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주인은 FIFA도, 스폰서도 아닌 선수와 팬이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스페인은 20일 현대적으로 진화한 ‘뉴 티키타카’와 대회 1실점의 견고한 수비를 앞세워 아르헨티나를 연장 끝에 1-0으로 꺾고 16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화려한 우승 장면 뒤에는 씁쓸한 질문이 남았다.
이번 월드컵은 과연 축구를 위한 대회였는가. 아니면 축구를 이용한 거대한 상업 이벤트였는가.
북중미 월드컵은 시작부터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넘쳐났다. 참가국은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났고, 총 경기 수는 64경기에서 104경기로 62.5% 증가했다. 미국·캐나다·멕시코의 사상 첫 3개국 공동 개최, 전 경기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결승전 하프타임쇼까지 새 제도가 줄줄이 등장했다.
기록만 놓고 보면 가장 크고 화려한 월드컵이었다. 그러나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처럼 진정으로 훌륭한 것은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난다. FIFA는 축구가 가진 본래의 감동을 믿기보다 더 많은 경기, 더 긴 방송 시간, 더 많은 광고와 공연으로 월드컵을 포장하려 했다.

그 상업주의의 결정판은 결승전이었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세계 챔피언 자리를 다투는 경기였지만 시작을 알린 노래는 두 나라의 국가가 아니라 이미 16강에서 탈락한 미국의 국가였다. 공동 개최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의 국가는 들리지 않았다. 결승 진출국 선수들이 입장하기도 전에 개최국의 힘과 애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하프타임에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공연이 열렸다. BTS와 마돈나, 샤키라,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등장했다. 문화적으로는 화려했지만 경기 규칙상 15분인 하프타임은 실제로 20분을 훌쩍 넘겼다.
축구에서 하프타임은 가수와 광고주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전반 45분을 뛴 선수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부상을 점검하고, 감독의 전술 지시를 듣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공연을 위해 늘렸다면 FIFA는 선수에게는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흥행을 위해 규칙의 취지를 흔든 셈이다.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선수 보호라는 명분은 타당했다. 한여름 북중미의 고온과 높은 습도에서 열사병과 탈수를 막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온과 경기장 환경에 관계없이 전·후반 약 22분마다 일률적으로 경기를 멈추면서 축구의 리듬은 자주 끊겼다. 감독에게는 작전타임이 됐고, 방송사에는 추가 광고 시간이 됐다. 선수 보호를 위해 시작된 제도가 상업적 필요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물을 위한 휴식인가, 광고를 위한 휴식인가"라는 의문을 낳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기의 공정성마저 흔들렸다는 점이다. 미국 대표팀의 폴라린 발로건이 퇴장에 따른 징계를 유예받고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한 사건은 FIFA의 원칙을 의심하게 했다. 개최국 스타 선수를 살리기 위해 규정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상을 준 순간, 월드컵의 권위도 함께 무너졌다.
스포츠의 생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공정성이다. 맹자는 "불이규구 불능성방원(不以規矩 不能成方圓)"이라고 했다. 컴퍼스와 자가 없으면 네모와 원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규칙이 상황과 흥행에 따라 달라진다면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무대도 올바른 모양을 유지할 수 없다.
FIFA는 이번 대회가 역대 최대 흥행과 수익을 기록했다고 자평할 가능성이 크다. 48개국 확대는 더 많은 나라에 월드컵 출전의 꿈을 제공했고, 더 많은 시장과 중계권 수입을 창출했다. 그러나 경기 수가 많아지고 수익이 늘어났다고 월드컵의 가치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대회가 커질수록 선수의 체력 부담은 증가하고 경기력의 편차도 커진다. 방송과 광고를 위해 경기 시간이 자주 끊기면 축구 특유의 흐름과 긴장감은 사라진다. 유명 가수와 정치인이 선수보다 더 많은 조명을 받는다면 월드컵은 스포츠 대회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박람회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돈이 축구를 발전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중계권료와 후원금이 있어야 경기장이 건설되고 유소년이 성장하며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다. 하지만 돈은 축구를 돕는 수단이어야지 축구를 지배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빛나야 했던 것은 메시의 마지막 도전과 라민 야말의 새로운 시대, 페란 토레스의 결승골,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의 눈부신 선방이었다. 그러나 FIFA는 경기 사이마다 광고판을 세우고, 선수들의 하프타임을 공연 무대로 바꾸고, 결승전의 첫 장면까지 개최국 중심으로 연출했다.
‘주객전도(主客顚倒)’다. 손님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 손님이 됐다. 월드컵의 주인은 FIFA 회장도, 개최국 대통령도, 글로벌 스폰서도 아니다. 4년 동안 땀 흘린 선수들과 그 경기를 기다려온 세계의 축구팬들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가장 큰 월드컵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월드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축구의 순수성과 공정성에는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FIFA가 다음 월드컵에서도 더 많은 경기와 더 긴 공연, 더 많은 광고만을 고민한다면 축구는 결국 축구팬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경기가 뒷전으로 밀리는 순간, 월드컵은 더 이상 월드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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