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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째 무대서 포효한 일본, 한국 축구의 '보검' 활용법을 묻다 [박순규의 창]
2026 북중미 월드컵 F조 2차전 일본, 튀니지에 4-0 '완승'
‘아시아 최다 득점’ 일본의 조직력, 부러움 너머의 서늘한 '질문


일본의 스트라이커 우에다 아야세가 21일 튀니지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자신의 멀티골이자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몬테레이=AP.뉴시스
일본의 스트라이커 우에다 아야세가 21일 튀니지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자신의 멀티골이자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몬테레이=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 역사상 ‘월드컵 통산 1,000번째 경기’라는 상징적인 무대의 주인공은 아시아의 라이벌 일본이었다. 21일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일본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를 4-0으로 완파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 공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조직력으로 아시아 국가 역대 본선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뿐만 아니다. 본선 통산 8승째를 거두며 한국이 외롭게 지켜온 아시아 역대 월드컵 최다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웃 나라의 역사적 대승을 바라보는 마음은 솔직히 복잡하다. 축구 종가 영국의 ‘스카이스포츠’가 일본을 향해 "세계적 슈퍼스타가 없어도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진정한 팀"이라며 이번 대회 강력한 다크호스로 지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부러움을 넘어 서늘한 경종으로 다가온다. 남아공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다시 전술 문제에 부딪힌 한국 축구에게, 이날 일본이 보여준 완벽한 공수 밸런스와 경기 운영 능력은 단순한 자극을 넘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를 제대로 쓰고 있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검(寶劍)을 쥐고도 쓰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 문제는 ‘스타’가 아닌 ‘활용법’에 있지 않는가.

"명장은 무기를 탓하지 않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보검(寶劍)도 다룰 줄 모르는 이의 손에 쥐어지면 한 자루 고철에 불과하다."

2골 1도움으로 활약한 우에다 아야세(왼쪽)를 후반 39분 교체아웃시키고 있는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몬테레이=AP.뉴시스
2골 1도움으로 활약한 우에다 아야세(왼쪽)를 후반 39분 교체아웃시키고 있는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몬테레이=AP.뉴시스

중국 원나라의 문인 글에 나오는 이 격언은 현재 한국 축구 대표팀이 처한 현실을 관통한다. 우리는 흔히 일본 축구의 탄탄한 조직력과 선수층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특정 스타에게 의존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오도한 진단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하이클래스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했다는 것은 월드컵이라는 전쟁터에서 남들은 갖지 못한 강력한 보검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진짜 문제는 ‘스타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스타의 파괴력을 극대화할 전술적 심도가 우리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튀니지전 최고의 선수는 단연 2골 1도움을 기록한 우에다 아야세였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 선수들은 우에다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다. 가마다 다이치는 끊임없이 2선 침투를 시도했고, 이토 준야와 나카무라 게이토는 측면에서 폭넓은 움직임으로 수비진을 흔들었다. 도미야스의 전진 패스는 공격의 출발점이 됐다. 우에다는 마무리를 담당했지만, 골은 팀이 만들었다. 우에다는 유럽의 빅리그 출신이 아니라 황인범과 같은 네델란드 소속팀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격수다.

일본의 첫 골도, 두 번째 골도, 세 번째 골도 마찬가지였다. 우에다가 빛난 이유는 그를 돕는 동료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축구는 에이스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에이스 혼자 경기하는 스포츠는 아니다. 에이스를 살려주는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에이스의 가치가 극대화된다.

아르헨티나가 메시를 활용하는 법도 마찬가지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인 리오넬 메시조차 예외는 아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위해 뛰지 않았다. 오히려 메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훌리안 알바레스는 수비수를 끌고 다녔고, 엔소 페르난데스와 맥 앨리스터는 메시가 공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메시는 공격을 마무리했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조직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조차 시스템 속에서 더욱 빛났다.

그래서 일본의 승리는 한국 축구에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우리 축구계가 당장 눈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며 특정 선수 한두 명의 컨디션에 팀의 운명을 맡기는 모습은 한자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를 떠올리게 한다. 월드컵 무대에서 스타플레이어는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그 스타가 막혔을 때를 대비한 유기적인 공간 창출과 패스 워크, 즉 ‘플랜 B’의 외양간을 진작에 단단히 고쳐놓았어야 했다.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의 '캡틴' 손흥민(오른쪽)과 부주장 김민재. 사진은 12일 체코와 1차전에서 승리 후 교체된 손흥민에게 김민재가 주장 완장을 다시 채워준 장면./과달라하라(멕시코)=뉴시스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의 '캡틴' 손흥민(오른쪽)과 부주장 김민재. 사진은 12일 체코와 1차전에서 승리 후 교체된 손흥민에게 김민재가 주장 완장을 다시 채워준 장면./과달라하라(멕시코)=뉴시스

일본은 튀니지전에서 가마다 다이치와 우에다 아야세 등을 주축으로 철저히 짜인 전술 시스템 속에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100% 끄집어냈다. 반면 우리는 손흥민(LAFC), 이강인(PSG)이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보검을 쥐고도, 그들이 외롭게 고립되어 개인기로 활로를 뚫기만을 바라는 안일한 축구를 반복해 왔다. 천재적 자질을 보유한 이강인의 탈압박 능력과 폭넓은 시야, 허를 찌르는 전환 패스에 공격력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강인과 황인범이 뛰고 안 뛰고가 경기력의 차이를 만들었다. 스타 의존증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전술적 무능과 방임’이 진짜 통찰해야 할 대목이다.

남아공전을 앞둔 한국 축구에 일본이 주는 메시지는 보검의 날을 세워 원팀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번 승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결국 ‘가진 자원을 완벽하게 기능하게 만드는 성숙함’이다. 일본의 경기를 지켜본 외신 기자의 말대로, 경기장 안의 모든 선수가 기복 없이 제 몫을 해줄 때 스타플레이어가 없어도 팀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하물며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스타들이 유기적인 전술 시스템 속에서 함께 춤추게 만든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국 축구는 다가오는 남아공전에서 사활을 걸어야 한다. 라이벌의 질주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비기면 32강이란 안일함도 버려야 한다. 축구는 이름값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진 이름값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남아공전에서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무거운 짐을 홀로 지우는 안일 또한 버려야 한다. 전술적 유기성과 공수 밸런스를 통해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보검들이 가장 날카롭게 빛날 수 있는 게임 플랜을 갖고 멍석을 깔아주어야 한다. 라이벌이 던진 매서운 채찍질을 보약 삼아, 흔들리는 한국 축구의 진짜 자존심과 품격을 증명해 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갈수록 출전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의 '캡틴' 손흥민(오른쪽)과 부주장 김민재. 사진은 12일 체코와 1차전에서 승리 후 교체된 손흥민에게 김민재가 주장 완장을 다시 채워준 장면./과달라하라(멕시코)=뉴시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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