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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관전기] '아, 클린스만을 어찌할꼬?'...대책 없는 지도력에 한숨만

  • 스포츠 | 2024-02-07 10:44

7일 2023 아시안컵 4강전 한국, 요르단에 0-2 '참패'
'벤치 싸움'에서 지고도 '미소', 비통한 선수들과 대조
변화 여론 '급등'


후반 교체 투입된 조규성이 7일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알 타마리의 추가골 세리머니를 참담하게 지켜보고 있다./알 라이얀=KFA
후반 교체 투입된 조규성이 7일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알 타마리의 추가골 세리머니를 참담하게 지켜보고 있다./알 라이얀=KFA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역사는 바뀌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멋진 말을 우리가 우승한 뒤에 다시 복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의 미드필더 황인범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의 경기를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처럼 말해 많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한국이 8골을 내줬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네, 우리는 많은 골을 내줬지만 득점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한국이 8강전까지 5경기에서 8실점한 것을 두고 역대 아시안컵에서 8실점한 팀이 우승한 전례가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멋지게 되돌려 준 것이다.

한국팀 맞아? 7일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한 한국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한국팀 맞아? 7일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한 한국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한국이 만약 요르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면 황인범의 말은 정말 훌륭한 에피타이저가 됐을 텐데, 아쉽게도 한국은 요르단 축구의 역사를 바꾸는 새역사 제물이 되고 말았다. 지난 2004년과 2011년 대회 8강이 최고 성적이었던 요르단이 사상 첫 4강도 모자라 결승까지 진출하는 신기원의 발판이요 불쏘시개가 되고만 것이다. 황인범의 말대로 역사는 바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한국은 4강전 직전까지 6차례 맞대결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요르단에 처음 패하는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한 경기 내용으로 패퇴함으로써 밤샘 응원을 펼친 고국 팬들을 아주 크게 실망시켰다. 정말 90분 정규시간 경기로 끝나긴 했는데, 이런 식의 결말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16강 토너먼트 두 경기에서 연속 120분 연장혈투를 치르며 애간장을 태웠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감동과 기쁨을 주었기에 웃으며 잠들 수 있었지만 연장에 돌입하지 않고 끝난 4강전은 정 반대의 감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패배의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캡틴' 손흥민(맨 왼쪽)과 선수들을 위로하는 클린스만 감독. 이들의 동행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요르단과 4강전에서의 충격적 패배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알 라이얀=AP.뉴시스
고개를 떨구고 패배의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캡틴' 손흥민(맨 왼쪽)과 선수들을 위로하는 클린스만 감독. 이들의 동행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요르단과 4강전에서의 충격적 패배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알 라이얀=AP.뉴시스

'많은 골을 내줬지만 득점도 많이 했다'는 황인범의 말은 클린스만 감독의 생각을 대변한 듯했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기자회견에서 "한 골만 더 넣으면 이긴다"는 취지로 요르단전에서 공격 축구로 나설 뜻을 밝혔다. 클린스만의 생각은 하루 뒤 선발 명단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7일 오전 0시(한국시간)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1경기. 현지시간으로 6일 오후 6시 카타르 알 라이얀의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전은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8강전까지 보여줬던 한국의 경기력은 사라지고 마치 다른 팀이 경기를 하듯 '언더독' 요르단에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 경기를 하는 듯 실수 연발에 유효슛은 단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 하는 결과를 낳았다.

2경기 연속 120분 연장 혈투를 치러 체력이 고갈되고, '수비의 핵' 김민재가 경고누적으로 결장했다고 해도 이 정도로 밀린 한국은 아니었는데,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 하고 경기장을 떠나야했다. 90분 동안 한국은 전체 슛에서 8-17, 유효 슛에서 0-7로 처참하게 밀렸다. 아무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지만 23위의 한국이 87위의 요르단에 이렇게 밀릴 정도로 약한 게 아닌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 선수들과 달리 2-0 승리로 4강전이 끝나자 요르단 선수들은 사상 첫 결승 진출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한국 선수들과 달리 2-0 승리로 4강전이 끝나자 요르단 선수들은 사상 첫 결승 진출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요르단과 조별리그 2차전부터 한국의 골문을 지킨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가 없었다면 점수 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었다. 조현우은 전반 4차례의 실점 위기를 막는 선방을 펼친데 이어 후반에도 1차례의 슈퍼세이브로 모두 5회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내용상으로는 0-4, 0-5가 돼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벤치의 전술 부재가 낳은 참사였다. '스타 선수는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축구계 속설이 있다.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항상 오판을 해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수가 모두 자신처럼 스타가 아닌 데도 말이다. 스타 출신보다 선수 시절 명성은 떨어져도 지도자로 크게 명성을 떨친 감독이 세계적으로 훨씬 많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트레블을 이룬 업적으로 영국의 기사작위를 받은 알렉스 퍼거슨 경이나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은 선수로서 크게 이름을 남기지 못 했다. 무리뉴 감독은 스스로를 '삼류 선수' 출신이라고 말한다. 선수 은퇴 후에는 체육 교사를 하기도 했으나 지도자로 변신한 뒤 세계적 지도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무명 선수 출신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선수들의 상태를 항상 살피고 주위 환경의 조그만 변화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좀 달라 보인다.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국내 선수 발굴에도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독일 국가대표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 클린스만 감독은 세부적 팀 전술 대신 공간 창출 움직임과 자유스러운 팀 분위기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내는 큰 그림의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적 움직임은 선수 개인이 알아서 하게하는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에이스 이강인(오른쪽)이 7일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한국의 에이스 이강인(오른쪽)이 7일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알 라이얀=AP.뉴시스

