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기적'에 재조명 받는 '김판곤-윤정환 매직'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동남아사이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쓴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8일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말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수천 명의 베트남 시민이 특별기를 타고 중국 창저우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온 박항서 감독 이하 대표팀을 환영하기 위해 카퍼레이드가 벌어진 30km 도로변에 운집했다.
이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이날 오후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을 불러 격려했고, 대표팀은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띤 귀국 환영행사에도 참석했다. 이보다 앞서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은 대표팀에 1급 노동훈장을, 박항서 감독과 미드필더 응우옌 꽝 하이, 골키퍼 부이 띠엔 중에게 3급 노동훈장을 각각 주기로 했다.
비단 옷만 걸치지 않았을 뿐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대한민국 국적인 박항서 감독만 떼 놓고 보면 '향(鄕)'이 빠진 '금의환'까지만 맞는 말이다.
박항서 감독은 16년 전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당시 2002 한일월드컵 후광으로 국민적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들고 돌아왔다. 한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란에 패하며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박항서 감독은 쏟아지는 비난 속에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더 이상 대표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절치부심 한 박항서 감독은 K리그 하위권의 시·도민구단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 팀에서 박항서 감독은 눈에 띄는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런 K리그 중하위권팀을 전전하는 감독으로 잊혀질 뻔한 순간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팬들은 반발했다. 상무 감독 시절 벤치에서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빗대 박항서 감독을 '슬리피 원'이라고 조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항서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베트남 축구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근성을 강조하는 한국적 축구 스타일을 접목했다. 현지화와 한국적 축구스타일 이식에 성공한 박항서 감독은 짧은 시간 베트남 축구를 아시아 축구 변방에서 태풍의 중심으로 옮겨놨다.
박항서 감독과 같은 사례는 또 있다. '윤할' 윤정환 세레소 오소카 감독이 주인공이다. '윤할'은 울산 현대 시절 재미도 없고 성적도 못냈던 루이스 판 할 전 맨유 감독의 이름에서 유래한 조롱조의 별명이다. 윤정환 감독은 2015년과 2016년 울산을 이끌었지만, 내용과 성적 모두 부진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윤정환 감독은 '윤 매직'을 선보였다. 윤정환 감독은 2016년 2부리그에서 승격한 세레소 오사카를 1년 만에 정규리그 3위에 안착시켰고, J리그 컵과 천황배 두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외국인 감독으로 드물게 J리그 감독상까지 받았다.
윤정환 감독은 울산 감독 시절 '뻥 축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비진영부터 패싱 플레이로 빌드업을 갖추며 공격에 나선다는 큰 전제를 가지고 펼쳤던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뻥 축구', '수비 축구', '재미없다'는 비난만 샀다.
공격을 위한 수비축구라는 윤정환 감독의 전술적 큰 틀은 일본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는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왜 그랬을까. 윤정환 감독은 13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수비를 하는 것은 공격을 하기 위해서이지 수비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공격을 하고 싶어도 볼이 없으면 못한다. 세레소 오사카에서도 마찬가지다. 롱볼도 있지만 측면을 파고들면서 상대의 엷어진 중앙을 크로스나 중앙 침투로 무너뜨리며 득점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과 구단의 권력관계 등 복잡하고 미묘한 영역에서 한일간 차이도 언급했다. 윤정환 감독은 "일본에서는 감독이나 선수가 존중받는 분위기가 강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이 한국보다 좀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K리그에서 선수 이적이나 영입, 방출 등 팀 전력 강화를 위해 감독을 보좌하는 전문 인력을 두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시민구단에서는 시장의 정치성 행사에 감독을 불러내기도 한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Sir(서)' 알렉스 퍼거스 전 감독처럼 'Sir Kim(서 김)'로 불리는 한국인 감독이 있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2008년 홍콩에 진출해 사우스차이나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고 2009년 홍콩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2010년에는 홍콩 체육 지도자상을 받았다. 홍콩 축구의 대부 스티븐 로는 김판곤 위원장에게 영국식으로 'Sir Kim'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김판곤 위원장은 인구 700만 명의 소국이자 중국에 속한 자치구인 홍콩을 하나로 통합하며 홍콩 축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2010년 동아시안컵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16강 등 성적을 냈고, '홍콩의 히딩크'로 불렸다. 2012년부터는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겸하며 홍콩 축구의 백년대계를 주도했다.
김판곤 위원장은 마산 창신고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늦깎이다. 대표팀은 근처에도 못 가봤다. K-리그에서 수비수로 53경기를 뛰고 은퇴한 뒤 홍콩에서 선수 및 지도자로 활동했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2003년 최상위 지도자 자격증인 P급을 따낸 김판곤 위원장은 한때 감독 대행으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지휘봉을 잡았지만,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면서 2008년 팀을 떠났다.
프로 선수로, 지도자로 한국서 성공하지 못한 김판곤 위원장은 2009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국가 대표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게 첫째 과제였다. 훈련 전후 시간이 날 때마다 '홍콩 시민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뛰자'고 세뇌했다"고 말했다. 기강도 바로 세웠다. 그는 "홍콩에는 술과 담배를 하는 선수가 많다. 훈련 지각은 물론 얘기도 없이 불참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걸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술도 바꿨다. "수비하다 역습을 하던 과거와 달리 중간 과정부터 만들어가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시도한 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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