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감독의 선수 운용과 전술 부재 '노출'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숫자는 때로 진실을 감춘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LA) FC의 공격수 손흥민이 또 침묵했다. 11일(한국시간) 휴스턴 다이나모 FC와 2026 MLS 12라운드 홈경기에서도 풀타임을 뛰었지만 슈팅 2개는 모두 막혔고, 리그 개막 12경기째 마수걸이 골은 나오지 않았다. 팀 역시 최근 공식전에서 2경기 연속 4실점하며 2연패, 3경기 연속 무승(1무2패)이라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공식전 15도움이라는 손흥민의 화려한 조연 기록 뒤에는 ‘리그 12경기 0골’이라는 공격수로선 뼈아픈 수치가 가려져 있다. 대한민국 축구의 보배이자 세계적 골잡이인 그가 왜 유독 미국 리그 경기에서만 골망을 흔들지 못하는 것일까.
표면만 보면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손흥민의 결정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축구는 늘 그렇듯 결과보다 과정도 중요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LAFC의 문제는 손흥민 개인의 폼 저하라기보다, 그를 살려야 할 팀 전술의 구조적 붕괴에 가깝다.
손흥민은 이날도 부지런했다.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볼을 받아주고, 좌우 측면을 오가며 공격 전개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전반 4분 직접 처리한 프리킥은 상대 자책골 직전까지 갔고, 전반 24분 감아차기는 수비벽에 막혔다. 추격골 장면 역시 손흥민의 침투 패스에서 시작됐다. MLS 공식 기록상 도움은 취소됐지만, 공격의 시발점이 손흥민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 LAFC는 손흥민을 ‘득점기계’가 아니라 ‘볼 배급자’처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스티브 체룬돌로 감독 체제에서 손흥민과 드니 부앙가는 상대 뒷공간을 찢는 전환 축구의 핵심이었다. 빠른 역습, 직선적인 침투, 측면 스피드 활용이 살아 있었고, 손흥민은 가장 위협적인 공간에서 공을 받았다. 토트넘 시절 해리 케인과 보여준 ‘킬 패스-침투’ 패턴과 유사했다.
그러나 현재 마크 도스 산토스 감독 체제의 LAFC는 지나치게 느리다. 지공 중심의 빌드업은 많지만 상대 수비를 흔드는 속도가 부족하다. 볼 점유율은 높아도 결정적 장면은 줄어든다. 이날 휴스턴전 역시 LAFC는 공을 오래 소유했지만, 정작 상대 박스 안에서는 무뎠다. 공격 템포가 느려지자 손흥민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손흥민의 최대 장점은 정지 상태의 드리블 돌파가 아니다. 그는 "공간을 먹는 선수"다. 상대 수비라인이 흔들리는 순간, 그 틈을 파고드는 타이밍과 속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 경쟁력을 보여왔다. 그런데 현재 LAFC의 전술은 손흥민에게 등을 지고 볼을 받게 만들고, 밀집 수비를 개인 기술로 뚫으라고 요구한다. 주 포지션인 왼쪽 윙포워드보다 10번 역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는 경우가 늘었다. 이는 칼을 든 장수를 붓글씨 대회에 내보내는 격이다.

실제 기록도 이를 보여준다. 손흥민은 리그 8도움으로 MLS 도움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슈팅 수와 박스 안 터치 횟수는 기대치에 비해 현저히 낮다. 최근 2경기에서 기록한 유효 슈팅은 사실상 전무했고, 휴스턴전 두 차례 슈팅 역시 모두 수비벽에 가로막혔다. 공격수가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공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축구계 명장들의 공통점은 선수에게 전술을 맞춘다는 데 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위해 레알 마드리드 팀 구조를 바꿨고, 펩 과르디올라 역시 리오넬 메시를 ‘가짜 9번’으로 활용하며 시대를 바꿨다. 좋은 감독은 시스템 안에 선수를 욱여넣지 않는다. 선수의 재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조정한다.
지금 LAFC가 놓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손흥민은 여전히 순간 스피드와 공간 침투, 연계 능력에서 MLS 최상급 자원이다. 이미 15개의 공격포인트(2골 13도움)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손흥민이 골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의 침묵은 단순한 개인 슬럼프가 아니다. 오히려 팀 전술이 세계적 공격수를 어떻게 무디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손흥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손흥민을 가장 빛나게 만들던 공간과 속도가 사라진 것이다.
중국 고사성어에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같은 나무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열매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지금의 손흥민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손흥민이라는 나무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LAFC라는 토양일 수 있다.
결국 해답은 명확하다. 손흥민에게 다시 ‘공간’을 돌려줘야 한다. 그 순간 LAFC의 잃어버린 득점력 역시 함께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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