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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된 재판소원<하>] 70년 역사 독일은 '입구컷'…한국형 모델의 과제
독일·스페인·대만 인용률 0.8% 이하
헌재 인력·시스템 보강 필요
2차 가해 불가피…"보호 방안 필요"


독일은 지난 1951년 나치 정권이라는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로 재판소원을 도입했고, 이후 스페인과 대만 등에서도 재판소원제를 도입했다. 사진은 안드레아스 포스쿨레 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가운데)를 비롯해 독일 헌재재판관들이 지난 2016년 3월 1일(현지시간) 극우 정당인 민족민주당(NPD)에 대해 정당해산 여부를 가리는 심판 절차를 개시하는 모습./뉴시스
독일은 지난 1951년 나치 정권이라는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로 재판소원을 도입했고, 이후 스페인과 대만 등에서도 재판소원제를 도입했다. 사진은 안드레아스 포스쿨레 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가운데)를 비롯해 독일 헌재재판관들이 지난 2016년 3월 1일(현지시간) 극우 정당인 민족민주당(NPD)에 대해 정당해산 여부를 가리는 심판 절차를 개시하는 모습./뉴시스

<중>편에 이어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목표로 도입된 '재판소원제'가 시행 초기부터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숭고한 취지와 달리 실제로 접수되는 사건들은 범죄자들의 시간 벌기용 '꼼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팩트>는 재판소원제의 현실을 짚어보고, 해외 운용 현황을 통해 한국형 재판소원이 나갈 길을 총 3편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국회=정채영·서다빈 기자] 독일은 재판소원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다. 1951년 나치 정권 이후 기본권 보호 기능을 상실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로 재판소원을 도입했고, 70여 년간 재판소원제를 운용해 왔다. 도입 당시부터 입법·행정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재판'을 포함한 모든 공권력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명시해 국민의 기본권을 두텁게 보호해 왔다. 이후 스페인과 대만 등에서도 재판소원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재판소원은 생각처럼 만만한 제도는 아니다. 이들 국가의 운영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접수된 재판소원의 인용 비율이 2%도 채 되지 않는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헌법소원 사건 중 재판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지만, 실제 인용률은 0.8%에 불과하다. 인용된 사건 중에서도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는 매년 10건 미만으로, 이른바 '바늘구멍'이라 불릴 만큼 까다롭다. 율사 출신 한 정치인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내 역시 상당수 사건이 요건 미비로 각하되거나 기각되어 인용률이 1%를 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재판소원의 핵심 장벽은 '보충성'의 원칙이다. 보충성의 원칙은 확정판결 전 하급심 단계에서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사실 주장'이나 '이의신청'을 다 하지 않았다면, 재판소원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헌법에 이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곧장 헌재의 문을 두드릴 수는 없다.

정부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한국형 재판소원을 도입했으나 아직은 보완할 점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헌재에 가해지는 행정적 과부하다. 설령 재판소원 기준에 부적합한 사건을 걸러내는 각하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헌재에 가해지는 행정적 부담은 피할 수 없다. 각하나 기각 결정을 내릴 때도 일일이 요건을 검토하고 이유를 작성해야 하므로 업무 폭증은 불가피하다.

한 지방의 부장판사는 통화에서 "헌재는 밀려드는 사건들을 처리할 물리적 역량이 전혀 안 된다"며 "인력 충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된 입법이기 때문에 직원 수 등 현실적인 여건이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성범죄 등 일부 사건에는 재판소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기본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도입됐다는 제도의 본질상 특정 사건에 신청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이런 판단에 따라 재판소원을 도입한 주요 국가들도 특정 사건에 신청을 막고 있지는 않다.

해외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초상고심' 논란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 안착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진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해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재판소원법) 가결을 선언하고 있는 모습. /배정한 기자
해외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초상고심' 논란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 안착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진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 참석해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재판소원법) 가결을 선언하고 있는 모습. /배정한 기자

법조계에서도 누구나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헌재가 본안을 심리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헌재가 판단하기에 '기본권 침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을 재심의 성격으로 다퉈보려는 취지로 제기한 사건은 엄격히 걸러낸다는 설명이다.

헌법재판연구관 출신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통화에서 "재판소원이 도입되니까 옳다구나 접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 기각될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판결을 다시 하라는 것이지, 단순한 법률 적용의 오류를 따지는 4심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판사 출신 한 정치인도 "기본권은 예외를 둘 수 없는 문제이기에 특정 혐의만 배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2차 가해에 대한 보호망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전형환 메가엑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성범죄나 아동학대 등 피해자가 특정된 사건은 재판소원 청구 요건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며 "헌재가 남용 여부를 조기에 판단해 즉각 각하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심사 기준 마련이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누구나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헌재가 본안을 심리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헌재가 판단하기에 '기본권 침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을 재심의 성격으로 다퉈보려는 취지로 제기한 사건은 엄격히 걸러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공동취재단
법조계에서도 누구나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헌재가 본안을 심리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헌재가 판단하기에 '기본권 침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을 재심의 성격으로 다퉈보려는 취지로 제기한 사건은 엄격히 걸러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공동취재단

또한 전 변호사는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대책으로 ▲재판소원 과정 내 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및 진술 재요구 금지 명문화 ▲피해자의 절차 참여권 보장 ▲입법적 후속 조치를 통한 보호 장치 설계 등을 제안했다. 재판소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가 또다시 법적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제도적 '방패'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도 안착을 위한 '준비 기간' 부족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대만의 경우 2018년 법 공포 후 3년이라는 충분한 유예 기간을 거쳐 2022년에야 시행에 들어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포와 동시에 즉시 시행되는 구조다. 그만큼 시행착오를 시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소원이 제 자리를 잡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미 제도를 운용 중인 해외 국가들도 안착까지 수십 년이 걸렸으며, 최근 도입한 대만조차 여전히 초상고심(超上告審, 헌재가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 재판소원을 통해 다시 판단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지적을 받는 등 시행착오를 겪는 실정이다.

재판소원이 헌법의 가치를 사법부의 판단 영역까지 확장하는 민주적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법원의 판결로 인해 침해된 기본권을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가치는 분명하다. 이 교수는 "정치적으로도 논쟁이 있을 만한 제도"라면서도 "시간을 두고 안착하게 되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장치로서는 굉장히 유의미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시행 초기 발생하는 '꼼수 논란'과 '행정 과부하'라는 파고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한국형 재판소원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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