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톨 박'에 625만불 송금 제기돼
미 하원서 청문회 열려…양국 '촉각'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88년 5월 19일 미 노스롭 항공사(Northrop Corp·현 노스롭 그루먼)가 한국에 'F-20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해 625만달러 규모의 로비를 벌였다고 폭로했다.
이어 미 하원 에너지 상업위원회 산하 조사감독소위원회가 이를 살펴보고 있으며, 로비 의혹의 결정체는 1984년 합작 투자를 통한 한국 내 호텔 건설이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노스롭 항공사 측 해명도 실었는데, 한국 쪽 관계자가 계약을 위반해 호텔 건설을 추진하지 않았고 투자액 회수를 위해 한국 법원에 제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쨌거나 625만달러 규모의 로비 시도가 있었던 셈이다.
노스롭 항공사의 한국 법원 제소도 사실이었다. 노스롭 항공사는 1987년 12월 10일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에 '㈜아세아문화여행 외 12인'을 상대로 625만달러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에 앞서 일명 '피스톨 박'이라 불리는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유족 소유 부동산에 가압류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 박 전 실장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정부는 이같은 논란이 제기된 지 한 달여 만에 미국 측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당시 정부는 박 전 실장이 사망한 만큼 사건에 대한 법적 조사가 진행되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또 한미 간 공조법이 체결되지 않아 미국의 협조 요청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미 의회 차원의 조사에서 '명확한' 증거가 밝혀질 제기될 경우 한미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었다.
미국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국무부 지시는 없었으며, 노스롭 항공사가 실제 F-20 전투기 판매를 위해 뇌물을 제공했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1988년 9월 28일 미 하원 에너지 상업위원회 산하 조사감독소위원회의 사건 관련 청문회가 개최됐다. 위원회는 노스롭 항공사가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우회하기 위해 한국 측과 호텔 건설이라는 '가공' 계획을 구상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노스롭 항공사는 호텔 건설은 순수 목적의 한국 투자였으며 F-20 전투기 판매와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 쪽에 입금된 625만달러의 행방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을 내놨다.

당시 정부가 파악한 사건의 경위는 노스롭 항공사의 해명과 명백히 달랐다. 먼저 1984년 1월 노스롭 항공사는 F-20 전투기 판매를 위해 박 전 실장의 처남이 회장으로 있는 동양고속과 판매 대리인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노스롭 항공사는 관계사를 통해 박 전 실장 소유였던 ㈜아세아문화여행와 호텔 합작 계약을 체결했는데, 노스롭 항공사가 625만달러를 투자해 ㈜아세아문화여행의 주식 50%를 취득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아세아문화여행가 호텔 신축 허가를 취득하고 대지를 제공하는 순이었다.
실제로 1984년 8월 8일 노스롭 항공사는 한국 외환은행 홍콩 지점의 ㈜아세아문화여행 계좌에 625만달러를 입금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았던 노스롭 항공사의 로비 작전은 뜻하지 않은 곳곳에서 악재와 마주하게 됐다.
먼저 1984년 10월 한국에서 시범 비행 중이던 F-20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기에 1985년 12월 로비 창구로 통했던 박 전 실장이 지병으로 사망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정부가 전투기 해외 판매 금지 조치를 완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6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올해부터 F-16 최신예 전투기가 실전 배치된다"며 이를 공식화했다.
당시 미국의 주력 기종이었던 F-16 전투기가 한국에 도입되자 노스롭 항공사도 더는 로비에 나설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 이에 1986년 6월 기존 판매 대리인 계약을 해지하고 동양고속에 청산금 150만달러를 지급했다. 이후 기존 투자금 625만달러 회수를 위해 한국 법원에 제소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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