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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사각지대] 맨홀 질식 사고 반복되는데…국회는 '요지부동' <중>
역대급 더위에 치명률 심각…국회는 여전히 '검토 중'
전문가 "법 체계 몰이해…제대로 된 현실 인식 없어"


여름마다 산소 결핍과 유해 가스 중독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함에도 국회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단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환노위 회의장. /남윤호 기자
여름마다 산소 결핍과 유해 가스 중독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함에도 국회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단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환노위 회의장. /남윤호 기자

사나울 폭(暴)에 불꽃 염(炎). 폭염이 이름값을 하고 있다. 비가 그치면 또 연일 폭염 주의보가 발효되고, 도심은 열돔에 갇힌 듯 숨이 막힌다. 펄펄 끓는 더위에 거리를 걷는 것조차 버거운 날씨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곳은 도시 아래 숨겨진 밀폐 공간이다. 어둡고 습한 맨홀 속, 일용직 노동자들의 죽음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개인의 실수라기보단 법과 제도의 부재가 낳은 사회적 참사, 즉 인재(人災)다. <더팩트>는 뜨겁게 달아오른 지상 아래, 지하 깊은 곳에 방치된 사각지대를 총 3편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여름마다 산소 결핍과 유해 가스 중독으로 사망 사고가 반복되지만 국회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역시 '처벌 중심'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밀폐장소 작업 시 사업주에게 안전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안법률안'을 두고 "개정의 실익이 적다"며 부정적 취지로 검토 의견을 냈다. 해당 개정안은 안전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안전조치) 제3항 5호에 '밀폐 장소'를 포함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허병조 환노위 전문위원은 지난달 해당 개정안에 대해 "규정 중복으로 사업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 개정 여부 신중히 판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보건 조치를 규정한 현행법 제39조1항과 해당 규칙에 사업주로 하여금 밀폐공간에서의 가스나 산소결핍 등에 의한 건강 장애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노위 소속 한 의원은 6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지적에 대해 "관련 규정이 아예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규정은 있는데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며 "만약 기존 규정이 충분한 데도 관리·적용이 부족하다면 행정부 통해 적극적 이행을 촉구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여름마다 밀폐공간에서 산소 결핍과 유독가스 중독으로 인해 사망하는 노동자가 발생하지만, 국회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맨홀 질식 사망사고가 발생한 인천 계양구 병방동 한 도로 맨홀. /인천소방본부·뉴시스
여름마다 밀폐공간에서 산소 결핍과 유독가스 중독으로 인해 사망하는 노동자가 발생하지만, 국회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맨홀 질식 사망사고가 발생한 인천 계양구 병방동 한 도로 맨홀. /인천소방본부·뉴시스

현재로서는 관련 규정의 미비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이 때문에 실제로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 구체적으로 원청과 하청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법에 명시하는 등 정교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정치권의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은 오히려 사고를 조장한다"고 했다. 그는 앞선 개정안에 대해 "법 체계에 대한 이해도 없고 처벌 강화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며 "제대로 된 해법을 내세우려면 먼저 현장에 대한 이해와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방법론이 있어야 하는데, (현 개정안은) 기본적인 현실 인식부터 잘못돼 있다"고 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유사한 사고를 근절하기 위해선 △원청·하청의 구체적 역할과 책임 명시 △밀폐공간의 정의 축소로 법 적용 대상 명확화 등 내용이 법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 교수는 "현행법에서는 원청과 하청이 작업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지위나 역할이 매우 불분명하다. 그렇다보니 예측 가능성도, 이해 가능성도 없다"며 "법의 공백으로 인해 수사가 진행돼도 법원에 가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안전교육 실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도 필요하다. 정작 현장에선 안전 수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통화에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산소 농도 측정이나 환기, 개인 보호구 착용 등이 필수적으로 이행돼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현장에는 단시간 작업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되나'라는 인식이 만연하다"고 분석했다.

백찬수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여름철에 날이 덥다보니 산소호흡기와 같은 무거운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안전 교육 이수 시간을 더 늘리고, 주기적으로 반복해 예방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 8월 국회 내에서 밀폐공간 질식 사고 관련한 개정안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환노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안전 문제와 관련해 원청이 직접 관리 책임을 지고, 위험의 외주화를 상대적으로 엄하게 차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위원회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어 논의 거쳐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underwat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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