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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성적'이라는 늪, 한국 유소년 축구가 잃어버린 것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작은 실천에 나선 박주호
이제 축구계가 답해야 할 때…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적 변화로


전 국가대표이자 K-축구 혁신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주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박주호의 휴지통'에 접수된 유소년축구 현장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박주호 유튜브 화면 캡처
전 국가대표이자 K-축구 혁신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주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박주호의 휴지통'에 접수된 유소년축구 현장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박주호 유튜브 화면 캡처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최근 한국 축구는 거듭되는 행정 파행과 국가대표 감독 선임 파동, 국제 대회에서의 잇따른 부진 등으로 팬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상부 조직의 난맥상으로 한국 축구 전체가 휘청이는 사이, 한국 축구의 뿌리인 유소년 현장에서도 오래 묵은 문제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 국가대표 박주호가 1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박주호의 휴지통'에 접수된 현장 사연들을 소개하며 공개한 고백들은,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 온 한국 유소년 축구의 암울한 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주호의 휴지통은 K축구 혁신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주호가 한국축구 현장의 소리를 직접 경청하기 위해 개설한 축구 관련 게시판이다

"경험해 보니 한국 축구판이 너무나 더러워 정이 떨어지고 꿈마저 무너졌다"는 한 유소년 코치의 눈물 어린 폭로는 현장의 생생한 실태를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선수의 이적을 둘러싼 지도자 간 금전 거래가 이뤄지고, 피복비 부풀리기와 브랜드 리베이트, 전지훈련비 과다 청구까지 발생한다는 현장 증언이 이어진다.

대회를 악용해 8강, 4강, 결승 성적에 따라 학부모들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거나 돈을 걷는 일까지 벌어지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꿈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다.

현장의 또 다른 7년 차 초등 지도자는 "인프라와 제도가 바뀐다 한들 지도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축구 발전과 육성이라는 사명감 없이 그저 생계형 직장으로만 생각하는 지도자들 밑에서는 희망을 품기 어렵다. 여기에 선수를 길게 보고 키우기보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목매며 윽박지르고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 그리고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교육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구조적 무책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유능한 지도자에게 제대로 된 코칭을 받으면서 "한국 축구도 제대로 하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모든 지도자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는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무능하거나 부적절한 지도자는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전 국가대표 박주호가 유소년 축구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작은 대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박주호 유튜브 화면 캡처
전 국가대표 박주호가 유소년 축구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작은 대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박주호 유튜브 화면 캡처

사실 현장의 비리와 잘못된 관행, 조급한 성적주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자 자격을 엄격히 검증하고, 학부모의 불투명한 비용 부담을 막을 투명한 결제 시스템을 만들며, 성적 중심의 평가 체계를 성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동시에 현장의 모든 지도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정직하게 선수의 성장을 돕는 지도자가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나 근거 없는 민원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 역시 필요하다.

문제는 거창한 제도나 새로운 구호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대책과 개선 방안이 제시됐지만, 정작 이를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작동시킬 집행력과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데 있다. 수많은 당위적 대책들이 공염불로 끝나는 동안 현장의 아이들과 정직한 지도자들은 매번 홀로 상처를 입어야 했다.

박주호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의 문제를 폭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 역시 한국 축구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작은 실천을 시작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축구계에 있었던 여러 문제에 대해 현역 선수이자 행정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팬들께 도의적 책임을 느끼며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그리고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내년부터 지자체 및 기업들과 협력해 단발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유소년 축구 대회를 직접 개최하겠다는 실행 계획을 밝혔다.

기득권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의 문제를 드러낸 데 이어, 자신이 직접 작은 대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겠다고 나섰다. 그의 '휴지통'에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거창한 해법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작은 실천이다.

박주호의 시도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제보들이 또 한 번의 폭로와 분노로 소비되지 않고, 유소년 축구의 구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장의 자발적인 노력과 목소리를 개인의 실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제도적 변화로 연결하는 일이다. 대한축구협회와 K-축구 혁신위원회 역시 현장에서 나온 다양한 제안과 실천을 정책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유소년 축구의 구조를 개선하는 데 반영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우승 트로피가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이다.

전 국가대표 박주호가 유소년 축구 현장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작은 대안부터 하나씩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박주호 유튜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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