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가 자랑하는 세계적 수문장 페트르 체흐가 유로 2012를 동화처럼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까? 객관적 전력상 약체라 꼽히는 체코의 골문을 지키게 됐지만 자신감만큼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드높다.
체흐는 2004-2005시즌 첼시 입단 이래 가장 혹독한 시즌을 보냈다. 사령탑 경질, 동료 선수들의 노쇠로 인해 많은 골을 내줘야 했고, 지난해 10월 아스날을 상대로는 무려 5골이나 허용하며 굴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온전히 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으나 잦아진 실점은 프리미어리그 선두 후보로 꼽히던 첼시를 6위까지 고꾸라지게 했다. 철벽 수문장이라 불렸던 명성에 비한다면 상처가 꽤나 많았던 시즌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웃었다. 무대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인 악전고투로 인해 애당초 우승 후보 대열에 끼지도 못했고, 16강전에서는 나폴리발 돌풍에 휘말려 탈락 일보 직전까지 갔던 첼시는 이후 심기일전하며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등 내로라하는 강팀을 모두 제칠 수 있게 된 힘이 그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승전만 해도 그렇다. 팀 동료 프랭크 램파드는 “체흐가 없었더라면 졌을지도 모르는 경기”라고 했다. 그렇다. 스포트라이트는 극적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승부차기의 방점을 찍었던 디디에르 드로그바가 차지했으나, 실질적으로 첼시 우승에 절대적 공헌을 한 선수는 연장전에서 아르옌 로벤의 페널티킥을 막아내고 승부차기에서도 빛나는 선방을 거듭한 체흐였다.
그런 체흐가 또 한 번 거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바로 유로 2012다. 아마도 첼시 소속으로 유럽 정상을 밟았던 것보다 더 힘든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체코에는 중원을 휘어잡았던 파벨 네드베드와 같은 엔진도, 어마어마한 제공권 장악으로 상대 수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얀 콜레르와 같은 거한도 없다. 2000년대 체코 축구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선수들 중 남은 이는 체흐와 토마시 로시츠키뿐이다. 스타들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과거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바라보기 힘든 팀이 바로 체코다.
하지만 외부 평가에 좀처럼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랬듯, 체흐가 꿈꾸는 무대는 유로 2012 결승전이다. 체흐는 “한여름의 결승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면 신께 감사드릴 일”이라며 열망을 불태운다.
물론 체흐의 바람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다 할 강호가 보이지 않는 A조에 속해 있지만 8강 진출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유로 2008 이후 4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 복귀한 체코는 16개 팀 중 최약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A조를 어렵사리 통과하더라도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덴마크가 죽음의 조를 이룬 B조 8강 진출팀과 격돌해야 하며, 이를 넘어서면 스페인과 같은 절대 강자와 마주할 공산이 크다. 한마디로 우승까지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그는 첼시 소속으로 한 차례 기적을 경험했다. 기적이 연거푸 일어난다면 그것이 어떻게 기적이겠냐라고 되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맛본 기적은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 체흐가 딱 그렇다.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반란, 어려움의 단계가 한층 더 높아진 유로에서 재현할 수 있을지 흥미롭다. 승점 제물로만 여겨지고 있는 체코지만 체흐가 있기에 호락호락 물러설 기미는 없다. 체코를 꺾으려면 한창 물오른 체흐를 무너뜨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베스트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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