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제, 법적 승패 문제로 변질 우려

[더팩트ㅣ국회=이태훈 기자] 정치적 갈등이 사법부로 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대표의 거취부터 당내 징계, 국회 입법 절차 등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영역도 넓어지는 추세다.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고, 사법기관의 결정이 다시 정쟁의 소재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가 자신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배제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 효력을 일부 정지한 데 대해 "민주당의 다수 폭력에 (헌재가) 제동을 걸었다"고 환영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2일 이 의원이 방송통신위원장 재임 당시 관여한 업무를 직접 감사하는 것은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며 이 의원 국감 제척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헌재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전날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이 의원의 국감 참여의 길이 열렸다.
여야 사이에 발생한 정치적 갈등의 전선이 법원과 헌재로 옮겨가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주장,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말미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여야 극한 대치가 심화했고, 이 시기를 거치면서 국회의 타협과 조정 기능이 사실상 망가졌다"고 지적했다.

정당 내부 판단을 사법부의 힘을 빌려 뒤집으려는 사례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2022년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 현 개혁신당 의원은 당시 당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자신의 '성상납 증거인멸교사' 의혹을 문제 삼아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내리자, 같은 해 8월 10일부터 2달여간 5차례의 가처분 공세를 폈다.
이 밖에도 지난해 21대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당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대선 후보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후보자 지위 인정'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당원들이 정청래 전 대표가 도입한 '전당원 1인 1표제'를 무효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통화에서 "공천과 경선 결과에 대한 가처분 빈도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여야 불문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갈등이 법정으로 향하는 배경에는 여야 간 타협과 조정 기능의 약화, 정당 내부 민주주의의 한계, 정치적 책임을 사법적 판단으로 대체하려는 유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쟁점이 정책과 가치의 대립을 넘어 상대방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양상으로 흐르면서 협상보다 법적 대응을 우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 지도부 구성이나 당내 징계, 국회 의사절차처럼 정치권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는 사안까지 법원과 헌재의 판단에 의존하면서 정치적 갈등의 사법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현상은 정치권이 갈등 해결의 책임을 사법기관에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판결 이후에도 패소한 쪽이 결과를 정치적 편향의 문제로 해석할 경우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새로운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법률적 승패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정책 논의와 의회 내 조정 기능이 약화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사법기관 역시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파급력이 큰 사건을 반복해서 판단할수록 판결과 결정은 법률적 논리보다 정파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 율사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사법기관이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하더라도 정치권이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사법적 판단 자체를 공격할 경우 사법부 중립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며 "정치권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법적 통제가 오히려 사법기관의 정치화 논란으로 이어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