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거주 조선적 2만 2711명
"고국 방문 전면 허용해야"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본지>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오사카(일본)=정소영 기자] 일본 사회에는 국적 없이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이 있다. '조선적' 동포들이다. 조선적은 흔히 북한 국적으로 오해되지만 특정 국가의 국적이 아니다. 무국적자로 분류되는 조선적 동포는 대다수 한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지만, 고향 방문이나 귀환에는 적지 않은 제약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적 문제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인권·통일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국적자로 남겨진 '조선적'
조선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강제 동원된 조선 출신자들이 패전 이후 갖게 된 일종의 표식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47년 5월 시행된 일본의 '외국인 등록령'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 연합군사령부(GHQ) 통제 아래 새 헌법 시행을 준비하며 일본 내 조선인과 대만인을 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이들을 외국인으로 분리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국적란에는 일괄적으로 '조선'이 기재됐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 조선 출신이라는 출신지를 행정적으로 표시한 것에 가깝다. 일본 정부도 조선적을 '옛 조선 호적에 등록돼 있으나 대한민국 국적으로 변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분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법무성 출입국재류관리청 통계를 보면 2025년 6월 기준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적 동포 수는 2만 2711명이다. 남성 1만 2449명, 여성 1만 262명으로 집계됐다.
재일동포 사회에선 조선적 동포 다수가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한반도 남쪽에 뿌리를 뒀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재일동포는 기자와 만나 "조선적 동포들의 고향은 대부분 한국"이라며 "분단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1948년 남북한 정부 수립 이후 일부 조선적 동포들은 국적 변경을 선택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의 흔적을 지우지 않겠다는 저항의 의미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분단 이전의 통일된 조선을 염원하는 인식이 공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재일동포는 "조선적은 해방 이후 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 안에는 통일된 한반도를 염원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무국적 상태로 분류되면서 고향인 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던 점은 안타깝다"고 전했다.

◆고향은 한국인데…한국행 막힌 조선적
조선적 동포에게 귀환이라는 절차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나 귀환을 책임지는 주체가 없어서다. 이에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과 정착 문제는 '국적 취득 이후 입국'의 문제로 다뤄진다.
한국으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하다. 여권 발급을 위해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즉, 일본에 거주 중인 조선적 동포가 한국 국적을 선택하면 일본 내에서 국적 취득 절차를 거쳐 한국 여권을 발급받게 된다. 이 때 법적 성격은 조선적의 귀환이 아닌 대한민국 국적 취득 후 귀국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재 여권을 만들어야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다"면서도 "법무부는 조선적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즉, 여권 발행을 하는데 법무부에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귀환이든, 단순 방문이든 조선적 동포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거쳐야 할 절차가 모두 까다롭다는 점이다. 실제 조선적 동포는 귀환뿐 아니라 단순 한국 방문도 쉽지 않다. 한국을 방문하려면 임시여권(여행증명서)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발급 여부가 일본 내 한국 총영사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여행증명서 신청 과정에서 국적 변경을 종용받거나 취조에 가까운 면담,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가 있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조선적 동포의 한국 방문 여부가 영사관 재량에 좌우된다"고 비판했다.

◆"국경 밖에서 책임 회피 안 돼"
일본은 출생지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속지주의가 아닌 부모의 국적을 따르는 속인주의 국가다.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국적을 얻을 수 없다. 이 같은 제도적 구조 속에서 조선적의 정체성 혼란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헌법적 해석에 비춰볼 때 조선적 동포 역시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조에서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제1조와 제2조를 통해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의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 주민을 잠재적 국민의 범주로 포괄하고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통일 지향성을 함께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헌법 전문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일본으로 이주했거나 일본에 거주하게 된 이들의 국적 역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조선적 동포 문제가 개인 정체성을 넘어 민족과 분단의 문제로 직결된다고 지적이 나온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적의 정체성 문제는 구조적으로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조선적 동포들의 한국 자유왕래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 국가에 의해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규명과 후속조치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재일동포와 정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며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조선적 재일동포들에 대한 자유로운 왕래를 제한 없이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도 "재외동포의 역사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며 "재일동포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고국 방문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에 따라 고국 방문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현실은 문제"라며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조선적 동포의 고국 방문이 가능하도록 일관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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