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성과보다 주민 설득·장기 해결
'야생화단지 보존' 등 성과 내기도

'금지된 정당.' 지역에서 출발한 풀뿌리 정치 조직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 현행 정당법상 지역정당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정책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정당'이라 부르는 이들이 존재한다. <더팩트>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제도 밖에 놓인 지역정당의 실태와 한계, 그리고 가능성을 짚어봤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변화와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왜 지금 한국 정치에 지역정당 논의가 필요한지, 지역에서 시작된 정치가 과연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6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채영·김시형 기자] 지역정당이 있는 구·시민들에게 개선이 필요한 현안들은 무엇일까.
<더팩트>는 지역정당을 만나기 전 현안들을 조사했다. 지역정당이 거대 양당과는 다르게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우선 은평구 주민들이 가장 먼저 꺼낸 건 의외로 거창한 개발 사업이 아니었다.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노인 인구의 불편함이 가중된다는 일반적인 민원이었다. 은평구청의 통계에 따르면 은평구는 2026년 4월 기준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약 23% 수준이다. 인접한 마포구(16~17%)나 서대문구(20% 안팎)보다 높은 편으로 서울 자치구 가운데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지역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6호선 응암역과 새절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언덕이 많은 은평구 지역의 특성상 고령층과 교통약자의 불편은 더 크다.
은평민들레당은 이미 지난 2022년 교통약자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 적 있다. 횡단보도 보행시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직접 초를 재며 조사를 진행했고,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를 지도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오래 이어지거나 보행신호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은평민들레당 운영위원인 김원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는 "보행 신호 시간이 짧아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이 길을 건너기 힘든 구간들이 있었다"며 "당원들이 직접 시간을 재고 조사했지만 상근 인력이나 예산이 없다 보니 흐지부지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정당이 합법화되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이런 현황 조사나 정책 제안도 훨씬 깊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역정당에서 주력한 문제들은 단순한 민원 해결 이상의 역할이다. 이들은 기존 정치가 다루지 않는 생활 밀착형 의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매년 날씨가 더워지면 찾아오는 러브버그도 은평구의 골칫거리다. 최근 몇 년간 은평구를 중심으로 대량 발생한 러브버그에 주민들의 고통 호소는 계속됐다. 이 가운데 강한 방역으로 빠르게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과 무분별한 방제가 오히려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려 근본적인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기도 하다.
채훈병 은평민들레당 사무처장은 "러브버그 문제는 단기간에 약을 뿌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함께 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눈앞 성과를 위해 방역만 반복하면 오히려 천적까지 사라져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은평민들레당은 최근 대벌레 확산 당시 은평구의 끈끈이 롤 트랩 방식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며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대벌레를 잡기 위해 나무에 설치한 끈끈이가 오히려 다른 생물들까지 피해를 주고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은평민들레당은 러브버그 역시 생태 변화, 조명·도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인 만큼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단기간의 정책 성과를 바라보기보다는 오랜 시간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설명하고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용희 직접행동 영등포당 대표는 "이런 문제는 주민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긴 시간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 정치는 임기 안 성과 중심으로만 움직인다"며 "지역 정당은 선거 주기보다 더 긴 호흡으로 생활 문제를 붙드는 정치 실험"이라고 말했다.
영등포구 주민들이 꼽은 지역 문제는 영등포역 인근의 성매매 집결지와 노숙인 문제였다. 이에 직접행동영등포당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단순 철거나 단속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들은 과거 현장 활동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 지원 단체들과 만나 탈업 지원과 재개발 이후 대안 공간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용희 영등포당 대표는 "재개발로 집결지가 사라진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계와 인권, 이후 삶까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숙인 문제 역시 안 보이게 가리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노숙인 문제는 격리나 단속 대상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 할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며 "단기간에 표를 얻기 위한 정책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지역 정당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건 '지속성'이었다. 중앙 정치가 전국 단위 이슈에 집중하는 동안, 지역 주민들의 생활 문제를 끝까지 추적하고 주민과 행정 사이를 연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는 것이다.

윤왕희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은 더 이상 현재 중앙 정당 중심 구조로는 지역에서 깊어지는 생활 밀착형 문제를 다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윤 교수는 "지금 지방정치는 특정 정당 독점 구조가 강하다 보니 지방의회 견제 기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 정당이 존재해야 지방정치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중앙 정당은 정당의 특성상 개헌이나 특검 같은 전국 이슈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이 실제 겪는 생활 구석구석의 문제는 정치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와 달리 지역 정당은 주민을 단순 민원인이 아니라 정치 주체로 만드는 데 의미를 둔다. 윤 교수는 "지역 정당이 있으면 주민들이 스스로 정치 주체가 돼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중요한 건 주민들이 체감하는 것"이라며 "이 정당이 중앙 정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동네 문제를 해결하려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경험이 쌓여야 지역 정당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천시민정치당은 과거 지역 현안 대응 과정에서 실제 성과를 낸 경험도 있다. 대표 사례로 꼽는 것이 2014년 중앙공원 야생화단지 보존 운동이다. 당시 과천시는 야생화단지 일부를 승마 체험장과 쉼터 등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지역 시민사회와 주민 반발 끝에 계획이 철회됐다.
구자동 대표는 "당시 야생화단지는 시민들과 아이들이 쉬는 공간 같은 곳이었는데 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듯 사업을 추진했다"며 "주민들과 중앙공원에서 난상토론회를 열었고 많은 시민이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결국 사업이 백지화됐다"고 설명했다. 또 "국비 매칭 사업이다 보니 일부에서는 '나라에서 돈 준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저희는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며 "결국 지금도 야생화단지는 시민 공간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역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 의회 밖으로 밀려나면서 행정 감시 자체가 어려워졌다.
구 대표는 "예전에는 풀뿌리 성향 시의원들이 의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 현안 정보를 비교적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원외에 있다 보니 정보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승마장 문제도 의회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시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공론화가 가능했던 것"이라며 "지금은 밖에 있으면 시가 어떤 사업을 추진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보를 알아야 자료 요청도 하고 문제 제기도 할 수 있는데, 바깥에서는 그런 통로 자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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