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본질, 북한 사람 해방…자유 찾아줘야"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더팩트>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고양=정소영 기자] 국내 정치에서 통일 담론은 종종 정치적으로 소비돼 왔다. 하지만 조선적·한국 국적·일본 국적이 뒤섞이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등 상이한 단체가 공존하는 일본 재일동포 사회는 통일의 방향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재명 정부가 재일동포를 통일 담론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학교에 다니며 10대 시절 북한을 직접 방문한 경험이 있는 박향수 Free2move 공동대표는 재일동포 사회가 분단을 삶의 경험으로 축적해 온 만큼, 한국의 통일 담론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현장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와 경험을 정책적으로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그는 외삼촌 일가가 북한 국가보위성(전 보위부)에 끌려가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전하며 통일 논의에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존엄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팩트>는 지난 12일 경기 고양시의 한 모처에서 박 대표를 만나 재일동포 사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통일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견해를 들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조총련 산하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조선학교에 다녔던 경험이 있다. 당시 조총련과 재일동포 사회는 어땠나.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 조총련은 영향력이 막강했다. 체감상 재일동포의 70~80% 이상이 조총련을 지지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조총련 산하에는 학교와 은행, 예술단체, 출판사, 보험회사까지 갖춰져 있어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던 재일동포들에게 조총련은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조총련은 경조사까지 챙겨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를 보호해 주는 곳이면서 동시에 속박하는 곳 같았다.
아울러 재일동포 사회 전반은 일본의 구조적 차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선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초·중·고등학교를 일본 학교로 보내면 집단 괴롭힘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조선학교가 낫다고 판단했던 부모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나.
현재 북한을 떠올리면 감시와 통제 사회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같이 인식하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조선학교 재학 시절, 수학여행으로 북한을 직접 방문했던 경험이다. 당시 마주한 북한 주민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을 살피던 눈이었다. 조선학교에 다녔지만 일본에서 성장해 자본주의 사회의 감각을 체득한 상태였기에 북한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생활 환경도 큰 충격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드럼통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해야 했고,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감시원이 따라붙었고, 그들을 일정 거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서는 사실상 뇌물이 필요했다. '차 한잔하고 오라'며 용돈을 쥐여줘야만 비교적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 가족의 경험은 인식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살던 작은외삼촌은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주겠다' 등의 말을 믿고 17살에 홀로 북한으로 갔다. 하지만 그는 훗날 내게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외삼촌은 나중에 처형됐다. 내가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1996년 쯤 삼촌은 이미 국가보위성에 끌려가 있었다. 말 실수 때문이었다. 일본에 있던 큰외삼촌이 국제전화로 술에 취해 '조금만 참으면 북한도 망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었는데, 그 통화가 도청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았던 작은외삼촌과 당시 함께 술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끌려가 고문과 취조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외삼촌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북한은 내게 체제가 인간의 존엄을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말살하는 사회로 각인됐다.

-민단과 조총련, 조선적·한국 국적·일본 국적 등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재일동포 사회를 현재 어떻게 보고 있나.
재일동포 사회는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다만 단체 구도를 놓고 보면 과거 재일동포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조총련 중심의 질서는 상당 부분 변화했다. 조총련의 조직력은 많이 약화됐다. 또 일본 국적을 선택하는 재일동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매년 발표되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그럼 재일동포 사회에서 분단된 남북 관계가 체감되나.
재일동포 사회에서 (남북) 분단은 본인 가족의 관계 속에서도 체감된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보더라도 가족 안에 분단이 존재했다. 한쪽 집안은 민단 성향으로 한국을 지지했고, 다른 쪽 집안은 조총련 계열이었다. 친척 집에 찾아가면 한 쪽에선 북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됐고 다른 한 쪽에선 한국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됐다. 어린 시절 이런 경계를 구분하며 살아가는 일은 매우 복잡했지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갔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가정들은 재일동포 사회에 적지 않다. 지금 (재일동포 사회에서) 분단은 이념 대립의 형태로 드러나기보다는 다소 흐려지고 섞여가는 것 같다. 통일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단은 아직 개인의 삶과 가족의 역사 속에 남아 있다.
-통일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통일이라고 하면 나의 가족과 친척들이 흘렸던 눈물이 생각난다. 북한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도 떠오른다. 만난 북한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을 접해봤기 때문에 통일을 말할 때 나는 늘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북한 사람들을 해방 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통일이다.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의견이 있고, 체제를 유지한 채 두 국가로 가자는 방안도 있지만 나는 그런 논의에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체제의 형태보다 사람이다.

북한 사람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자유를 배우고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이라도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통일이라고 하면 한국 사회나 정치권에선 '통일을 통해 경제 대국이 되고 국가가 더 발전한다'는 이야기만 하는데 이건 통일에 대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통일의 본질을 언급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일동포들의 경험이 남북 통일 논의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재일동포들은 분단을 피부로 직접 겪어온 집단이다. 조총련과 민단이 공존하고, 조선적·한국 국적·일본 국적이 뒤섞인 재일동포 사회는 남북이 함께 존재하는 분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둘러싼 갈등과 공존, 변화의 과정이 이 사회 안에 압축돼 있다. 그래서인지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 사회를 잘 모른다.
재일동포의 역사와 경험, 통일에 대한 인식을 체계적으로 듣거나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이 문제는 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의 교과서 어디에도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다룬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학교에선 왜 일본에 이렇게 많은 재일동포가 살게 됐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재일동포의 역사와 현실을 알리는 것이야말로 분단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조총련도 단순히 이상한 단체로만 소비될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졌는지, 왜 그런 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한 인권 문제다. 북한 인권은 정치적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다. 북한 인권 활동이 특정 정치 성향으로 해석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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