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규명’ 빠진 법에 "알면 알수록 알맹이 없어"
특위 올해 말까지 연장

통상 법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된다. 그러나 특별법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며 악순환을 반복한다.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근본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제정된 특별법에 대한 실효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로 최근 국회가 떠들썩하다. 문제 해결의 속도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밀어붙여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특별법의 제대로 된 개정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더팩트>는 이로 인한 법적 공백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총 4편에 걸쳐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살면서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무기력하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텅 빈 특별법이 유족에게 다시 상처를 남겼다.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족협의회) 대표는 1일 <더팩트>에 "항공 사고 특성상 지식도 없고 정부를 대응할 힘도 없다는 점이 무력하게 느껴진다"며 "국민들은 '특별법이 제정됐으니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알고 있다는 점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9시께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 국제공항에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가 로컬라이저 둔덕과 충돌하면서 화재가 발생,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유례없는 대형 참사로 한순간에 일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는 장인·장모, 아내와 세 자녀 등 일가족 9명을 잃은 유족도 있었다.
참사 발생 후 6개월이 지났다. 지난달 30일 기점으로 '12·29 여객기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에 따른 특별법'(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유족들이 느끼는 현실은 여전히 깜깜하다. 이들은 항공기 사고라는 이유로 정보에 쉽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자료조차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유족들에게는 사고 원인 조사 과정이 더욱 더디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유족들은 암실 같은 현실 속에서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다.

김 대표는 "말만 특별법이지 이건 거의 우롱 수준 아니냐"며 "알면 알수록 알맹이가 빠져있는 것을 느끼는데, 이런 것을 자신들의 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사실 참사 당일보다 생계와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이 더 심적으로 훨씬 힘들다"고 호소했다. 김 대표는 지난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 미팅' 행사에 참석해 여객기 참사 특별법에 진상규명 내용을 포함하고, 치유 휴직 범위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에서야 국토부·한국공항공사 직원, 로컬라이저 시공업체 관계자 등 15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됐지만, 유족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저희가 잘 몰랐을 때는 이렇게까지 답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정부가 있고 알아서 잘해주겠지'라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6개월이 됐는데 정말 아무것도 되는 게 없고, 많은 분이 돌아가셨는데 사건 관계자가 이제서야 입건됐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특별법엔 가장 원하던 '진상규명' 내용이 빠져 있다"며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대표는 "특별법 제정 당시 속도에만 집중돼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웠다"며 "세월호·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에서 공통된 것과 여야 합치된 것만 아주 빠르게 통과시켰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유족 지원 보완, 로컬라이저 설계 및 공사, 비행자료기록장치(FDR)·항공기 음성기록장치(CVR) 등 모든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며 "이젠 악플조차 고맙다고 느껴질 지경"이라는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관심이 워낙 줄어들다 보니 악플이 달리면 그에 대한 댓글이 5~6개 더 달리면서 이슈가 되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악플도 지우지 말고 그냥 두자고 한다. 오히려 '악플도 관심이다' '시간내서 글 써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아울러 국회와 정부가 특별법 제정 속도에만 집중한 나머지 유족들의 다양한 의견이 법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특별법이 이제 막 시행되는 시점에 '어제는 이거 해달라, 오늘은 저거 해달라'는 식으로 비춰질까봐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전 국민이 1년에 한 번 이상 비행기를 타는 시대에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던 만큼 이번 사건은 정말 인재(人災)라고 느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17일 국회의장을 찾아 면담하고, 유족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당초 지난달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여객기 참사 국회 특별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오는 12월 31일까지로 연장됐다. 또 내달 3일부터는 여객기 참사 1주년 전날인 오는 12월 28일까지 179일간 희생자 179명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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