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논란 속에서 피어난 이강인의 성장

[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5년 6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쿠웨이트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최종전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4-0 대승이라는 모처럼의 결과도 반가웠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이강인(24)의 행동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기 내내 날카로운 플레이와 결정적인 추가골로 팀 승리를 이끌더니 경기 MVP 자격(POTM)으로 참여한 기자회견에서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감독님과 협회를 너무 공격하지 말아달라. 선수들도 영향을 받는다. 긍정적인 부분을 봐주시고,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강인의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우선 선수들을 대표해서 말한 주인공이 '주장' 손흥민이 아니라 이강인이란 점이다. 마이크만 잡으면 국가와 대표팀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여준 손흥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할 수 있지만 늘 '말썽꾸러기' 동생만 같았던 이강인이 선수들을 대표해서 작심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그동안 어떤 축구선수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자, ‘막내 형’에서 성숙한 리더로 거듭나는 전환점으로 보인다.
이강인을 처음 기억하는 대중은 대부분 KBS의 '날아라 슛돌이' 시절의 그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소년은 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팀을 거쳐 현재 유럽 명문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활약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경험했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유럽 정상급 무대를 누빈 그이지만, 축구 외적인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다.

2024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직전 주장 손흥민과의 갈등은 대표적인 예다. 손흥민의 권위에 도전한 듯한 태도는 논란을 불러왔고, 대중은 ‘축구는 잘하지만 인성이 문제’라는 이강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굳혔다. 이는 일부 언론과 팬 커뮤니티의 과도한 비판과 연결되며, 이후에도 이강인의 행보는 늘 확대 해석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쿠웨이트와 아시아 예선 최종전을 마친 후 나온 발언은 그런 이강인의 부정적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그는 이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팀과 조직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했고, ‘우리를 도와달라’며 팬들과 언론을 향해 부탁했다. 이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 "부전승(不戰勝)이 상책이다"라는 말과도 통한다. 진정한 강자는 맞서 싸우는 자가 아니라 상황을 조율해 이기는 자라는 뜻이다. 이강인은 이제 감정을 앞세우는 선수가 아닌, 상황을 읽고 팀을 보호하는 인물로 성장한 것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한 성숙은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강인의 이번 발언은 그가 자신만이 아닌 팀 전체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이강인이 이러한 성숙함을 단번에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오랜 시간 대중의 기대, 때로는 적대감과도 같은 비판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과거 유소년 대표 시절부터 "공은 잘 찼지만, 팀워크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국가대표 무대에 오른 이후에도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이 오히려 그의 인격을 단단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동양 철학에서는 '역경지성(逆境之成)'이라 하여, 시련과 고난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을 이끌어낸다고 본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강인이 겪어온 논란과 충돌, 좌절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말의 무게를 아는 선수,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린 선수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막내 형’이란 별명은 이강인이 늘 형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주장을 펼친 데서 비롯됐다. 이제 그는 그 목소리를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쓰고 있다. 이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과거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세대교체, 협회 논란, 감독 경질 등 크고 작은 풍파 속에서도 꾸준히 본선에 진출한 건 선수 개개인의 노력 덕분이다. 이번 아시아 2,3차 예선의 11승 5무라는 무패 기록 역시 선수단이 하나의 팀으로 뭉쳤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때론 침묵이 강한 무기지만, 진정한 리더는 침묵 대신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낸다. 이강인은 바로 그 선택을 했다. 그가 이번에 한 발언은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닌, 성숙한 자아의 표현이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성공하기 위해선 이런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강인은 더 이상 말 많은 막내가 아니다. 이제는 자신의 말에 무게를 더할 줄 아는, 팀을 위한 진짜 형이 되어가고 있다. 그 변화는 시련의 시간을 이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에서 비롯된다. 이 변화는 한국 축구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신호다. 비난보다는 격려, 의심보다는 믿음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한가운데, 이제는 성숙해진 이강인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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