다. 경험을 끊어내는 순간 세대교체는 ‘교체’는 될 수 있어도 ‘계승’은 되지 못한다.

계왕개래(繼往開來)라는 말이 있다. 지나온 것을 이어받아 미래를 연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도 계왕개래다. 손흥민이 경험한 월드컵과 프리미어리그의 시간, 김민재와 이재성이 쌓은 유럽 무대의 경험을 김민수 같은 새로운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은 선배를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서 더 멀리 가야 할 선수들이다.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모레노의 책무다. 물론 에콰도르전 3-0 승리 하나로 한국 축구의 재건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상대의 일부 핵심 전력이 빠졌고 모레노 역시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다. 28일 우루과이전부터 더 높은 강도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새 출발에는 언제나 상징이 필요하다. 월드컵 실패 이후 처음 열린 A매치에서 손흥민은 다시 골을 넣었고, 김민수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리고 그 두 선수 사이에서 모레노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지휘봉을 잡았다.
어쩌면 이날 수원에서 우리가 본 것은 단순한 3-0 승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축구의 어제와 오늘을 짊어진 손흥민, 한국 축구의 내일을 꿈꾸는 김민수, 그리고 그 둘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 모레노.
한국 축구의 재건은 바로 그 세 사람이 만난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다. 손흥민이 걸어온 길의 끝에 김민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이어 더 멀리 가는 김민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세대교체이고,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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