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메치기와 전통 공연 이어진 민단의 연말 풍경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더팩트>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오사카(일본)=정소영 기자] 지난달 20일 낮,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오사카 지부 인근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건물 앞에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3명이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서성였고, 이들은 취재진의 동선을 의식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조총련 오사카 지부는 쓰루하시 일대 코리아타운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코리아타운 상점가에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거리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조총련 오사카 지부는 조선가무단 건물 내에 사무공간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가무단은 조총련이 문예 선동 사업을 목적으로 조직한 예술단체로 도쿄·히로시마·후쿠오카 등 일본 내 일부 지역에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적 단결과 정체성 고양을 내세워 운영돼 왔지만 한국에선 2023년 대법원이 조선가무단을 반국가단체로 판단한 바 있다.
해당 건물 1층에는 조선가무단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창문 틈으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벽면에는 '우리말: 잘 주무셨습니까→발편잠을 잤습니까?' '(다리+펴다+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히 자다' '주정쟁이' 등 한국 표준어와 북한식 표현(평양어)에 대한 설명이 적힌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커튼이 쳐지지 않은 2층 창문 너머로는 한 액자에 김일성 북한 주석의 이름으로 '오사카는 총련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오사카 일군들과 동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애국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야 총련 전반 사업이 잘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과 관련한 문구도 확인됐다. 한쪽 벽에 붙은 종이에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고, 하단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굵은 글씨로 병기돼 있었다.
이와 함께 본지가 입수한 해당 시설에서 작성된 문서에는 '2025년 크리스마스 활동'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 문서에는 활동 참가자 명단과 함께 △쓰루하시 △나카가와 등 오사카 내 일부 지역이 명시돼 있었고, 지역별로 구체적인 주소와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제한돼 있어 크리스마스를 공식적으로 기념하지 않는다. 연말을 맞아 평양 시내나 대형백화점 일대에 장식 조명이 설치될 때는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종교 행사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12월 24일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날이자 김일성 주석의 부인 김정숙의 생일로 체제적 의미가 강조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문서에 '크리스마스 활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점은 눈길을 끈다. 특히 유의사항 항목에는 학령기 아동들의 이름과 함께 '직접 전달'이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어, 일각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선물 전달이나 가정 방문을 염두에 둔 활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조직 관리와 결속을 위한 연말 행사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기자와 만나 "북한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데 해당 문서를 보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다"며 "조총련이 북한과 소통하고는 있지만 일본 사회 안에선 북한 내부와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조총련이 일본 사회의 제약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조총련은 1955년 일본에서 설립된 친북 성향 단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조직의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일본 사회내 조총련의 입지는 점차 위축됐다.

지난달 21일 오사카 야오시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오사카 야오지부가 주최한 연말 지역 교류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야오지부 관계자뿐 아니라 민단의 타 지부 관계자, 재일동포, 북한이탈주민 등이 함께했다. 민단계 한국학교인 오사카금강인터내셔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전통 공연이 이어졌고, 떡메치기와 떡국 나눔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민단은 재일동포 사회 내 좌우 갈등 속에서 반공 노선을 표방한 뒤 출범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재일동포 사회는 민족 권익 쟁취를 목표로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을 결성했지만,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이념 갈등이 격화되며 내부 분열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반공 성향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조련에서 이탈해 같은 해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을 결성했다.
이듬해인 1946년 1월 민족주의 노선을 공유한 신조선건설동맹(건동)이 출범했고, 두 단체는 조직 통합을 추진해 같은 해 10월 3일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발족시켰다. 이후 민단은 재일동포의 귀국 지원과 생활 문제 해결을 핵심 과제로 삼고, 미국 연합군사령부(GHQ)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며 재일동포 사회의 한 조직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민단은 1959년 시작된 북송 사업 당시 ‘북송 반대 투쟁’을 벌이며 조총련과 대립각을 세웠다. 다만 양측의 긴장도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한때 완화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선 조선학교 출신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민단 활동에 참여하거나, 민단 회원이 조선학교 문화행사에 참석하는 사례가 관찰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시 냉각되는 모양새다. 한 재일동포는 기자와 만나 "남북 대화가 끊긴 데다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재일동포 사회 전반에서 거리감이 커진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민단은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한 재일 한국인 단체로 재외동포청과 꾸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재일동포는 "재외동포청과 꾸준히 소통 중"이라며 "지난해 재외동포청과 세계한인차세대대회(FLC)도 함께 개최했었다"고 전했다.

같은 오사카라는 공간 안에서 조총련과 민단이 보여주는 풍경은 뚜렷하게 갈린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총련이 과거의 상징과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면, 민단은 지역 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며 공동체로 자리 잡으려는 모습이란 분석이다. 재일동포 사회 내부의 이같은 온도 차는 남북 관계 경색이라는 외부 환경이 동포 사회 전반에 어떤 균열을 남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쪽은 조총련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조총련 내부에서도 고민이 커졌다"며 "민족 개념이 전반적으로 약화됐고 통일 지향적 성격을 띠었지만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 발표로) 재일동포를 하나로 묶던 민족적 연결 고리가 느슨해지면서 정체성 문제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내부에서 재일동포를 성분이 낮은 이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재일동포들의 입지가 좋지 않다 보니, 과거에 비해 조총련의 영향력이 위축될 수밖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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