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벌써 2만 900건 돌파
전문가들 "입법 사후 평가 제도화해"

국회의원들의 입법 효능이 높아진 것일까, 아니면 졸속 입법이 일상이 된 시대일까. 숫자만 놓고 보면 22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발의 건수로 성과를 평가하는 구조 속에서 국회는 '숫자'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법안 발의 건수가 의정활동의 성과로 평가되는 구조 속에서 입법은 '숙의의 과정'이 아닌 '숫자의 경쟁'이 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과 입법 지원 인력에게 쌓이고 있다. <더팩트>는 '얼마나 많이 발의했는가'라는 착시를 걷어내고, 숫자에 쫓기는 입법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수민·서다빈 기자] 국회의 '졸속 입법' 행태가 반복하면서 이를 검토해야 할 입법 지원시스템 역시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 발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검토와 숙의는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을 지원하는 '입법 지원 전문 기관'인 국회 법제실이 '법안 검토'를 의뢰받는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더팩트>가 국회 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는 총 4만3135건, 21대 국회에서는 4만4122건의 법안 의뢰가 접수됐다. 22대 국회의 경우, 지난해 5월 30일부터 올해 11월 19일까지 국회 법제실에 접수된 법안 의뢰만 2만931건으로,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임기 종료 시점에는 직전 21대 건수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새로 만드는 법이 기존의 법체계와 충돌하지 않는지 검토하고, 법률안을 구체화하는 법제관 인력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20대 국회 50명이던 법제관 수는 21대 국회에서 57명으로 늘었지만, 22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안 검토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인적 기반은 확충되지 않은 셈이다.
현장 인력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상당하다.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실에서는 일주일에 법안 7건을 만드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보좌진은 물론 입법조사관과 법제관까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충분한 검토와 수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당에서 입법정책을 연구했던 관계자는 <더팩트>에 "단순 수치로만 성과를 평가하는 건 문제다. '몇 건을 발의했는지'와 같은 단년도 정량 지표 외 국회의원의 성과 기준 개발이 필요하다"라며 "부실하게 법을 만들어 차후 개정하는 데 에너지를 투입할 바에는 '과잉 입법 널티'를 때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회 안팎에서는 '얼마나 많이 발의했는가'보다 '얼마나 잘 작동하는 법을 만들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대표발의 법안 수를 성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입법 사후 평가를 제도화하고, 법안의 실효성과 집행 성과를 의정활동 평가에 반영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은경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의원들의 입법 역량이 증진된 것도 있지만 언론과 시민단체가 주목하면서 (법안 발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면서 "법안이 많이 나오더라도 그것들이 제대로 처리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입법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의원에게 어떤 법안을 발의하고, 발의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보다는 발의된 법안이 제대로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더 필요하다"라며 "사후 영향 평가 측면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입법 평가 방식의 개선도 필요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양적인 부분을 질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 개정안 외 대표 발의, 원안 발의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법을 발의했는지보다, 해당 법안이 실제로 통과되고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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