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스포츠
'120년 마드리드 전쟁', 이강인의 첫 더비는 왜 주목받나 [박순규의 창]
‘왕가’ 레알과 ‘저항자’ 알레띠의 역사적 격돌…'어제의 동지' 이강인 vs 음바페
시메오네와 무리뉴, 12년 만의 벤치 대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이강인이 20일 레알 마드리드와 '마드리드 더비'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리그 2호골을 기록한 오사수나전./마드리드=신화.뉴시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이강인이 20일 레알 마드리드와 '마드리드 더비'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리그 2호골을 기록한 오사수나전./마드리드=신화.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도시는 건물과 도로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자부심, 때로는 서로를 향한 경쟁심이 도시의 얼굴을 만든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도 그렇다. 흰색 유니폼의 레알 마드리드와 붉고 흰 줄무늬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00년 넘게 한 도시의 서로 다른 표정을 대변해왔다.

이강인(25)이 뛰는 아틀레티코와 킬리안 음바페(28)의 레알이 20일 오후 11시 15분(한국시간) 마드리드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2026~2027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7라운드 ‘마드리드 더비’를 펼친다. 칼끝과 방패가 부딪치고 지략과 야망이 맞부딪치는 격전의 날이 다가왔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운명은 용기 있는 자를 따르고, 두려워하는 자를 짓밟는다"고 했다. 한 치의 양보도 허용되지 않는 축구 전쟁터, 스페인 수도를 반으로 가르는 '엘 데르비 마드릴레뇨(El Derbi Madrileño)'는 이강인의 활약을 기대하는 한국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수도 마드리드의 패권을 두고 120년 동안 이어진 두 클럽의 반목은 단순한 축구 매치 그 이상이다. 왕실의 지지와 귀족적 화려함을 등에 업고 세계 최고를 자부해 온 '로스 블랑코스(레알 마드리드)'와 남부 노동자 계급의 거친 숨결과 끈질긴 저항 정신으로 뼈대를 세운 '로스 콜초네로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태생부터 극과 극을 달렸던 두 거인의 충돌은 언제나 그라운드를 붉은 피와 뜨거운 함성으로 물들여왔다.

1906년 첫 대결 이후 120년 동안 '마드리드 패권'을 다퉈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지난 3월 경기 장면./마드리드=AP.뉴시스
1906년 첫 대결 이후 120년 동안 '마드리드 패권'을 다퉈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지난 3월 경기 장면./마드리드=AP.뉴시스

단순한 승점 3점 싸움이 아니다. 6라운드까지 레알은 5승 1패(승점 15)로 2위, 아틀레티코는 4승 1무 1패(승점 13)로 3위다. 아틀레티코가 승리하면 레알을 끌어내리고 순위를 뒤집는다. 선두 바르셀로나를 추격해야 하는 레알에도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다.

마드리드 더비는 흔히 ‘권력과 저항의 충돌’로 묘사된다. 레알은 1920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로부터 ‘레알(왕실의)’ 칭호를 받았고, 유럽 정상에 가장 많이 오른 세계적 명문으로 성장했다. 반면 1903년 바스크 출신 학생들이 창단한 아틀레티코는 마드리드 남서부의 노동자 지역을 기반으로 서민적 정체성을 키웠다.

현실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레알 팬이라고 모두 기득권층은 아니고, 아틀레티코 팬이라고 모두 노동자는 아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신화는 사실만큼 강한 생명력을 갖는다. 레알이 승리와 권위를 상징했다면 아틀레티코는 인내와 투쟁을 자신의 언어로 삼았다. 레알이 세계를 정복할 때 아틀레티코는 거대한 이웃에 맞서는 방식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두 팀의 첫 맞대결은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계 범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요 공식전 기준으로 지금까지 237차례 만나 레알이 119승, 아틀레티코가 57승을 거뒀고 61경기는 무승부였다. 전체 역사에서는 레알이 두 배 이상 많은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의 더비는 과거처럼 일방적이지 않다.

'명품 조련사'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만나 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이강인(오른쪽)./더팩트 DB
'명품 조련사'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만나 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이강인(오른쪽)./더팩트 DB

그 흐름을 바꾼 인물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다. 시메오네가 2011년 12월 아틀레티코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마드리드 더비에는 패배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틀레티코는 1999년 이후 14년 가까이 레알을 이기지 못했다.

시메오네는 2013년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레알을 2-1로 꺾으며 그 사슬을 끊었다. 장소도 레알의 안방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다. 아틀레티코가 레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상징적 밤이었다. 지난 3월 더비까지 시메오네는 레알을 상대로 50경기를 지휘해 14승 17무 19패를 기록했다. 여전히 열세지만, 부임 전 격차와 비교하면 사실상 세력 균형을 바로 세운 수치다. 레알을 상대로 가장 많은 더비를 치른 아틀레티코 사령탑 역시 시메오네다.

이번에는 맞은편 벤치에 주제 무리뉴 감독이 앉는다. ‘스페셜 원’ 무리뉴와 ‘엘 촐로’ 시메오네의 만남은 경기만큼이나 흥미롭다. 두 사람은 화려한 점유율보다 승리를 위한 효율, 전술적 규율과 강한 정신력,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현실주의를 중시한다. 자신을 향한 적대적 분위기까지 선수단의 에너지로 바꾸는 카리스마도 닮았다.

둘의 공식전 맞대결은 지금까지 6차례뿐이다. 무리뉴가 3승, 시메오네가 2승을 거뒀고 한 차례 비겼다. 무리뉴의 3승은 과거 레알을 이끌 당시 거둔 것이지만, 가장 상징적인 승부에서는 시메오네가 웃었다.

