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무역전쟁 휴전, 시진핑 ’다자무역·다자주의‘ 역설
한국,대응 고심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졌다."
경주 APEC(아태경제협력체) 계기에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제목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의 칼럼을 게재했다.
크리스토프는 다음 날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휴전을 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 휴전 이후 중국이 미국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인 미중 관계를 트럼프가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카드는 ’희토류 독점‘이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의 약 90%를 통제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이 국제분쟁에서 희토류 통제력을 무기화할 것임을 간과했으며, 특히 ’칼 싸움‘ 무역전쟁에서 관세를 무기로 삼는 오판을 했다고 크리스토프는 지적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자 세계 언론들은 일제히 "양국이 휴전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양국은 미국산 대두의 대규모 수입과 틱톡 미국 사업 매각 승인 등 무역·에너지·기술을 망라한 '경제 정상화 패키지 합의'에다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 그리고 펜타닐 관련 관세 인하에 합의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미중 무역협상이 마무리됐다"며 곧 서명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희토류는 전부 해결됐다"고 선언한 점이다. 다른 합의 내용보다도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하기로 한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행태를 보면서 ’희토류 유예‘를 대가로 중국에 관세 카드를 슬그머니 내려놓은 점을 주목했다. ’펜타닐 관세‘를 종전 20%에서 10%로 낮춘데서 보듯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 공격‘이 앞으로 힘을 잃을 것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토프는 "무역의 폭군이 뜻밖에도 역으로 괴롭힘을 당하게 되면서 중국에 양보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이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는 당분간 힘들 것이고, 반도체 수출 규제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3일 온라인 플랫폼인 서브스택(substack)에 미중정상회담의 승자는 중국, 패자는 미국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면서 ’우리는 넘버 투(‘We’re Number Two!)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이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보다 훨씬 컸다는 평가도 했다.
경주 APEC은 끝났지만 이제 세계는 그 이후의 국제질서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미국과 중국의 세력균형의 축소판을 연출한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패권도전국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해 미국은 이제 일본과 한국, 그리고 유럽의 핵심동맹국들과의 결속이 절실해지고 있다. 미국만의 힘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도전국을 만난 셈이다.
오히려 중국이 ‘국제질서의 중심’을 자처하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시진핑 주석은 APEC 정상회의 연설문에서 "우리는 APEC이 경제성장 등을 촉진해온 초심을 굳게 지켜야 하고, 계속 개방 발전 중의 기회를 나누고 상생을 실현해야 한다. 보편적 특혜가 주어지고 포용적 경제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이행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무역 시스템의 권위와 효과를 제고하자"고 말했다.
미국이 아닌 중국이 다자무역·다자주의를 강조하는 장면을 세계인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이 철수한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며 ‘중국식 새 질서’를 구축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세력전이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이 떠올랐다. 강대국 간의 패권(전략) 경쟁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이 이론에서 이제 중국이 당당히 지배국(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일각에서 말하는 ‘균형의 중재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맹의 힘’에 더 의존해야 할까. 어쩌면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관성과의 이별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경주 APEC 이후의 국제질서를 생각하면서 착잡한 단상을 지울 수 없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