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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로 들끓는 정치권…해묵은 史 영화 논쟁, 왜?
국힘, 논란 영화 향해 연일 맹폭…"저급한 프로파간다"
‘그때 그사람들’ 손해배상·‘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 사례도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 예매 키오스크에 '암살자(들)'이 나오고 있다. 이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영화 제작진이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뉴시스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 예매 키오스크에 '암살자(들)'이 나오고 있다. 이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영화 제작진이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뉴시스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진영 갈등으로 번졌다.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은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암시하고 있다며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과거에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를 둘러싸고 유사한 논란이 반복된 가운데, 정치권에선 진영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국정감사 일반 증인 및 참고인 출석요구의 건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영화 '암살자(들)'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을 국정감사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야당 간사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창작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이 사자(死者) 명예훼손의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며 허 감독의 증인 및 참고인 채택을 제안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선례도 언급하며 "증인 출석이 어려우면 참고인으로라도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같은 당 김승수 의원도 "악의적이고 퇴행적인 역사왜곡 영화여서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라며 감독과 제작자를 국감장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에 맞서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여당 간사인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건국전쟁' 감독 채택 사유가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독립영화 인정 여부였다고 반박했다. 국감장에 감독을 불러 영화 내용을 이유로 문책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킨다고 우려했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영화는 본래 역사적 사실을 픽션화한 것"이라며 판단을 관객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진선미 의원도 "영화 문제를 국감 증인으로 소환하는 논의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허 감독의 참고인 출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정감사 증인 채택의 경우 7일 전 출석 통보를 위해 상임위에서 의결해야 하지만, 참고인은 여야 간사 간 합의만 이뤄지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 간사는 이날 <더팩트>와 통화에서 "참고인은 여야 간사 협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다시 협의해 보고, 어렵다면 최대석 박정희학술원 이사장을 통해 (영화를 둘러싼 왜곡논란에 대한) 입장을 자세히 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이날 의결된 문체위 국정감사 참고인 명단에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암살자(들)' 영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 및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국민의힘은 '암살자(들)' 영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 및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국민의힘은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겨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역사왜곡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음모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운동권 증오심을 자극하고, 대중에게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저급한 프로파간다물"이라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전날(28일)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 당한다.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다"면서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의원도 같은 날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고 아직도 살이 에이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패륜 행위"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개봉한 10·26 사건을 소재로 삼은 '그때 그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 씨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이 일부 인용한 바 있다. 아울러 박 씨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006년 8월 해당 사건의 인격적 법익 침해를 인정해 제작사가 박 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3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도 해군과 유가족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기각했지만, 메가박스가 "일부 단체의 항의와 시위를 예고했다"는 이유로 개봉 이틀 만에 상영을 중단했다. 당시 영화계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고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에서는 역사 영화로 촉발된 정치권의 논쟁이 각 진영의 지지층 집결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높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5월 충북 옥천군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정치권에서는 역사 영화로 촉발된 정치권의 논쟁이 각 진영의 지지층 집결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높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5월 충북 옥천군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정치권에서는 역사 영화로 촉발된 논쟁이 각 진영의 지지층 집결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엔 호남 민심이 동요하는 것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와 관련된 경우 대구·경북 등 보수층이 쉽게 동요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 결국 지역 및 진영 갈라치기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충북 옥천군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는 국민의힘 등 보수 주요 정치인들이 선거 등 주요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방문하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5월 지방선거 국면에서 충청권 표심 공략 일정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고, 지난해 5월 대선 기간 때도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아 참배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 겸 정치평론가는 이날 통화에서 "5·18, 제주 4·3, 박정희·육영수 관련 사건은 현대사에서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며 "사실관계를 비튼 영화적 상상력을 '표현의 자유'로만 옹호할 경우 정치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보수는 보수대로, 박정희 독재에 맞서온 뿌리를 확인한 진보는 진보대로 각각 진영을 결집할 수 있어 여야 모두 정치적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underwat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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