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 한국, 요르단에 0-2 충격패
조현우 선방으로 버티다 후반 2골 허용...64년 만의 우승 '물거품'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계속된 실수를 생각하면 기적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욕심이었다. 64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내걸고 4강까지 오른 클린스만호가 요르단의 패기에 휘말려 사상 최악의 졸전을 펼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90분 동안 단 하나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 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요르단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 한 한국을 제물 삼아 사상 첫 결승 진출의 새역사를 만들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7일 오전 0시(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 1경기에서 우세할 것이란 당초 전망을 뒤엎고 고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체역 열세와 집중력 부족으로 후반 연달아 두 골을 내주며 0-2로 고배를 마셨다.
2실점 모두 미드필드에서 황당하게 볼을 빼앗겨 발생한 비극이었다. 녹아웃 토너먼트 2경기 연속 120분 연장 혈투를 치른 한국은 체력 열세와 집중력 부족으로 연달아 패스 실수와 턴오버를 당하며 위기를 초래했다. 가뜩이나 전반부터 요르단의 기세를 살려주더니 요주의 인물로 꼽힌 야잔 알나이마트와 무사 알타마리에게 후반 연속골을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졌다. 후반 추가시간 8분이 주어졌지만 한국의 90분 이후 '극장 골'도 나오지 않았다.
요르단의 유일한 유럽파 알타마리(프랑스 리그1 몽펠리에)는 후반 8분 알나이마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데 이어 21분 추가골을 기록하며 1골 1도움으로 경기 MOM(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됐다. 2004년과 2011년 대회 8강이 최고 성적이었던 요르단은 후세인 아무타 감독을 중심으로 패턴화된 공격 전술을 펼쳐보이며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룬 데 이어 전인 미답의 결승 진출이란 신기원을 이룩했다.
더구나 요르단은 4강에서 이번 대회 최고 화제의 팀 한국을 제물 삼아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더 큰 감격을 만끽했다.
반대로 한국의 좌절은 더 참혹했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3위의 한국은 87위의 요르단에 비해 64계단이나 앞서 있는 데다 지금까지 6차례 맞대결을 펼쳐 한 번도 져본 적(3승3무)이 없는 상대에 단 한 차례의 유효 슈팅도 하지 못하고 침몰함으로써 더 큰 충격을 낳았다. 국민들의 기대를 받으며 4강에 올랐던 만큼 힘 한 번 제대로 못 쓴 추락은 더 참담했다.
특히 전반 유효 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하고 골키퍼 조현우의 4차례 슈퍼세이브에 의존해 간신히 전반을 0-0으로 넘긴 뒤에도 제대로 된 수습책을 펼치지 못한 클린스만 감독은 퇴진 여론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3월 출범 당시 2023 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내걸었던 만큼 그동안 보여준 전술 부재와 '투잡 논란', '랜선 코치' 등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직을 유지했으나 사상 최강의 멤버로 마지막 경기에서 최악의 졸전을 펼친 이번 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지도력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한국은 골키퍼 조현우의 결정적 선방이 없었다면 더 실점을 하고도 남았다. 전반에만 무려 4차례나 선방을 하며 골문을 지켰으나 미드필드에서의 잇따른 실수로 상대 역습을 허용하며 끝내 골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전반 한국은 24분 이강인의 첫 슛이 나오기 전까지 슈팅 기회조차 잡지 못했으며 이강인의 슛도 골대를 한참 벗어났다. 한국은 전반 29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설영우의 왼쪽 돌파 당시 주심의 페널티 파울 선언으로 결정적 기회를 잡는 듯했으나 비디오 판독 결과 정정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이 미드필드 싸움에서 밀린 것은 벤치 싸움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자주 쓰지 않은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으나 3-4-2-1전형으로 맞선 요르단에 미드필드 경합 상황에서 완전히 밀리며 알타마리와 알나이마트에게 휘둘렸다.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스리톱은 미드필드진과 괴리됐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인 박용우, 센터백 김영권 정승현은 잇따라 패스미스와 턴오버를 당하며 요르단의 역습을 불러들였다.
한국은 전반 전체 슛에서 4-12로 밀렸으며 유효슛에서도 0-4로 압도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볼 점유율에서는 60%-40%로 앞섰으나 미드필드에서 빌드업을 하다 볼을 뺏기고 자주 턴오버를 당하면서 오히려 위기상황을 허용했다. 전체 숫자에서도 한국은 압도적으로 밀렸다. 전체 슛은 8-17로 뒤졌으며 골대 안으로 향한 유효 슛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0-7에 그쳤다. 전반 32분 이재성의 골포스트를 때린 슛이 그나마 유효슛에 근접했다.
수비의 가장 큰 과제로 꼽혔던 센터백 '김민재 공백'이 예상보다 컸으나 공격에서도 팀 전력을 극대화하지 못한 채 모래알처럼 개인기에 의존하다 결국 짐을 싸게 됐다. 조별리그 E조 첫 경기인 바레인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한 클린스만호는 말레이시아와 최종전에서 간신히 3-3 무승부로 수모를 당하면서 1승 2무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뒤 2경기 연속 연장 혈투를 치르는 등 이번 대회 6경기에서 2승 3무 1패로 '롤러코스터 여정'을 마감했다.
지난 대회부터 3~4위전은 열리지 않는다. 한국은 유럽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김민재 이외의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개인전술 이외의 부분전술과 팀전술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팬들의 실망을 자아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6경기 연속 실점과 함께 11골 10실점의 최악의 수비력을 보였다. 전 세계팬들의 감탄을 자아낸 90분 이후 4득점으로 4강까지 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전에 실점이 있었기 때문에 '불사조'의 반전드라마가 쓰여진 것이다. 과연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전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 선수들의 비통한 심정과 같은 무게의 아픔을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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