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턴 1기'에 학자 특유의 꼼꼼함도
"일 잘하는 건 기본, 방식도 세련돼야"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만 48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입법조사처장'의 타이틀을 갖고 임기를 시작한 이관후 처장은 전형적인 관료형과는 거리가 있다.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맥락을 짚어내는 학자형 이미지가 강하지만, 말을 시작하면 복잡한 제도와 정국을 명료하게 풀어내는 전달력이 돋보였다. 2003년 국회 보좌진 인턴 제도 신설 당시, 유학 자금 마련을 위해 국회에 들어온 '인턴 1기' 출신인 그는 6년간 보좌진으로 일하며 현장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이 때문에 연구자이면서도 실무 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더팩트>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장실에서 이 처장과 만나 임기 말을 앞둔 소회를 들어봤다. 지난 2024년 11월 20일 임명돼 임기 말에 접어든 이 처장이 유독 강조한 것은 "일은 늘어나는데 사람은 그대로"라는 입법조사처의 고질적인 인력난 문제였다. 국회의 입법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AI·기후위기처럼 새롭게 다뤄야 할 의제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이를 분석하고 뒷받침할 조사 인력은 10년째 제자리라는 것이다.
이 처장은 "정부의 정책을 국회가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슷한 규모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3분의 1 규모도 안된다"며 "정부 법안을 검토하려면 조사원들이 매일 야근, 과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국회입법조사처 18일 '입법조사처 19주년 기념식'에서도 입법조사관들을 향해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는 구성원에 고맙고, 감사하고,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입법의 숨은 조력자이자 국민 주권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입법조사관들의 처우가 지금보다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가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데, 10년간 조직 정원은 그대로 묶여 있다"며 "조직과 정원을 늘려달라고 했지만 쉽지 않아, 먼저 '일을 잘하자'는 전략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원의 30%만 늘어나도 지금보다 일을 2배는 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설득력이 있다"며 "사방에서 '입법조사처가 낸 보고서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들려야 인원 확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원 확대가 쉽지 않은 현실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조직 확대의 필요성을 입증하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 처장은 취임 보름 만에 비상계엄 사태를 겪었다. 그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국회 담장을 넘어 본관으로 뛰어가던 중, 헬기에서 내린 계엄군이 본청 정문으로 진입하려고 해 딱 마주쳤다. 10m 앞에서 마주치니 서로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기로 무장한 계엄군을 마주쳐 '잡히면 죽겠구나' 싶어서 뛰어가니 그들도 뛰어오더라"며 "계엄군이 바로 뒤에서 뒤쫓아와서 급히 뛰어 본청 안으로 들어가서 문 닫고 막았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국회 본청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고 회상했다. 이 처장은 국회의장실에서 CCTV 등 실시간으로 계엄군의 동선을 파악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계엄 이후 '전례를 찾기 어려운' 법적 쟁점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 처장이 임기 중 가장 보람 있는 성과로 꼽은 것도 비상계엄 국면에서의 대응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상황에서 법제처나 법무부의 해석을 믿기 어려웠다"며 "국회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입법조사처 해석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계엄 해제 결의 과정에서 속도 못지않게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처장은 "나중에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없어야 한다고 봤다"며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단말기에 결의안을 올리고 정식 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이 처장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 처장은 "판례가 없으면 교과서, 교과서에 없으면 헌법학자의 의견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결과적으로 어떤 절차적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물로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CCTV 등 국회의 공식적 기록을 확보해 적은 일지인 '헌정위기 극복 1주년 기념 특별보고서'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총 123일간 전개된 주요 사건과 헌법적·법적 쟁점을 조사처의 시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는 "계엄날 당시 저에게 보고됐던 보고서들을 종합해서 책으로 만들었다"며 "당시엔 보고서를 검토해 의장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 처장은 보고서 내용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양식도 전면 개편했다. 입법조사처가 발행하는 '이슈 분석 보고서'의 양식 역시 정부를 향해 날카롭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양식으로 탈바꿈했다. 가독성 있는 폰트와 인포그래픽을 삽입해 가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끌어냈다. 이 처장은 국무총리비서실 소통메시지 비서관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임기 초반엔 보도자료를 '빨간 펜'으로 직접 수정하고, 제목도 눈에 띄게 다듬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하는 것은 내용만 좋아선 안 되고, 세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며 "남들이 보기에도 멋있고,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계엄을 최전선에서 직접 겪은 이 처장은 6·3 지방선거 동시 개헌의 필요성도 피력했다. 이 처장은 "새벽 1시에 국회의 계엄해제가 의결됐다고 해서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이 아니었다"며 "대통령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국무회의 소집을 하지 않으면 계엄 사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어 매우 초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면 즉시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전면 개헌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며 "지금 헌법은 기본 골격이 잘 갖춰진 만큼, 집을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 필요한 부분을 그때그때 손보는 '리모델링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항쟁 관련 판례가 다수 언급된 바 있기에, 4·19 혁명과 함께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입법조사처는 국회 입법·정책 싱크탱크로, 국내 유일 국정 전분야를 다루는 전문연구기관이다. 법안 검토와 정책 분석은 물론, 긴급 현안이 터질 때마다 국회의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입법조사처는 이 처장의 임기 동안 비상계엄 대응뿐 아니라 최초의 다차원적 불평등 보고서 발간, 산불 TF(태스크포스) 구성 및 종합 보고서 작성,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건 전수조사 및 입법분석 보고서 발간 등 굵직한 사회 현안에 대해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은 누구? 최연소 입법조사처장으로 임명된 이 처장은 정치학자다.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학·석사를 마친 뒤 국회 보좌진으로 6년간 근무했고, 이후 영국 런던대학교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비서실 소통메시지 비서관 등을 지내며 정치·행정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이 처장은 우원식 국회의장 임기 중인 지난 2024년 11월 20일, 만 48세 나이에 역대 최연소 입법조사처장으로 임명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탄핵 정국, 조기 대선 국면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격변기 한복판에서 국회입법조사처를 이끌며, 꼼꼼한 업무 지시와 안정적 조직 운영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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