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장, 331쪽으로 구성…사회주의·주체사상 강조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더팩트>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도쿄(일본)=정소영 기자] 허종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의장이 지난해 조총련 결성 70주년을 맞아 자서전을 펴냈다. 2015년 조총련 결성 60주년을 맞아 활동일지를 펴낸 것과 달리 이번에는 허 의장의 경험을 정리한 자서전으로 2025년 5월 출간됐다.
<더팩트>는 지난 18일 허 의장의 자서전을 입수했다. 331쪽 분량의 자서전은 총 4장으로 구성됐으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의 일화와 총련 활동을 담았다. <더팩트>는 자서전에 담긴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서술과 총련 지도부의 인식을 차례로 살펴봤다.
♦재일동포 북송사업, 수령 중심 서술
허 의장은 자서전에서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김 주석에 대한 신뢰로 해석했다. 북송사업은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 3000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영주 귀국한 사업이다. 당시 북한의 노동력 확보와 일본 내 재일동포 문제 해소 등 북일 양측 이해관계 속에서 추진됐지만, 자서전은 이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은 언급하지 않았다.
또 해당 대목에선 대한민국을 '괴뢰한국지역'으로 지칭하고, 김구·여운형·김규식 등을 김 주석 중심의 역사 서사에 편입시키는 등 북한식 수령 중심 역사관도 드러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비록 괴뢰한국지역의 태생이지만 사회주의 조국에로의 귀국의 길을 택한 것은 사회주의를 리념(이념)으로 깨달았거나 그 어떤 정치적 신조가 뚜렷해서가 아니었다. 그들도 김구나 려운형(여운형), 김규식 등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야만 인간의 진정한 삶도 행복도 있다는 하나의 생각, 수령님 계시는 곳이 바로 진정한 조국이라는 것을 신념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오형진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 고문이 2019년 12월 자기의 수기에서 쓴 바와 같이 당시 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격찬한 재일조선동포들의 조국에로의 집단적 귀국은 사실상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께로 우리 민족의 대이동이었으며 절세위인을 따르는 김일성 민족, 수령님 식솔의 영원한 흐름이었다." (p.137)

♦학생 8000여 명 집단체조 동원…"단결의 힘"
허 의장은 자서전에서 집단체조를 조직력 결집과 대외적으로 위상을 드러낸 사업으로 평가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공연의 규모와 준비 과정에 관여한 일화를 비중 있게 소개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조총련은 1960년대 재일동포 사회와 국제사회에 조직의 위상을 과시한다는 목표로 대규모 집단체조를 추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큰 규모로 진행하도록 지시했고, 출연자 선발과 공연 준비를 맡을 '창조집단과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집단체조에는 조선대학교를 비롯해 간토지방 고급학교 3곳과 중급학교 15곳, 초급학교 24곳의 학생 8000여 명이 동원됐다. 카드섹션에 사용한 모자이크 형식의 배경책도 재일동포와 학생들이 직접 제작했다. 허 의장은 배경책을 만든 뒤 이어진 학생들의 훈련이 제작 과정보다 더욱 힘들었다고 적었다.
"출연자가 학생들이다 보니 규률(규율)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신호를 놓쳐 자주 오자가 났다. 집단체조에 동원된 학생들을 책임진 조청(재일조선인청년조직) 일군들은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니 학교 건설장에 나가 땀을 흘리는 것이 낫겠다고 볼부은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그들을 공연히 다 불러 세우며 다시 훈련장으로 떠밀었지만 속으로는 그네들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이해)되었다." (p.81)
"학생들은 소금으로 갈증을 달래는 훈련까지 스스로 하였다. 이렇게 되자 불평을 부리던 조청 일군들도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었다." (p.81~82)
허 의장은 재일동포와 학생들이 공연을 준비하며 조총련을 중심으로 결속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학생들의 고된 훈련, 이를 관리한 간부들의 불만을 기록하면서도 조직의 단결과 성과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동포들과 학생들을 이렇게 배경책을 만드는 과정, 훈련하는 과정에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체험하였다. 집단의 힘, 조직의 두리에 뭉친 단결의 힘이 얼마나 위력한가를 책에서가 아니라 실천 활동 속에서 배웠던 것이다." (p.82)

♦김정일 "일본, 미래 없어"…사회주의 우월성 강조
허 의장은 자서전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도 소개했다. 2002년 2월 김정일 위원장은 허 의장을 비롯한 조총련 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일본의 경제체제를 비교하며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평양과 도꾜(도쿄)는 리념과 제도상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나라가 지금은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좀 못하지만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는 자본주의 제도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우리에게는 인간의 참다운 생활이 있다고, 일본 도꾜는 네온 등도 번쩍거리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일본은 미래가 없는 나라라고 말씀하시었다." (p.258)
허 의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 뒤 북한과 일본 청년을 대비하며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드러냈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조국의 청년들과 일본의 청년들을 비교해 보았다. 한 쪽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마땅한 의무로, 더없는 행복으로 여기는 미덥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라면 다른 쪽은 자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해서는 나라도 민족도 다 팔아먹는 시정배, 온갖 패륜패덕을 빚어내는 사회의 우환거리, 나라의 골치거리가 된 가련한 모습이었다." (p.258~259)

♦성경 바벨탑 거론…주체사상탑과 비교
허 의장은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를 인용하며 주체사상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주체사상은 북한이 주장하는 통치 이념으로,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고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유일영도체제를 뒷받침하는 북한 체제의 철학적 기반이다.
허 의장은 서로 다른 언어가 생겨 바벨탑 건설이 중단됐다고 언급했고, 이를 주체사상탑과 대비하며 ‘세계 유일의 사상의 탑’이라고 평가했다.
"옛날 바빌로니아인들이 무엄하게도 하늘 끝에 닿는 탑을 쌓겠다고 역사질을 시작하자 하느님이 대노하여 그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게 조화를 부렸다. 그러자 자연 의사가 통하지 않게 된 그들은 저희들끼리 서로 화를 내고 고함을 치고 싸움질을 하다가 끝내 공사를 포기하고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성경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이로부터 '바벨탑'이라는 말은 서로의 의사가 통하지 않는 혼탁된 곳이라는 뜻에서 상징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세계의 수많은 언어들이 한목소리로 칭송하며 받들어올린 하나의 탑, 세계 유일의 사상의 탑이 지금 내 앞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주체사상탑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간중심의 위대한 사상은 자기 운명의 결정권을 신에게 맡겨버렸던 인류를 깨우며 자주시대의 새 기원을 열어놓았다." (p.71)
허 의장은 조총련의 존립 기반도 주체사상에 있다고 전했다.
"사람에게 단 하나의 생명이 있듯이 우리 총련의 존재와 발전의 유일한 생명선은 주체의 사상체계, 령도(영도)체계이다." (p.72)
<중>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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