이날도 클린스만 감독은 이전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4-3-3전형을 들고 나왔다. 중원에 3미들(박용우 황인범 이재성)을 두고 3톱(손흥민 황희찬 이강인)과 함께 유기적 움직임으로 골을 노리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한국은 형편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쓸 데 없이 공격과 수비에 숫자가 몰려 있고 막상 주도권을 다투는 중원에는 선수가 적었다. 공격진과 미드필드진의 간격이 벌어졌고, 중원에서 패스미스가 나오거나 턴오버를 당하면 속절 없이 페널티지역까지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이 때 정말 필요한 것이 벤치의 지도력이다. 축구는 야구와 달리 90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스포츠인지라 변수가 많다. 4-3-3포메이션이 잘못된 게 아니라 경기 상황에 맞게 운용을 하는 것이 중요한 데 한국 벤치에서는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요르단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해 다운된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가 전반 계속된 실수로 위기를 불러들이는 것도 그냥 넘겼고,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전반을 마쳤는데도 후반 교체 선수 투입에 인색했다.

요르단전에서 0-2로 참패한 클린스만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이 훌륭했다면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알 라이얀=KFA
요르단전에서 0-2로 참패한 클린스만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이 훌륭했다면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알 라이얀=KFA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계속 중용된 박용우는 요르단과 2차전에서 전반 37분 자책골을 기록하면서 3차전 말레이시아전과 16강전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됐다. 호주와 8강전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한 박용우는 이날 유달리 패스미스가 많았다. 전반 18분 실수로 알 타마리의 돌파를 허용하며 위기 상황을 초래했으며 후반 결국 결승골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

후반 9분 박용우는 빌드업 과정에서 치명적 패스 미스로 알 나이마트에게 선제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결국 후반 11분 박용우를 불러들이고 공격수 조규성을 투입했다. 박용우에 대한 문책성 교체이자 조규성의 득점력으로 반전을 노리는 변화였으나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조규성이 들어간 지 10분 만인 후반 21분 무사 알타마리에게 추가골까지 내줬다.

2023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터너먼트 전적 및 일정. 한국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0-2로 패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이번 대회 우승컵은 중동팀이 가져가게 됐다./그래픽=정용무 기자
2023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터너먼트 전적 및 일정. 한국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0-2로 패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이번 대회 우승컵은 중동팀이 가져가게 됐다./그래픽=정용무 기자

박용우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 전반 일방적 수세 흐름에 대한 대처 방법이 하프타임을 통해 나왔어야 했는데 후반 시작과 함께 바뀐 건 이강인이 중앙으로 이동하고 이재성이 오른쪽으로 위치를 바꾼 것뿐이었다. 선수 교체는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의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미드필드진에 이재성 황인범 박용우, 포백진에 설영우 김영권 정승현 김태환, 골키퍼에 조현우를 선발로 내세웠으나 이 명단은 선제골을 내줄 때까지 변화가 없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모로코 출신의 후세인 아무타 감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분석이 끝났다. 팀전술로 이기겠다"고 한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역대 최강의 멤버로 64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리던 한국 축구는 8강까지 밤샘 응원을 펼치던 팬들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태우더니 결국 허무한 결말로 마지막까지 밤잠을 설치게 했다.

평소라면 잠자리에 들었을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요르단과 4강전에 나선 한국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에 많은 불이 켜져 있다./남양주=박순규 기자
평소라면 잠자리에 들었을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요르단과 4강전에 나선 한국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에 많은 불이 켜져 있다./남양주=박순규 기자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치밀한 전술 부재와 공감 능력 부족은 이번 대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상대에 따른 전략과 전술이 잘 보이지 않고, 경기 상황에 따른 유기적 대처도 임기응변에 가까웠다. 후반 교체멤버를 통해 '극장 골'을 끌어내며 결국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선수 개인 기량에 따른 것이지 전술로 보기는 어렵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요르단이 승리해 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있다"면서 사퇴 해임 질문에 대해선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로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위해선 당장 대표팀의 전술을 보완할 수 있는 코칭스태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아시안컵이 4강에서 허무하게 끝났기 때문에 그나마 변화의 시간은 주어졌다. 만약 결승에 올랐다면 이마저도 힘들었을 수 있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의 공감 능력 부재는 그의 지도력을 더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전 실점 상황에서 보인 웃음이라든가, 선수들은 울고 있는데 상대를 존중한다며 웃으며 요르단 선수들을 축하하는 태도는 과연 '한국 감독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국인이 아닌 만큼 한국인과 똑 같은 정서를 요구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 선수들을 지도하는 사령탑이라면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한국 선수들의 심정을 좀 헤아렸으면 한다. 클린스만은 평론가가 아니라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선장'이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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