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되지 않은‘ 합의 내용에 촉각...’대만 문제‘에도 관심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중국의 미래 설계는 ’상하이의 책사(策士)‘가 맡고 있다."
필자가 상하이특파원으로 일하던 2003년 봄, 현지에서 만난 중국 중견 언론인들은 ‘상하이의 책사’를 자주 언급했다. 당시는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시대였는데, 후진타오의 국정 이념의 토대를 제공한 이가 바로 이 책사라는 것이다. 은근히 상하이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때 ‘상하이의 책사’가 바로 최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왕후닝(王滬寧)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다.
상하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왕후닝에 대해 파고들수록 ‘과연 현세의 제갈량이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하이 사람들의 자부심에서 느끼듯 그는 상하이 명문대학인 푸단(復旦)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만 29세에 같은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푸단대 국제정치학회장 등을 지내다 중국 공산당 최고 싱크탱크인 중앙정책연구실로 자리를 옮긴다.
1995년 연구실 정치조장(組長)을 맡다가 2002년에는 총책임자가 됐고, 2020년 말까지 일했다. 그 사이에 장쩌민 주석의 ‘3개 대표론’과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그리고 오늘날 시진핑의 ‘중국몽’이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국가 이념이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교체됐지만 여전히 책사는 변함없이 왕후닝이었다.
현재는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자 중국의 권력서열 4위인 정협 주석을 맡고 있는 그는 다른 상무위원들처럼 지방 정부 간부는커녕 관료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최고 권부에서 당당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중국 국가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런 그가 북중 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을 맞이해 평양을 찾아 김정은을 만난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북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이 북중우호조약에 대해 "조중 양국의 근본 이익을 수호하고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하자 왕후닝도 "정치적 호상(상호)신뢰와 쌍무적 연대를 증진하고 협력과 협조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과 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왕후닝의 방북’에 대해 대체로 북중 정상합의를 양국간 교류 확대로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거나 중국의 대북 영향력 회복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고 있다. 또 러시아 변수나 한반도 위기 관리 등도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됐다.
실제로 왕후닝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6월 방북 당시 이뤄진 합의를 충실히 이행할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또 ‘정치.경제.문화협력과 고위급 전략소통’의 강화도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북중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을 기념한 방북에서 보듯 중국은 전통적인 북한과의 관계가 러시아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왕후닝의 위상과 역할을 감안했을 때 ‘공개되지 않은 합의’ 또는 앞으로 시진핑에 올라갈 ‘왕후닝의 방북보고서’가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 정부가 제공할 대규모 경제지원 계획이나 대북 제재 문제, 그리고 핵무기와 관련된 이슈들(비핵화 포함) 역시 공개되지 않은 회담 결과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2027년을 ‘중국 통일’의 원년으로 삼고자하는 시진핑 주석의 원대한 계획을 감안할 때 ‘대만 문제’도 깊숙하게 논의됐을 수 있다.
왕후닝이 맡고 있는 정협 주석은 대만 문제를 총괄하고 있다. 왕후닝은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대만공작회의’에서 "‘대만 독립’이라는 도발 행위를 단호히 척결하고 조국 통일을 필연적 대세로 만들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여기서 언급한 ‘조국 통일을 필연적 대세로 만들어야 한다’는 표현은 중국 당국이 대만 통일 문제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었다.
왕후닝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만 통일전략을 취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읽혔다. 결국 왕후닝의 평양행은 그가 그리는 거대한 중국의 미래 설계도의 한 축을 확인하고 완성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이후 중국이 추진할 대북 정책과 한반도 전략, 그리고 미국과의 패권경쟁의 행보에 쏠린다. 중국의 ‘황제 책사‘의 향후 행보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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