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 남은 생존 피해자 목소리 들어 달라"
"철거는 무시…보존 통해 역사 기억해야"

'몽키하우스'라는 이름 뒤엔 국가가 만든 어둠이 숨어 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옛 성병관리소의 녹슨 건물만이 당시의 폭력을 증언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국가 폭력의 현장은 흔적이 지워지는 순간,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더팩트>는 걸쳐 국가 폭력의 흔적과 아직 끝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3편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동두천=김수민·서다빈 기자] "우리가 수치스러운가 봐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40년 전의 기억은 여전히 A 씨의 일상 깊숙이 남아 있다. 지난 10일, 경기도 동두천시 모처에서 <더팩트>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 A 씨를 만나 당시의 기억을 들었다.
성병 검사조차 받지 않은 채 끌려간 수용소. 결혼을 했고, 당시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집에 두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수용된 그는 철창이 설치된 낯선 건물에서, 이유도 모른 채 첫날 밤을 지새웠다.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수없이 생각했어요. 왜 몽키하우스라고 했겠어요. 우리를 무시해서 그렇게 부른 거예요. 원숭이처럼 취급한 거죠."
그는 지금도 성병관리소에서 정체 모를 페니실린이 담긴 주사를 맞고 경련을 일으켰던 한 언니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온 얼굴이 자두 빛보다 더 진한 피멍으로 뒤덮였던 그날, 병원에조차 데려가지 않았던 상황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A 씨는 인터뷰 도중 그는 몇 번이나 두 손을 모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감정이 북받치면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상담요? 안 받아봤어요. 창피해서요. 누구한테 그런 얘길 해요." 마음의 상처를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A 씨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건, 성병관리소 그날의 현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국가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15년간 성병관리소를 직접 운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과거의 일'로 덮으려 한다. 하지만 A 씨에게 그 과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성병관리소는 보존돼야 해요. 다음 세대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줘야 하니까요. 이건 수치가 아니라 역사예요. 기억해야 해요. 그게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당시 성병관리소에 수용된 경위는.
21살이었던 어느 날 밤 동두천 보산동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붙잡혔다. 당시 미군과 결혼한 나는 '성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결혼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데려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캄캄해서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1층에 내려가 한 뼘 정도 크기의 주사를 맞았는데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보다 내 옆에 언니(다른 피해자)는 죽어도 못 잊을 것 같다. 언니는 주사를 맞자마자 경련과 발작을 일으켰다. 간이 침대의 쇠 부분에 자기 머리를 막 부딪혔다. 다음 날 일어나서 그 언니 얼굴부터 봤는데 자두 빛보다 진한 색 피멍이 얼굴 전체에 들었지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당시 피해 상황이 그 이후 삶에 미친 영향이 있는지.
임신을 두 번 했는데 유산됐다. 의사가 진찰 후 '이상한 주사를 맞지 않았냐'고 하더라. 페니실린을 맞은 적 있다고 했다. 의사는 그제야 '그래서 임신해도 자꾸 유산이 되는 거다'라고 했다. 심리 상담을 받아 본 적도 없다. 창피하게 무슨 상담을 받아 보나. 미군 남편도 당시 훈련에 가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몰랐고, 이후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서야 '우리가 정말 불쌍했구나' 뒤늦게 알게 됐다. 나도 나이가 많지만 다른 피해자에 비하면 젊은 편이다. 그런 나도 점점 몸이 망가져 감을 느낀다. 피해자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나이가 들어 병들어가는데 기초수급 지원금을 타도 집세 내고 나면 없다. 수급자는 하면 없다. 그분들에게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10만 원씩 나오는데 수급자는 그마저도 받지 못한다. 그걸 받으면 기초수급자 기준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이다.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한다고 보는지.
우리나라는 전쟁이 다시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휴전 국가다. 그렇게 되면 다시 미군이 그러면 미군이 주둔하고 가난으로 여성들이 다시 희생당하는 일이 재발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성병관리소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
올해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여성평화포럼에서 괌, 필리핀 등 전 세계 미군 위안부들을 만났다. 그 나라들은 성병관리소가 다 없어졌다고 하더라. 딱 한 군데 남은 우리나라 성병관리소를 없애면 안 된다. 해외 피해자들도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건물을 지킴으로써 지켜줌으로써 과거를 기억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아픔을 치유받고, 후대는 아픈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철거하자는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2022년도 대법원에서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국가가 (과거의 일을) 인정 못 해서 항소를 하나. 국가가 항소를 왜 하나. 국가가 항소하다니 말도 안 된다. 대법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는데도 외면하는 거다. 당시 기지촌을 조성하고, 미군 성매매를 조장한 것은 정부다. 그런데 왜 외면하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수치스러운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든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당부하고자 하는 말이 있나.
이제 살아있는 피해자가 몇 안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성병관리소를 보존해 다음 세대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다.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기억해야 할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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