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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식 개혁은 경계"…俄 전문가가 전한 北 경제 변화
주택 건설·지방발전 정책 주목
"대외협력 확대, 제재 걸림돌"


북한이 과거 소련의 개혁·개방 실패를 경계하면서 중국식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경제 운영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러시아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AP. 뉴시스
북한이 과거 소련의 개혁·개방 실패를 경계하면서 중국식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경제 운영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러시아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AP. 뉴시스

[더팩트ㅣ정소영 기자] 북한이 과거 소련의 개혁·개방 실패를 경계하면서 중국식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경제 운영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러시아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지난 18일 러시아 주간지 ‘리테라투르나야 가제타’에 기고문을 발표한 사이드 가푸로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교 해외지역학과 부교수는 북한 조선사회과학자협회에 초청으로 8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뒤 이같이 진단했다.

♦주택 건설·도시 변화 주목…"지방 두드러져"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 주택 건설 확대를 꼽았다. 그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주택 건설의 급속한 확대"라며 "평양에서도 그렇지만 지방에서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그는 "평양에서 건물은 단순히 빈자리를 찾아 들어선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이 하나의 통일된 구성과 거대한 예술적 구상의 일부"라고 평가했다. 이어 "서울에서 돈을 받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북한은 생활 수준 면에서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중간 정도의 풍요를 누리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의 변화가 도시 경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왕따 국가라고 부르지만 막상 방문해 보면 새로운 공간이 펼쳐져 있다"며 공공시설과 생활편의시설 등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이 추진하는 ‘지방발전 20X10 정책’도 주요 변화로 언급했다. 북한은 2024년부터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는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화한 지방공업공장 및 지방병원을 건설해 지방 주민들의 생활·물질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이 주택 건설에 그치지 않고 병원과 지방공업공장, 편의시설 등을 확충해 지역 주민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드 가푸로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교 해외지역학과 부교수는 북한이 과거 경제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AP. 뉴시스
사이드 가푸로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교 해외지역학과 부교수는 북한이 과거 경제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AP. 뉴시스

♦"소련식 개혁 경계…과오 인정해도 체제 부정은 아냐"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이 과거 경제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조선사회과학자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북한 사회과학자들이 기존 자력갱생 정책과 경제적 불균형의 극복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노동당 지도부도 과거 경제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푸로프 부교수는 이러한 움직임을 과거 소련의 개혁·개방과 비교했다. 소련에서는 경제정책의 과오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체제 전반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됐지만, 북한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운영 방식을 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주의와 결별하지 않으며 국가 경제가 이룬 눈부신 성과까지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소련의 개혁 경험을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북한은 위로부터의 개혁 시도가 어떻게 통제력 상실과 거대한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는지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이 지향하는 방향을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와 베트남의 정책적 유연성에 빗댔다. 소련 고르바초프식 개혁·개방보다는 덩샤오핑식 실용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북한이 추진하는 개혁은 생존을 위해 자력갱생이라는 교리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라며 "고르바초프식 개방이 아니라 덩샤오핑식 ‘고양이가 쥐를 잡기만 하면 된다’는 실용주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가푸로프 부교수는 경제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과 정치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도 주장했다. 북한이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 억제력을 바탕으로 체제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 재편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무기가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는 수단이자 경제 운용 방식을 조정할 시간을 확보하는 요인이라는 해석이다.

사이드 가푸로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교 해외지역학과 부교수는 북한이 경제체제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지향하던 기존 원칙에서도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AP. 뉴시스
사이드 가푸로프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교 해외지역학과 부교수는 북한이 경제체제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지향하던 기존 원칙에서도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AP. 뉴시스

♦대외협력 확대 ‘과제’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이 경제체제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지향하던 기존 원칙에서도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이 국내 생산을 유지하면서 국가 간 분업과 제한적인 대외무역을 활용하려 한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을 제약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가푸로프 부교수는 "북한은 더 이상 완전한 자급자족 경제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렇다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세계시장에 편입될 수도 없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 지도부는 충격요법과 이념적 해체를 모두 피하면서 외과수술처럼 정밀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며 "서방식이든 소련식이든 다른 나라의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 변화가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과거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개혁 요소를 도입하고는 있지만 대북 제재와 제한적인 경제 활동 등을 고려하면 중국식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있다"며 "대북 제재로 외부 자본이 들어오기 어렵고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 허용했던 토지사용권이나 기업활동의 자유도 북한에서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통일한국 이사장)도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설 경우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up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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