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할 일 없어” 北 여전히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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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정소영·김정수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반년이 지났지만 남북 관계는 좀처럼 복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우리 정부의 화해 메시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의 반응은 없다. 남북 관계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북한의 전략 변화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남북의 신뢰 회복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6월 4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 후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며 "북핵과 군사 도발에 대비하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전단 살포 차단 등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선제적 조치를 연이어 취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선을 그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7월 28일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한(남북) 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시계 초점은 되돌릴 수 없다"며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이미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벗어났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의 비난 담화는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다"라며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 부부장은 같은 달 19일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의 협의에서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상대가 될 수 없다"며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내놨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김 부부장은 "확실히 이재명 정권이 들어앉은 이후 조한 관계의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색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진지한 노력을 대뜸 알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아무리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을 평화의 꽃 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를 존중한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선 "한국의 대북 정책이 급선회하고 있는 듯한 흉내를 내는 것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이 2023년 12월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한 이후 남북 관계는 악화 국면을 넘어 대화조차 어려워진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대통령은 기존 남북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고, 지난 8월 25일 한미정상회담에선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돕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선 'E.N.D(교류·관계 정상화·한반도 비핵화) 이니셔티브'를 제시하며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꿈쩍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국방부가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 기준선 설정 문제를 논의하자며 북한에 남북군사회담을 열자고 공식 제안했던 것도 반응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북한의 전략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판단한다. 북러 군사 협력 강화, 중국과의 관계 회복, 핵무력 고도화 등을 통해 북한이 과거처럼 협상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기존의 메시지 관리나 유화 제스처를 넘어 보다 능동적인 선택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서윤 유니피벗 대표는 "북한이 협상에 나서기 위해서는 남한이 미국과의 조율을 통해 실질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며 "미국이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남한이 북한과 딜(협상)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한 채 현재의 구조가 고착될 경우 분단을 넘어 사실상 완전히 다른 국가로 굳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정부가 미국과 사전 협의를 거쳐 일정 수준의 협의안을 마련해 제시하지 않는 한 현 국면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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