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청주- 수원삼성 경기, 축구팬 2시간 농성
"권위는 판정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지난달 말 축구협회 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출석한 문진희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의 언행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한국 심판진이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경기에서 지면 심판을 욕하는 구조 탓"이라며 책임을 외부에 돌리는가 하면, 불공정한 심판 배정 및 평가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되려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에게 매우 오만하고 고압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스포츠에서 심판의 권위는 권력이나 강압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판정과 투명한 운영, 그리고 경기 구성원들과의 존중에 기반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수장부터 보여준 오만과 독단, 대회기간 중 규정을 어긴 여성 심판과의 술자리 등 부적절한 처신과 인사 불공정성 논란은 이미 바닥을 친 한국 심판진의 신뢰도를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대한민국 축구 심판의 권위가 그라운드가 아닌 국회 청문회장에서 무너져내린 것이다.

문제는 청문회장의 파행이 그라운드의 후폭풍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 시즌 K리그 현장에서는 판정 기준의 일관성 논란과 함께 일부 심판의 권위주의적 언행, 외국인 선수를 향한 반말 지시 논란 등 부적절한 처신과 태도가 끊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감독이나 선수가 청하는 악수조차 거부한 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외면하는 고압적 불통은 팬들의 분노를 사기 충분했다.
그동안 구단과 대다수 언론, 관계자들은 "심판이 흔들리면 리그 전체가 흔들린다"는 소신 하나로 판정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그것은 리그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문 위원장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안하무인식 태도, 즉 감히 누구도 자신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없다는 식의 위험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일부 심판들의 이해하기 힘든 부적절한 처신 역시 단순한 개인 성격 탓이 아닌, 왕국처럼 운영돼 온 심판계의 뿌리깊은 권위주의 문화 탓이 아니냐는 의심이 싹트고 있다. 수장의 도덕성과 리더십이 흔들리자, 그동안 내부에서만 회자되던 판정 논란과 일부 심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축구인과 팬들의 의문이 이제는 공개적인 문제 제기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1일 K리그2 충북청주와 수원삼성의 경기에서 발생한 소동은 이러한 '신뢰의 위기'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수원의 두비츠카스의 헤더 역전골이 취소되는 과정에서, 주심은 제대로 된 VAR 판독이나 온필드리뷰를 거치지 않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파울을 선언한 뒤 경기를 끝내버렸다. 이정효 수원삼성 감독이 "우리가 역전골을 넣었는데, 경기 뒤에는 비겼다고 하더라"며 탄식한 이유다.
화면상 미세한 파울 여부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판정의 옳고 그름’ 이전에 ‘판정을 수용하게 만드는 절차와 소통’이 실종됐다는 데 있다. 분노한 수원 원정 팬들이 경기장 밖에서 두 시간 넘게 농성을 벌인 사태는, 단순한 판정 불만을 넘어 심판진 전체를 향한 불신이 폭발한 결과다.

리더십이 무너지면 시스템이 흔들리고, 시스템이 흔들리면 현장의 신뢰가 파괴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가 더 문제다. 수장이 자초한 불신 탓에 이제 K리그 그라운드에서는 아무리 정당한 판정이 내려지더라도 팬들과 구단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풍토가 형성되었다. 판정 시비가 발생할 때마다 그라운드는 건강한 소통 대신 끊임없는 불신과 소모적인 갈등만 반복되는 장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신뢰 회복은 제도 개혁만으로는 어렵다. 신뢰를 훼손한 리더십에 대한 책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진희 위원장은 더 이상 한국 축구 심판진의 명예와 K리그의 공정성을 훼손하지 말고, 수장으로서 초래한 불통과 신뢰의 위기에 책임을 지고 하루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울러 새롭게 구성될 심판위원회는 문 위원장 체제에서 이루어진 심판 배정 및 평가 내역을 철저히 조사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인사와 편파적 조치를 바로잡고 원상태로 되돌리는 단호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정한 리더십을 제거하고 심판 기구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소통 시스템 재정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라운드의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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