프랑스 리그앙 PSG에서 '찰떡 호흡'을 자랑하던 이강인(왼쪽)과 음바페./리그앙 홈페이지
프랑스 리그앙 PSG에서 '찰떡 호흡'을 자랑하던 이강인(왼쪽)과 음바페./리그앙 홈페이지

2013년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가 무리뉴의 레알을 연장 끝에 2-1로 꺾었다. 이 경기는 무리뉴의 첫 번째 레알 시절 사실상 마지막 결승전이었다. 이듬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시메오네가 첼시를 이끌던 무리뉴와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런던 원정 2차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이후 두 감독은 각자의 길을 걸었고, 이번에 12년 만에 적장으로 다시 만난다.

전술적으로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싸움이다. 시메오네는 촘촘한 수비 간격과 강한 압박, 볼 탈환 뒤의 빠른 전환으로 레알의 공격 속도를 끊으려 할 것이다. 무리뉴는 아틀레티코가 전진한 뒤 남겨두는 배후 공간을 음바페와 비니시우스의 속도로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공격하는 팀보다 먼저 실수를 유도하는 팀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그 벤치 전쟁의 한가운데 이강인과 음바페가 있다. 두 선수는 2023~2024시즌 PSG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이강인이 창의적인 패스와 탈압박으로 공격의 길을 열면 음바페가 폭발적인 속도와 결정력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에는 동료였지만 이제 마드리드의 엇갈린 자존심을 등에 지고 마주 선다.

두 선수의 무기는 확연히 다르다. 음바페는 넓은 공간에서 가속한 뒤 골문을 직접 파괴하는 공격수다. 이번 시즌 공식전에서도 매서운 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레알 공격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라요 바예카노전 멀티골에 이어 엘체전에서도 골망을 흔들며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다.

PSG의 조연에서 알레띠의 주연으로 '마드리드 더비'에 참여하는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PSG의 조연에서 알레띠의 주연으로 '마드리드 더비'에 참여하는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강인은 공간을 창출하는 선수다. 압박 속에서도 공을 지켜내고 방향을 전환하며 동료에게 전진할 시간을 벌어준다. 하지만 아틀레티코에서는 단순한 조율자를 넘어 해결사로 진화하고 있다. 시즌 공식전 7경기에 모두 출전해 2골 1도움을 기록했고, 오사수나전에서는 이적 후 처음으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오른발로 리그 2호골을 터뜨려 경기 MVP에 선정됐다.

‘왼발만 막으면 된다’는 상대의 계산도 흔들고 있다. 비야레알전에서는 슈팅 6개 가운데 3개를 오른발로 시도했고, 오사수나전에서도 오른발 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레알 수비가 이강인의 왼발 패스 길을 차단하는 데 치중한다면 오른발 슈팅과 과감한 중앙 침투가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음바페가 아틀레티코 수비의 뒷공간을 노리는 ‘창’이라면, 이강인은 레알의 견고한 수비에 균열을 내는 ‘열쇠’다. 음바페는 한 번의 질주로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고, 이강인은 한 번의 방향 전환으로 경기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 파괴력과 창조성, 직선과 곡선의 대결이다.

이번 더비는 이강인에게 아틀레티코의 진정한 7번으로 공인받을 가장 큰 시험대다. 말라가와 오사수나를 상대로 보여준 활약도 값지지만, 아틀레티코 팬들이 선수를 온전한 ‘자신의 전사’로 받아들이는 결정적 기준은 언제나 레알전이었다. 더비에서의 결정적 한 방은 열 경기의 활약보다 팬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앙투안 그리즈만이 아틀레티코의 전설이 된 것 역시 단순한 득점 수 때문만이 아니다. 레알과 바르셀로나 등 강호를 상대로 팀의 자존심을 수호했던 결전의 순간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리즈만의 등번호 7번을 물려받은 이강인도 마침내 그 통과의례 앞에 섰다.

아틀레티코는 오사수나를 4-0으로 완파하며 공격의 혈을 뚫었다. 이강인을 비롯해 조너선 데이비드, 알렉스 바에나 등 다양한 자원이 득점에 가세했다. 레알 역시 6경기에서 17골을 몰아치며 막강한 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수비와 역습의 이미지가 짙은 두 감독이지만, 이번 더비는 예상외로 불꽃 튀는 화력전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했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무리뉴와 시메오네는 서로의 축구를 꿰뚫고 있으며, 이강인과 음바페 역시 서로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상대를 훤히 안다고 해서 반드시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함 속에 숨은 찰나의 변칙이 승부를 가르는 법이다.

한쪽에는 통산 전적에서 앞선 ‘왕가’ 레알이 버티고 있고, 다른 쪽에는 시메오네와 함께 패배주의를 털어낸 ‘저항자’ 아틀레티코가 진을 치고 있다. 벤치에서는 무리뉴와 시메오네가 12년 전의 승부를 재현하고, 그라운드에서는 파리의 영광을 합작했던 음바페와 이강인이 적으로 마주한다.

20일 밤, 마드리드는 하나의 도시이면서 두 개의 세계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운명의 경계선 위에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7번 이강인이 세계 최고의 골잡이 음바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마드리드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릴 90분, 이강인의 '진짜 더비'가 시작된다.

PSG의 조연에서 알레띠의 주연으로 '마드리드 더비'에 참여하는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kp2002@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