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先구제 後구상 실현 가능성↓…근본 대책 마련해야"

통상 법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된다. 그러나 특별법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며 악순환을 반복한다.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근본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제정된 특별법에 대한 실효성과 한계에 대한 논의로 최근 국회가 떠들썩하다. 문제 해결의 속도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밀어붙여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특별법의 제대로 된 개정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더팩트>는 이로 인한 법적 공백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총 4편에 걸쳐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하린 기자] "개정이 아니라 개악(改惡)이에요."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5월 말 만료 예정이었던 전세사기 특별법이 2027년까지 2년 연장됐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자 요건이 여전히 엄격하고, 복잡한 구제 절차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더디다고 지적한다.
이 위원장은 "심의 지침이 바뀌면서 현행법에서는 임차인이 가해자의 '기망 의도'를 확실히 입증해야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임차인이 임대인의 범죄 의도를 밝히기 위해선 경찰이 적극적 수사를 해서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수사 자체가 미뤄지는 등의 이유로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더팩트>와 만나 이같이 특별법의 문제점을 토로하고, 개선 방향으로 △피해자 인정 요건 완화 △선(先)구제 후(後)구상 원칙 도입 △특별법 적용 기간 연장 등을 제안했다. 그는 특히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금융지원 절차는 별개로 취급돼 일선 현장에선 잘 알지 못하거나 갖은 이유를 대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로 인정됐다면 추가 요건 없이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 조사 단계부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어느 경찰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복불복' 상황이다. 지난해 특별단속기간처럼 국가가 일정 기간을 정해 일괄적으로 관리·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특별법은 피해 구제를 사실상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피해 주택 매입에만 의존하고 있다. 해결 방식의 일원화로 인한 절차 지연이나 낮은 구제율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LH가 경·공매를 통해 피해 주택을 매입하고 경매 차익을 활용해 최장 10년간 무상거주를 지원하고 있는데, 매입률이 24%(3907호 중 952호)에 불과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선구제 후구상' 원칙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고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선구제 후구상 방식은 피해자가 국가를 통해 일정 금액을 우선 보상받고, 이후 국가가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LH를 통해 사기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의 피해자 지원을 공식화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 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그럼에도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는 LH 중심 매입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선구제 후구상’ 원칙을 거듭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문제에 대응해 돈을 돌려받으려면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그마저도 받을 가능성도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LH가 피해주택을 매입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경매 일정 등이 다 맞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6~7개월, 길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결국 피해주택 매입이 무산된 경우엔 아무리 많은 지원책이 마련돼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해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1억~2억 원 규모의 피해액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며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최근 2년간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 주거 안정은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하는 만큼 특별법 적용 기한 연장에 대한 이견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구제 후구상 방식을 실제로 추진하기 어렵더라도 피해자의 마음을 보듬어줄 줄 아는 공감 능력이 정치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선의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법을 좀 더 세밀하고 유연하게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선구상 후구상' 방식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상 파산 상태에 있어 변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작고, 이로 인해 회수가 어려운 부실채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세사기 외 일반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서 교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에 구상 가능성을 문서로 명확히 검토한 후 피해 보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선구제 후구상 제도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세 사기를 당한 누구나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게 되면 이를 악용한 새로운 형태의 사기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대안으로 '에스크로(안심 거래)' 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에스크로 제도는 부동산 거래에서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제삼자인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보관·관리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말한다. 권 교수는 "보증금 일부를 에스크로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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